‘닥터 코퍼’가 알려주는 새해 경제 점괘는?

김영배 2022. 12. 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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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값으로 전망하는 2023년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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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해광업공단에서 운영 중인 ‘한국자원정보서비스’ 사이트에 실려 있는 동(구리) 가격 흐름(월평균) 그래프를 보면, 2008년 12월에 깊은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해 4월 톤당 8445.59달러였던 가격이 6월 8032.95달러로 내린 뒤 7월 8182.17달러로 반짝 올랐다가 급전직하해 12월 2987.32달러로 가파르게 추락했다. 8개월 사이에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대폭락세였다.

2008년 4월에 시작됐던 당시 구리 가격 추이는 경기 변화를 민감하게 잘 반영한다고 해서 ‘닥터 코퍼’(구리 박사)로 일컬어지는 구리의 유명세를 일깨운 대표 사례로 꼽힌다. 구리 가격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리 점쳤다는 식의 해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해 9월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본격화됐던 터다. 이듬해 1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1%를 기록했으며 중국은 6%대 성장으로 2008년 1분기(12%대)에 견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더불어 2001년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당시도 구리 가격이 경기침체에 앞서 미리 움직인 사례로 거론되곤 한다.

경제 형편 닮은 구리값, 내년은 ‘흐림’

올해 11월 평균 구리 가격은 7984.37달러 수준이다. 지난해 5월(1만287.93달러) 1만달러를 넘어선 뒤 9천달러대 위에서 오르내리다가 3월(1만179.48달러) 이후 큰 폭으로 떨어졌다. 국내외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과 얼추 비슷한 모양새다. 12월 들어선 반등해 29일 현재 8395달러(런던금속거래소(LME) 현물) 수준이다.

구리 가격 전망도 대개 아래쪽을 향해 있다. 광해광업공단은 29일 내놓은 ‘4분기 6대 전략광물 시장 전망’을 통해 “전기동의 가격은 내년 이후 톤당 8천달러 선을 하회할 것으로 예상하며 2023년 이후에도 가격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광업공단은 다양한 광물의 가격 정보 제공과 함께 분기별로 구리를 비롯한 6대 전략광물의 가격 전망치를 제시하고 있다. 전기동은 전기분해를 통해 순도를 99.99%로 높인 고순도 구리를 말하며 주로 전선 재료로 쓰인다.

광업공단은 구리 가격 하락 전망의 배경으로 “중국의 코로나 재확산에 따른 산업경기 둔화 및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로 투자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광업공단의 구리 가격 예측치는 유로·달러 환율, 전기동 소비량 및 공급량 등을 고려하는 ‘전기동 가격예측’ 자체 모델에 바탕을 두고 있다. 광업공단의 구리 가격 전망치는 올해 4분기 7980달러, 내년 4분기 7139달러, 2024년 4분기 6624달러로 제시돼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우드매켄지(우드맥) 전망치는 이보다 약간 높아 같은 기간 8020달러, 8100달러, 7650달러 수준이다. 하락세 전망이란 점에서 같다.

미국의 투자은행 시티그룹과 골드만삭스는 이와 달리 내년 3분기부터 반등할 것으로 내다보는 방향의 전망을 이달 들어 제시한 바 있다. 두 기관은 “내년 하반기 이후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 둔화로 인해 투자 수요가 회복될 것”이란 점을 배경으로 들었다.

광업공단이나 우드매켄지의 구리 가격 예측은 정부나 주요 연구기관들의 경제 전망과 비슷하다. 기획재정부가 이달 들어 내놓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6%다. 새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6월에 제시했던 2.5%에서 0.9%포인트 낮춘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일본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1.8%)보다 낮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이 지난달에 내놓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8%, 1.7%로 비슷한 수준이다.

광업공단 전망에 따른 구리 가격 전망이 내년 이후의 ‘먹구름 경기’를 예고하는 것일까. 닥터 코퍼의 점괘가 늘 들어맞은 건 아니었다. 구리 가격이 경기 흐름과 다른 방향을 보인 예도 더러 있었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지난 8월 펴낸 보고서 ‘구리 등 비철금속 가격 전망 및 시사점’에서 경기침체 선행성을 띠었던 ‘2001년 정보기술 거품’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1990년 걸프전, 2020년 팬데믹 경기침체 직전에는 오히려 상승했으며 ‘1994~1998년’과 ‘2011~2015년’에는 양호한 경기 상황에도 가격이 장기 하락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내년 하반기 이후 흐름 주시해야”

광해광업공단 자원정보팀에서 구리 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마상철 과장은 “(구리 가격을) 경기 선행지표로 많이 인용하고 중요한 산업 원료여서 가격이 오르면 대개 경기가 살아난다는 식으로 보는데, 딱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동제련 전문 금속소재 기업인 엘에스엠앤엠(LS MnM·옛 LS니꼬동제련) 신동광 매니저(업무홍보팀)도 “닥터 코퍼 속설은 맞을 때도, 안 맞을 때도 있었다”며 “동광석이 갈수록 고갈돼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것도 변수”라고 말했다. 전반적인 경기 흐름과 무관하게 구리 자체의 수급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여기에 전세계 구리 소비량 가운데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의 움직임에 따라 들쑥날쑥하는 쏠림 문제도 있다고 신 매니저는 짚었다.

오정석 전문위원은 “(구리 가격 동향과 경기 흐름 간 관계에서) 통계적인 유의성은 없다 해도 경기에 민감한 품목이라 시장에선 제조업 경기 바로미터(기준 지표)로 인식하고 있으며 (경기 흐름 파악을 위해) 지켜볼 필요가 있는 품목”이라고 말했다. 구리는 건축자재에서 반도체까지 안 들어가는 데가 없다고 할 정도로 용도가 넓다. 동파이프, 전선 제조 같은 전통 제조업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은 물론 전기차같이 새로운 산업 분야에도 널리 쓰인다. 전기차 경량화 목적으로 알루미늄이 많이 사용된다고 하는데, 구리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오 위원은 경기 선행성을 띤 지표로 구리 가격 추이를 보는 것과 별개로 관심을 둬야 할 대목이 있다고 밝힌다. 경기 회복 신호가 나타날 때 가격이 가파르게 뛰어오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정을 일컫는다. 그는 “코로나19 봉쇄 조처와 환경 문제에 얽혀 그동안 구리 관련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막상 수요가 회복되고 나면 공급 부족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며 “내년 하반기 이후 가격 흐름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리는 원유와 비슷해서 생산을 늘리려면 장기 투자로 뒷받침해야 하는 속성을 띠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경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친 뒤 산업 현장 취재를 맡고 있다.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휴버먼의 자본론>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관료제 유토피아> 등을 번역해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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