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낙태권 폐기’ 중간선거 강타… 이란發 ‘히잡 시위’ 들불 [세계는 지금]

정지혜 2022. 12. 31. 19: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성계가 주목한 5대 글로벌 이슈
美 ‘로 對 웨이드’ 판결 49년 만에 번복
정권심판론 약화로 민주 예상 밖 선전
남미 ‘녹색물결’ 낙태 합법화 등 성과
이슬람 여성억압 노골화에 민심 폭발
우크라 女전사 5000여명 최전선 사투
EU, 상장社 이사회 ‘여성할당’ 의무화
2022년 전 세계 주요 위기와 갈등의 최전선에는 여성이 있었다. 전쟁과 경제위기에 맞서고, 자유와 인권을 외치는 각국 상황 속에서 여성의 투쟁은 어느 때보다 빛났다. 어떤 곳에서는 평등을 향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었고, 다른 곳에서는 좌절의 쓴맛을 보기도 했으나 변화를 주도하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올해 여성을 일어서게 한 5대 국제 이슈를 돌아본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미국 대법원의 결정에 분노한 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지난 7월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니스 비치에서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쓰인 포스터를 들고 항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터의 여성들

여성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전쟁에서 여성의 이야기는 쉽게 지워진다. 300일 넘게 장기화한 러시아의 침공 속에서 우크라이나 여성은 참전 군인으로서도, 피해자로서도 담론(談論)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실제로는 5년 전보다 여군 숫자는 약 두 배 늘어 4만명을 기록했으며, 이 중 5000여명이 최전선에 배치됐다. 이제 여성 저격수나 포병, 전차병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여성 농부 약 1만명은 군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전쟁에 참여했다.

여전히 여성이 군대라는 남성 중심 세계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견뎌야 하는 현실은 만만찮다. 하르키우 지역에서 전투에 참가한 마리나 몰로슈나는 영국 BBC에 “남성 전투원은 자연히 존경을 받지만 여성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받는다”고 했다.

러시아군의 성폭력은 전쟁 중 우크라이나 여성이 겪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4월 첫 2주 동안에만 성폭행 상담 약 400건이 접수됐다고 전했다. 신고하지 않은 경우를 감안하면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 증언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후퇴하기 직전에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성폭행이 일어났다. 부차에서는 러시아 병사들이 14~24세 여성 25명을 지하실에 가두고 정기적으로 강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 복장 규정·대학 폐쇄…억압 심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 권위주의체제의 여성 억압이 한층 더 노골화한 한 해였다. 이란에서는 9월 중순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잘못 썼다며 도덕경찰에 붙잡혔다 의문사한 사건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장기 시위로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수십년 동안 계속된 억압에 폭발한 여성들이 히잡 벗을 자유를 시작으로 시위를 주도했고, 이후 남녀노소가 시위에 동참해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당국도 물러설 조짐 없이 유혈 진압과 시위대 공개 처형 등 강경 대응 중이다. 현지 인권단체에 따르면 어린이 63명을 포함해 시위대 500명가량이 당국에 살해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선 탈레반이 재집권 1년 만에 본색을 드러냈다. 탈레반의 최근 법령은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설립된 친미 정권에서 20년간 여성들에게 부족하게나마 보장됐던 자유와 권리를 다시 박탈하는 내용을 담았다.

탈레반은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겠다던 약속과 달리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다시 의무화했고, 교육과 취업도 금지했다. 중등학교에 이어 여성의 대학교 입학까지 막는 결정에 국제 사회는 일제히 규탄했다. 소수의 여성이 용기를 내 수도 카불에서 거리 시위를 벌였지만 당국에 의해 신속히 진압됐다.

◆미국 낙태권 폐기 후폭풍

2022년은 임신중단 권리에 대한 세계 곳곳의 판결에 여성이 울고 웃었다.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보장하던 판례,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49년 만에 뒤집었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 보장됐던 낙태권이 각 주 정부 몫이 되면서 13개 주에서 낙태 금지 및 규제 강화법이 통과됐다. 사실상 낙태죄가 부활하면서 미국 수백만명이 임신중단에 대한 헌법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되자 여성들은 전국적 시위를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미국 주요 기업은 직원의 낙태 원정시술 비용과 낙태로 인한 체포 시 보석금 등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미국을 따라 많은 나라가 낙태권을 폐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해 “비극적 오류”라고 말하며 각 주에서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시민들은 미국이 지난 25년간 낙태권을 철회한 단 4개국 중 하나가 됐다며 여성 인권 후퇴를 지적했다. 낙태권 이슈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흔든 뇌관으로 부상했고, 공화당의 정권 심판론이 기대 이하의 효과를 내는 요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은 치솟는 물가로 인한 경제 악화로 선거 패배가 예견됐지만 낙태권 문제 등을 쟁점화해 지지층과 여성 결집을 끌어내며 우세승을 거뒀다.
◆남미, 재생산권 위한 녹색물결 진전

남미에서는 여성의 재생산권을 요구하는 여성 풀뿌리 운동이 곳곳에서 승전고를 울렸다. 녹색물결(Green Wave)로 불리는 이 운동은 2003년 아르헨티나에서 낙태 합법화와 피임권을 요구하는 여성 1만명이 녹색 두건을 쓰고 모인 데서 시작해 2020년부터 본격적인 성과를 냈다. 올해 남미는 낙태 합법화 바람이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이었다. 전통적으로 낙태에 가장 부정적인 가톨릭 국가들에서 일어난 변화라 더욱 의미 있다.

콜롬비아에서는 2월 헌법재판소가 “최대 24주 동안 낙태를 처벌하지 않겠으니 정부와 의회는 이른 시일 내 관련 정책을 마련하라”고 밝혔다. 그동안 임부의 생명이 위험하거나 태아가 생존이 어려운 기형을 지닌 경우,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낙태가 불법이었다. 임신 중기인 6개월까지 낙태가 가능한 것은 사실상 전면 허용으로 본다. 이번 헌재 결정을 끌어낸 중남미 여성단체들은 “역사적 결정”이라며 환호했다.

다른 국가에서도 올해 한층 더 전향적인 판결이 나왔다. 에콰도르는 강간 사건에서 낙태를 합법화하는 법이 입법됐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낙태죄를 시행했던 엘살바도르는 낙태로 30년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던 여성을 10년 만에 석방했다.

◆EU, 상장기업 이사회 의무할당제 도입

유럽연합(EU) 의회는 11월 말 상장기업 이사회에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2026년부터 상장기업의 비상임이사 40% 이상, 혹은 전체 이사의 33% 이상을 마이너 성별이 채우도록 했다. 남성에 비해 여성 이사 수가 적다는 점에서 사실상 여성 의무할당제로 볼 수 있다. 성평등을 위한 의무 할당제 제안이 나온 지 10년 만이다.

‘이사회의 여성’(Women on Boards)으로 불리는 새로운 규정에 따라 2026년 6월 말까지 종사자 250인 이상 EU 내 상장기업은 이사회의 남녀 비율을 맞추고, 매년 당국에 젠더 대표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목표를 지키지 못했다면 어떻게 맞출지 계획을 내놔야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할당제 법제화에 대해 “성평등의 획기적 발전으로 축하해야 할 순간”이라며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지 10년이 지나서 이제 이사회 유리천장을 뚫을 법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유럽성평등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EU 27개국 주요 상장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은 30.6%로 꾸준히 증가 추세이지만 국가별 편차가 크다. 지난해 이미 자체적으로 이사회 여성 비율을 40% 이상으로 규정한 프랑스는 45.3%로 높지만, 키프로스는 8.5%로 가장 낮았다. 이사회 의장이나 최고경영자(CEO)가 여성인 경우는 10곳 중 1곳에 그쳤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