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펄 벅이 감탄한 조선인의 마음
[[휴심정] 이선경의 나를 찾아가는 주역]
◆ 태극기,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삶의 모습은?
▪태극기에 대한 추억
‘태극기’를 생각하면 어떤 장면들이 연상될까? 예전 같으면 다양한 풍경들이 떠오를 텐데, 최근 카타르월드컵의 짜릿함이 2002년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소환하며 다른 추억들을 압도한다. 그러고 보니 일제강점기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금메달리스트의 모습으로 가슴을 가린 채 고개를 떨군 사진도 떠오르고, 3.1만세 운동 때 전국을 뒤덮었을 태극기의 물결도 떠오른다.
태극기와 관련된 필자의 어릴 적 기억은 이런 것이다. 오후 6시면 길거리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국기 하강식이 행해진다. 길을 가다 멈춰 서서 태극기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애국가가 끝나길 기다렸다. 때로는 아랑곳없이 걸어가는 몇몇 어른들을 ‘불경하다’ 여기며 바라보곤 했다. 영화 구경을 가면 애국가가 영화의 시작을 알렸고, 벌떡 기립해 극장 화면을 가득히 채운 태극기를 향해 국기에 대한 맹세를 되뇌인 후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태극기는 늘 높은 곳에서 펄럭이고 있었고, 우러러보아야 하는 신성한 상징이었다.
그러던 태극기가 갑자기 땅으로 내려왔다. 2002년 6월, 월드컵을 응원하며 태극기를 뒤집어쓰고, 몸에 두르고, 얼굴에 그린 사람들이 광장에 가득했다. 심지어 태극기로 어린애 바지까지 만들어 입힌 경우도 보았다.
아, 태극기가 이렇게 가까울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국기가 이렇게 친근할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몸으로 체험한 국기관의 변화는 필자에게는 나름대로 인생의 지각 변동이었다.
▪태극의 역사와 태극기
국기는 나라의 상징이다. 그러니 국기에 담긴 의미는 그 나라의 이념과 철학을 표방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태극기가 우리의 국기가 된 것은 우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간단치 않은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사상적 맥락이 담겨있다. 태극은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사랑을 받으며 줄기차게 쓰여 온 문양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것 중에서는 7세기 전반 백제시대 목간에 그려진 태극 문양이 가장 오래되었고, 이후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수없이 많은 태극 문양이 쓰였다. 그 종류도 이태극, 삼태극, 사태극이 골고루 쓰였고, 왕실의 종묘로부터 관청, 서원, 연적, 자물쇠, 베갯모, 떡살, 도장, 부채 등 일상에서 흔하게도 쓰인 것이 태극 문양이었다. 그러니 마침내 우리의 국기에 태극 문양이 사용된 것을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일반적으로 태극기는 1882년 일본에 사신으로 가던 박영효가 배 안에서 그렸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은 그보다 몇 달 전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을 때 임시로 국기로 삼아 만든 깃발이 있었으니, 이응준의 태극기가 그것이다. 박영효의 태극기와 비슷하다. 또한 당시 조정에서 국기 제정에 대해 여러 논의가 진행되던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그려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한 나라의 국기를 만들면서 왜 수많은 물상(物像)을 젖혀두고 ‘태극기’를 만든 것일까? 태극기를 제정한 이들은 우리의 국기에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단군신화의 홍익인간 이념에 대해 “단군이 내린 한민족의 헌법과 같은 것”이라는 평을 남긴 <25시>의 저자 C. V. 게오르규(1916∼1992)는 태극기에 대해 “세계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한국의 국기는 유일하다. 어느 나라의 국기와도 닮지 않았다. 그것에는 세계의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는 멋지다. 거기에는 하늘과 땅, 네 개의 방위, 낮과 밤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선과 점이 있다. 그것은 우주를 나타낸다.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 선과 악, 불과 물이 있다.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이나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 선・점・원, 붉은색・흰색, 그리고 파란색으로 그려져 있다.”(<25시를 넘어 아침의 나라로>)
요컨대 태극기는 물상적이라기 보다는 철학적으로 구성되었다는 말이다. 게오르규가 태극기에서 발견한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 그리고 ‘세계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일까?
▪자연의 리듬을 본뜨다
굽이굽이 긴 밤을 펼쳐낸 동지(冬至)가 지났다. 이제 해는 조금씩 길어지고 어느새인가 우리는 저녁 8시에도 아직 훤한 하지(夏至)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또 내년 이맘때 쯤이면 동지 팥죽을 먹고 있겠다. 이러한 자연의 리듬이 바로 ‘태극’이다. 실제로 동지에서 하지, 하지에서 동지에 이르는 밤낮 길이의 변화 비율을 따라서 그대로 그려내면 태극 문양이 된다.
여기에는 일종의 수학적 원리가 있다. 동지의 밤 시간과 하지의 밤 시간은 약 300분의 차이가 있다. 입춘(立春)에는 밤의 길이가 동지보다 대략 50분 줄어드니, 300분의, 즉 6분의 1이 줄어든다. 반대로 낮의 길이는 6분의 1만큼이 늘어난다. 춘분(春分)이 되면 밤의 길이는 150분 줄어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진다. 입하(立夏)를 거쳐 하지가 되면 드디어 300분의 300,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의 길이가 가장 짧은 때가 된다. 하지-입추-추분-입동-동지의 과정도 마찬가지로 낮은 점점 줄어들고 밤은 점점 늘어난다. 밤과 낮이 줄어들고 늘어나는 비율, 즉 음양의 줄어들고(消) 늘어남(息)을 따라 그린 곡선이 물결치는 태극의 모양이다. 그래서 태극기의 첫번째 원리는 ‘자연의 리듬을 본떴다’고 할 수 있다.
태극이 밤낮 길이의 변화라는 자연의 리듬을 형상화한 모양이라면, 태극을 둘러싸고 있는 4개의 괘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혹시 학창시절 ☰은 건괘-하늘, ☵은 감괘-물, ☷은 곤괘-땅, ☲은 리괘-불, 이런 내용을 배운 적이 있지 않은가? 태극기의 4괘는 시계방향으로 순환하면서 태극 문양과 마찬가지로 동지~하지, 하지~동지에 이르는 자연의 리듬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건괘를 하지라고 한다면, 곤괘는 동지라 할 수 있다. 극즉반(極則反)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 한쪽 극한에 이르면 반대 방향으로 돌이킨다는 말이다. 건(乾)은 양(陽)이 더 자랄 수 없이 가득한 상태이니, 그다음은 음(陰)이 조금씩 자라난다. 그렇게 음이 자라나 가득한 곤(坤)의 상태에 이르면 다시 양이 조금씩 자라난다. 이렇게 태극기의 4괘의 순환 역시 동지-춘분-하지-추분-동지에 이르는 자연의 순환을 담고 있다.
일년 밤낮 길이의 변화를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태극기의 원리를 8괘의 ‘방위도(方位圖)’로 설명하는 방법도 있다. <주역>에서는 8괘의 발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연의 변화 가운데에는 태극이 있어, 이것이 음양의 두 모양(兩儀)으로 드러나고, 두 모양은 네 형상(四象)으로 나타나며, 네 형상은 여덟 괘(八卦)로 전개된다.” 1-2-4-8의 구조인데, 이를 그린 그림이 일명 ‘복희선천팔괘방위도(伏羲先天八卦方位圖)’이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여기서 ‘선천(先天)’이란 인위적 작용이 가해지기 이전의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다는 말이다. 최초로 8괘를 그렸다는 이가 ‘복희씨’인데, 그의 8괘는 동서남북의 각 방위에 놓여 밤낮의 길이가 변화하는 양상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복희씨가 자연의 리듬을 여덟개의 괘 모양, 방위, 순서로 형상화했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를 간단한 설명으로 단번에 알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기로 하고, 다만 이런 설명법이든 저런 설명법이든 모두 한 해 밤낮의 줄어들고(消) 늘어나는(息) 흐름을 그려냈다는 점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필자는 학창시절 태극기의 사상적 원리를 도원(道原) 류승국 선생께 배웠다. 당시 선생님께 태극기의 원리를 설명하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고, 또 <주역>에서 태극의 모양과 현행 태극기에서의 태극 모양이 일치하지 않는데, 무엇이 옳은 것인지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원리를 장악하면 그 모습은 다양하게 펼쳐낼 수 있다’는 취지의 답을 주신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동지를 기점으로 양(陽)이 원의 중심에서부터 자라나 간다고 설명을 하든, 끄트머리부터 시작되어 확장되어 나간다고 표현을 하든 그 원리는 마찬가지라는 뜻이겠다.
▪태극기에 담긴 자연과 사람의 길
누누이 말해 왔지만 역(易)이란 음과 양이라는 두 대립자의 상호작용으로 추동되는 끝없는 변화를 뜻한다. 음양의 대표적 상징인 밤과 낮, 추위와 더위, 하늘과 땅의 작용을 통해 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시시각각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나간다. 이렇게 봄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진행되는 생명교향악의 각 악장을 <주역>에서는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특징 짓고, 인·예·의·정·고(仁禮義貞固)로 짝 지웠다. 그리고 봄의 특징이자 생명살림의 대표 격인 원(元)과 인(仁)을 ‘모든 선(善)의 으뜸’으로 칭송하였다. 푸르고 붉게 물결치는 태극 문양은 이 같은 음양의 생명활동을 나타내며, ‘생명을 살리기를 좋아하는’ 인(仁)의 가치를 함축한다. 음양의 율동을 따라 생명을 살려내는 우주의 리듬이 태극 문양이며, 그러한 자연의 리듬을 따라 순리롭게 살아가려는 삶의 정서가 바로 태극의 마음이다.
이러한 삶의 정서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양식으로 전개된다. 한국의 전통 건축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을 건축의 일부로 수용한다. 집터에 걸리적거리는 바위를 파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살려 집을 짓는다.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고 노래한 송순(1493~1583)의 시조에는 자연과 함께하는 공생과 평화로움이 있다. 이웃 나라의 궁궐 ‘자금성’과 조선의 궁궐을 비교해 보면, 자금성은 그 위용이 보는 이를 압도하지만, 조선의 궁궐은 지나친 꾸밈이 없이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한다.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인(仁)의 마음을 맹자는 측은지심, “남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라 설명하였는데, 다시 말하면 “생명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라 할 수 있다. ‘이규태 코너’로 일세를 풍미하며 한국학의 소중함을 일깨웠던 기자 이규태는 그가 한국학에 눈을 뜬 계기가 초년 기자 시절 소설 <대지>를 쓴 펄 벅(Pearl S. Buck·1892~1973)의 한국 여행을 수행했을 때부터였음을 말한다.
당시 펄 벅은 이미 오랜 시간을 중국에서 살았다. 한국의 시골을 여행할 때 펄 벅은 지게에 볏단을 지고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를 가리키면서, “농부도 지게도 달구지에 오르면 될 텐데, 소의 짐을 덜어주려는 저 마음이 내가 한국에서 보고 싶었던 것이에요”라고 말하고, “고향에 온 것 같다”며 “이제 더 이상 한국에서 뭣인가를 보지 않아도 흡족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규태 기자는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가난에 찌든 고국의 농촌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웠던 자신이 더욱 부끄러워졌다고 고백하고 있다. 펄 벅이 말한 ‘고향’은 ‘존재로의 회귀’를 뜻하는 원초적 고향이었으리라.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기고, 소의 짐을 덜어주는 삶의 정서는 한국인의 흔하디흔한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지만, 생명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라는 태극의 철학이 땅으로 내려온 현장이다. 게오르규가 태극기에서 발견한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 그리고 ‘세계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의 구체적 내용 역시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주역’은 누구의 것인가?
필자는 종종 ‘주역’은 중국 것이고, 복희씨는 중국 사람인데 왜 중국의 것을 가지고 우리나라 국기로 삼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주역’이 아무리 한국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더라도, 역시 한국 밖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 태극기에 대해 썩 석연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필자는 <주역>이 수천년 동안 동아시아 사유의 근간을 이루어온 보편적 사유체계이자 문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자(漢字)’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의 경우는 중세 라틴어가 학술문화에서 쓰이는 공식적인 언어 문자였으며, 그것은 오늘날도 단순히 이탈리아 고어라 취급되지 않는다. 서구 문화는 고대 그리스와 라틴 문화를 젖줄로 하기 때문에 오늘날도 서구의 중고등교육과정에서 희랍어 또는 라틴어는 중요한 교과목이다.
동아시아에서는 ‘한자’가 바로 라틴어의 역할 및 위상과 같다. ‘한자’는 현대 중국어와 다른 ‘사어(死語)’이고, 동아시아의 전근대 문명은 모두 한자를 중심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니 ‘한자’의 사용을 가지고 오늘날도 동아시아 문명의 패권을 운운한다면 그것은 바른 태도라 할 수 없을 것이며, 우리 역시 ‘한자’는 중국 글자라고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안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한자’이든 ‘주역’이든 이것은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음계와 같은 보편적 틀로서, 이 음계를 가지고 어떤 음악을 만들어내느냐는 각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태극기와 훈민정음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상고시대 역사와 문화의 실상에 대해서는 미지의 영역이 아직 많이 있다.
태극 사상은 동북아시아의 공통적 문화유산이지만, 그것을 국기로 특화하여 나라의 상징으로 쓰고 있는 주체는 한국이다. 일제강점기 서양의 선교사들은 ‘태극’을 ‘한국’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세계에 대한(大韓)을 지지하고 알릴 때 태극 문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삼국시대 아니 그 이전의 상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에는 음양 상생철학의 실상이 연면하게 이어져 우리의 삶 속에 체화되어 왔다. 필자는 바로 이것이 한국의 저력이며, ‘어느 나라의 국기와도 닮지 않은’ 우리의 태극기가 담고 있는 삶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글 이선경(조선대 초빙객원교수・한국주역학회 차기회장)
*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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