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지역신문이 옥천 출신 청암 송건호 일대기를 다룬 이유
백지광고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 말지·한겨레 창간 참여 등 시기 1972년부터 30여년 간 은평 거주
은평시민신문 측 "송건호 선생, 은평서 30여년 살았던 사실 지금이라도 기록 남겨야"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동아일보 백지광고와 대량해고 당시 편집국장으로서 사표는 내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주모자로 몰려 고문과 옥살이, '말'지 창간과 '한겨레' 창간에 힘을 썼고 한겨레 초대 대표,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한 20세기 최고 언론인, '언론의 사표', '해직기자의 대부' 등 별칭, 청암 송건호 선생을 기억하는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는 충북 옥천에 위치하고 있다. 그가 1926년 9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서다.
최근 서울 은평구 지역신문인 은평시민신문이 청암의 일대기를 다룬 영상(“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청암 송건호-)을 제작했다. 청암언론문화재단 이사로 활동하는 청암의 장남 송준용 이사를 인터뷰하고, 해당 재단에서 펴낸 책 '청암송건호'를 토대로 구성했다. 은평시민신문이 이를 다룬 건 '언론인 송건호'로서 사실상 모든 활동을 한 1972년 9월부터 2001년 12월2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은평구 역촌동에 살았기 때문이다.
청암은 1972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이자 통일문제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남북적십자회담을 두 차례 다녀왔다. 기자로서 전성기를 보내던 이때 역촌동으로 이사와 30여년을 거주한 것이다. 송 이사의 인터뷰를 보면 1974년 청암이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맡은 건 '어쩔수 없어서'였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편집국장을) 아무도 안하려고 해서 본인이 하게 됐다”며 “기자들도 송건호가 한다니까 다 찬성해서 본인이 편집국장 하게 됐는데 일선기자로서 마지막”이라고 회고했다.
1974년 청암이 편집국장을 맡은 시기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으로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가 있었고, 정권에 항의한 기자 등을 강제로 해고하는 일이 있었다. 송 이사는 “죽으면 죽었지 (기자들 해고는) 못하겠다. 저 사람들(기자들) 얘기가 다 맞고 옳다. 내가 항상 옳다고 하는 얘기를 (기자들이) 썼는데 이러면 안 된다. 그래서 사표를 냈다”고 전했다. 송 이사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에선 청암에게 6개월 정도 세계일주하다 청와대로 들어올 것을 제안했지만 청암이 이를 거절했다.
이후 청암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남영동 치안본부에 끌려다가 2주간 고문을 받았고 서대문구치소, 육군교도소 등에서 6개월 수감생활을 했다. 생사여부도 몰랐던 가족들이 청암을 본 건 약 두달뒤, 장소는 서대문구치소였다. 체중이 10kg 가량 빠졌고 머리는 백발로 변했다.
송 이사는 “아버지가 기자생활할 때는 다이어리에 기록했지만 (정권에) 끌려가고 나서는 수첩을 안 썼다”며 “누구 만났는지 많은 사람을 써놨는데 그게 빌미가 돼서 고초받은 사람이 많아 그 이후로는 안 썼다”고 전했다.
청암은 이후 1985년 6월 '말'지 창간에 참여했다. '말'지는 1986년 9월 특집호를 발행해 당시 정부(문화공고부)가 언론사에 하달한 지시사항, 즉 보도지침에 대해 폭로한 매체다. 1987년 한겨레 창간에도 참여했다.
같은해 10월30일 한겨레 창간 발기 선언대회에서 청암은 “우리는 진짜로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질서로 하는 그런 신문을 한번 만들어보자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말하면 근로자 농민 또는 돈 없고 이름도 없고 가난한 사람 이런 사람을 중점적으로 보도해주고 억울한 사정을 보도해주는 것이 새신문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은평과 인연도 영상에 담았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함께 구속된 한승헌 변호사와 이호철 작가도 은평에 살면서 청암과 교류했다. 송 이사는 “한승헌 변호사는 청암언론문화재단 이사 부탁드려서 도와주기도 했고 (청암과) 수십년간 교류가 있었다”며 “이호철 선생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호철 작가는 청암에게 '형광등'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청암이 본인 관심사는 정보가 빠르지만 그 외에는 둔감한 편이라 붙인 별명이라고 한다.
송 이사도 어렸을 적 은평에서 추억을 회상했다. “역촌동 지하에 물이 두번이나 찼는데 그때 온 가족이 하나하나 펴서 말렸다. 그 책들이 국회도서관 가면 있을 거다. 비오면 난리가 난다. 접어서 옮겼다가 하고 몇 달을 했다. 상한 책도 많았는데, (책을 좋아하는 청암이) 가슴 아파했다.” 청암은 책을 한겨레에 기증했고 현재 국회도서관에서 보관 중이다.
청암은 1993년 한겨레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다. 1999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고 한국기자협회가 '20세기 최고 언론인'으로 선정했다. 200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같은해 12월21일 세상을 떠났다.
이번 영상 제작 관련 박은미 은평시민신문 편집장은 29일 미디어오늘에 “송건호 선생님이 은평에 30여 년 가까이 사셨던 사실을 확인하고 지금이라도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옥천신문이나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 등 옥천에서는 청암을 기리지만 은평에서는 청암이 살았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편집장은 “특히 서울에서 지역신문 만드는 입장에서 어떤 저널리즘 원칙과 기준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많은데 우리 가까이 청암이 계셨다는 사실 자체가 큰 힘이 됐다”며 “그만큼 지역언론이 기댈 곳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제작 이유를 말했다.
또 그는 “지역언론의 저널리즘 원칙을 지켜나가는 데 선생님의 활동이 가리키는 바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자료를 모으고 영상을 만들었는데, 몇 달 동안 만들면서 정말 많은 공부를 했다”며 “언론이 어렵다 한들 목숨 걸고 (신문을) 만들던 때에 비교할 바가 아니고 어떤 지점에서 저널리즘 원칙을 지켜나가야 할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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