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노동자도 '월클' 개발자 꿈꾸게 한 애플 아카데미
"개발자 기술이 아닌 스스로 공부할 역량 갖추게 해줘"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학점 3.32점, 토익 500점, 지방대 출신, 공장 노동자.
변진하씨(33)의 이력서에 채워졌던 스펙이다. 2교대 공장에서 제품을 자르고 검수하는 일을 했다. 월 300시간을 일했다. 공장 프레셔 사고가 났다. 엄지손톱을 통째로 뽑았다. 새로운 진로를 모색했다. 막연히 유망직으로 꼽히는 개발자를 꿈꿨다. 국비 지원 수업을 들었지만, 중소기업 서류 전형에서만 100번을 떨어졌다.
다시 공장에 돌아가려고 했다. 변진하씨를 붙잡은 건 유튜브 알고리즘에 우연히 뜬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 소식이었다.
"자존감도 엄청 떨어지고 힘들었다.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 설명회를 들었는데, 그냥 도전해보라는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됐는지 아직도 기억한다."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는 지난 3월 포항시 포항공과대학(포스텍)에 문을 연 애플 개발자 교육 프로그램이다. 2013년 브라질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등 전 세계 17개 지역에 개설됐다. 기업가, 개발자,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교육을 제공해 iOS 앱 생태계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다.
변진하씨는 지난 12일 국내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 1기 수료생이 됐다. 올해 애플 연례 개발자 행사인 '세계 개발자 콘퍼런스'(WWDC)의 스위프트 학생 챌린지(Swift Student Challenge) 우승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지난 3월부터 9개월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모바일 앱을 개발했다. 총 4개의 앱을 앱스토어에 출시했다. 걱정을 공유하는 앱, 골프 입문자를 돕는 앱, 환경 위기와 멸종 동물 퀴즈 앱, 캐릭터를 통한 날씨 정보를 전달하는 앱 등 종류도 다양하다.
변씨는 "여기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한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다"며 "사람들 하나하나의 에너지가 엄청나다. 지쳐 쓰러질 틈을 안 주고 모두가 할 수 있다고 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큰 변화는 저 스스로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며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 그 작은 변화는 아카데미가 아니라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경험이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에는 코딩 경력 여부와 관계없이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이번 1기 과정을 거친 약 200명의 학생 중 34%가 스템(STEM, 과학·기술·공학·수학) 비전공자다.
비전공자가 교육을 거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을까. 이에 대해 변씨는 "분명히 잘하는 사람이 있고, 로스쿨 출신 등 고학력자도 많다"며 "그분들이 한 시간 공부할 때 두 시간을 공부하면 맞춰갈 수 있다.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는) 편견을 없앨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또 "학생들끼리 '물고기 잡는 법이 아닌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거 같다'고들 얘기한다"며 "물고기를 낚는 법은 개개인이 알아서 하고, 필요한 정보와 인프라들을 제공 받았다. 스스로 발전하는 개발자, 이유가 있는 개발을 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애플은 'CBL'(Challenge Based Learning)이라는 기본 프레임에 기반해 학생들을 돕고 있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수업을 듣는 구조에서 벗어나 '개발자-디자이너-기획'이 한팀이 돼 프로텍트성 팀 활동을 기본으로 한다는 얘기다.
또한, 실제 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멘토들이 상주해 학생들에게 맞춤화된 멘토링을 제공한다.
이재성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 테크 멘토는 "애플 아카데미는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며 "단순히 앱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개성 있는 나만의 앱을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변씨는 "개발자로서 기술 전수해준다기보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해준다"며 "이 덕분에 iOS 개발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 개발도 혼자서 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변씨는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iOS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쌓아나갈 계획이다.
고든 슈크윗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 총괄 디렉터는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의 목표는 단순한 코더가 아닌 월드 클래스 개발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한국 학생들의 결과물은 기대치보다 훨씬 좋았고, 다른 국가에서는 1년 과정을 마치고 수십개 이상의 앱이 출시되진 않는데 31개팀이 모두 훌륭한 앱을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2일 1기 수료식을 마친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는 수료생 190명을 배출했다. 이들은 약 70개 이상의 앱을 출시했다.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2기 모집을 마쳤으며, 내년 3월부터 9개월간 새 학기가 시작된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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