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미디어의 '빛'이 났던 순간들
[연말 기획] 달라진 참사보도부터 한겨레의 첫 신뢰보고서, 40년만의 조작보도 사과와 '우영우'의 등장까지
[미디어오늘 박재령·윤수현·김예리·노지민·정철운 기자]
2022년에도 미디어업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2022년, 업계에서 유의미했던 변화의 순간들을 찾아봤습니다. 2023년에는 더 나은 저널리즘과 더 나은 미디어 환경으로 변화하길 소망해봅니다. (편집자주)
'우영우'와 '이영희'
신드롬으로 불린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 주연의 대중 콘텐츠가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비장애인 배우가 뛰어난 변호사 우영우를 맡았다는 지적은 장애인 재현에 대한 공론화를 자극했다. 비슷한 시기 다운증후군이 있는 정은혜 미술작가는 tvN '우리들의 블루스' 이영희로서 당사자 연기의 힘을 보여줬다. EBS '딩동댕 유치원'엔 40년 만에 처음 휠체어 타는 아이와 다문화 아이가 등장했고, 웨이브 '메리퀴어' '남의 연애'는 연애프로그램이 이성애자 전유물이란 편견을 깼다. '진짜' 현실의 문을 열 수많은 우영우를 기다려 본다.
언론윤리는 댓글에도 있다
뉴스를 만들고 유통하는 이들이 혐오 확산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폭행으로 실형을 살고 출소한 정치인 소식에 한겨레는 기사를, KBS는 댓글창을 닫았다. 댓글창 차단 영역을 아동학대, 성범죄에서 사회적 소수자나 재난 보도 등으로 확대하자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11월 네이버는 뉴스 악성댓글을 막는 인공지능 '클린봇'을 언론사 웹사이트에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 풍선효과 등 한계도 논의돼야 하지만 '막을 수 있는 혐오'를 막기 위해 당장 나서는 시도들은 반가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조회수' 넘어 새로운 수익 마련 나선 언론사들
2022년은 주요 언론사들이 수익창출원 다각화 시도를 본격화한 해다. 광고와 종이신문 구독료만으로는 생존을 도모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결과다. 현재로선 뉴욕타임스처럼 독자적 온라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유료구독 모델'이 대안이다. 조선·중앙일보가 '로그인 월'을 도입해 올해 본격적 도전에 나섰고, 한국경제도 로그인 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SBS는 '스브스프리미엄'이라는 별도 플랫폼을 개설했다. 아직 본격적인 유료 로그인 월을 도입한 언론사는 중앙일보가 유일하지만, 내년에는 언론계에 더 많은 실험과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영방송 KBS, 40년 만의 사과
“KBS의 아주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6월16일 KBS 시청자위원회에서 김덕재 KBS 부사장은 “간첩 조작 사건으로 피해를 보신 분들에게 KBS를 대표해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KBS가 약 40년 만에 군사독재시절 자사의 간첩조작 보도에 공식 사과하는 순간이었다. 앞서 KBS '시사기획 창'은 지난 5월 '언론과 진실'편을 통해 간첩 조작에 동조했던 언론의 민낯을 공개하며 “KBS를 포함해 언론은 간첩 조작의 가해자였다”고 평가했다. 오보나 왜곡 보도가 드러나도 감추기에 급급했던 한국언론이 더디지만, 한 걸음 전진한 순간이었다.
기후위기 관심 높아진 언론계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7)에 경향신문, 세계일보, 한겨레가 현장 취재에 나섰다. 지난해는 한겨레만 기자를 현장에 보냈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폐기물 문제를 다룬 기사로 1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고 세계일보는 2월 환경팀을 신설했다. 진보지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환경·기후이슈에 중도 및 보수지도 뛰어드는 모양새다. 대중은 기후 관련 보도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국민 2000명 중 응답자 73.1%가 기후 위기 관련 보도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한겨레가 내놓은 '신뢰보고서'
한겨레가 '한겨레 신뢰보고서 2022'를 발간하면서 한겨레를 향한 외부 전문가들의 정파성 지적과 미게재 보도 등 내부 과정을 공개했다. 실수와 약점, 반성을 종합해 한겨레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자 하는 취지다. 이외에 '한겨레 다양성 보고서 2022'에선 직원과 편집국의 인적 구성 데이터가 공개됐다. 한국 내 언론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각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신뢰를 되찾고 외연을 넓히고자 노력할지 미래 양상이 주목된다. 스타트를 끊은 한겨레는 해당 보고서를 매년 발간할 계획이다.
이태원, 달라진 참사보도
언론의 참사 보도는 학생 전원 구조 오보, 선정적 보도가 난무했던 세월호 참사 때 보다 조금은 나아졌다는 평가다. 이태원 참사 직후 지상파 3사, YTN 등은 “이태원 참사 현장 영상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자극적 보도를 지양하는 세부 준칙과 유족 취재 원칙을 빠르게 만들어 공유했다. 내부에선 세월호 이후 참사를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전했다. 물론 저연차 기자들만이 현장에 배치되는 관습은 여전했고 '마약', '유명인' 등 추측성 보도가 이어졌다. '핼러윈이 변질됐다'는 식의 피해자를 탓하는 보도도 있었다. 갈 길은 멀다.
비정규직 백화점서 승리한 '무늬만 프리랜서'들
'무늬만 프리랜서' 고용책임을 회피하는 '원청 방송사'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진화한 한 해였다. 그럼에도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존의 보수적 판단 기준을 뛰어넘어 새 판례를 끌어낸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서울행정법원은 MBC 보도국 작가들이 '방송사가 고용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고 첫 판결 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YTN '소속' 직원이 아닌 메인작가 지시를 받고 일한 취재작가를 YTN 소속 노동자로 인정했다. 서울남부지법은 KBS가 뉴스 진행, 편집, CG, 중계, 오디오녹음 등을 맡은 노동자 230여명을 불법 파견했다며 배상 판결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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