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광고 상품 소개서 살펴보니… 오만과 탐욕이 들어있었다
구독자 감소로 광고요금제 도입해
광고주 모집 중인 넷플릭스 상품 인기
하지만 중요한 데이터 비밀에 부쳐
광고 앞세워 ‘락인 전략’ 강화 시도
오리지널 콘텐츠에 ‘브랜드 협업’ 방침
# 넷플릭스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구독 서비스' '독점 제공'을 통해 전 세계인의 콘텐츠 소비 습관을 완전히 바꿔 놨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놀라운 혁신 탓에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진 상황을 일컬을 때 '넷플릭스당했다(Netflixed)'란 말을 사용하는 이유다.
# 하지만 2022년 넷플릭스는 예년만 못했다. 처음으로 유료 가입자 수가 감소했다. 경기침체와 시장 경쟁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글로벌 미디어 대장주 자리를 디즈니에 다시 내주기도 했다.
# 이 때문인지 넷플릭스는 전략 변화를 꾀했다. 출범 초기부터 '애드 프리(무광고)' 원칙을 내세우던 이 회사가 2022년 11월 광고요금제를 도입한 건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글로벌 OTT 시장을 이끄는 플랫폼답게 넷플릭스의 광고 상품은 전 세계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구독료로만 먹고살던 넷플릭스로선 새로운 캐시카우를 만들어낸 셈이다.
# 다만 이런 변화를 넷플릭스의 고객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 회사가 강조해온 '시청 경험'을 각종 광고와 PPL이 훼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스쿠프가 넷플릭스의 '광고 상품 소개서'를 통해 단독 입수했다. 여기엔 넷플릭스의 오만하면서도 탐욕스러운 전략이 들어 있다.
"우리는 광고 수익을 위한 경쟁에서 벗어나 시청자 만족을 위한 경쟁에 전적으로 집중할 것이다. 이로써 장기적으로 더 가치 있는 비즈니스를 갖게 될 것이다(2019년 2분기 넷플릭스 주주서한)."
"광고로 고객을 착취하는 일엔 관심 없다. 우리는 아무런 데이터도 수집하지 않는다. 그저 고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2019년 4분기 실적 콘퍼런스ㆍ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 CEO의 설명대로 그간 넷플릭스는 '광고 없이'도 승승장구했다. 유료 가입자가 내는 구독료만으로도 충분했다. 2022년에도 분기당 70억 달러(약 8조8690억원)를 웃도는 매출을 기록했다. 수익성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매분기 15억 달러가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런 넷플릭스의 매출ㆍ영업이익이 2023년부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가 '고객을 착취하는 일'이라면서 전략에서 배제해 왔던 광고 비즈니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넷플릭스의 실적 근간인 유료 가입자 증가세가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전세계 유료 가입자 수는 2022년 1분기 20만명 줄어들었다. 사상 첫 감소세였고, 이는 2분기(-97만명)까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2022년 11월 새로 도입한 광고요금제는 국내에선 월 55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기존 요금제인 베이직(9900원), 스탠다드(1만3500원), 프리미엄(1만7000원)보다 저렴한 대신, 고객은 콘텐츠를 시청할 때마다 광고를 봐야 한다.
광고 비즈니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는 자신들의 공식 광고 파트너사인 나스미디어를 앞세워 광고주들을 모집하고 있다. '광고 없는 성장'이란 슬로건이 무색해질 정도로 분주한 모습인데, 나스미디어가 작성한 20여쪽으로 구성된 '광고 상품 소개서'도 함께 나돌고 있다.
문제는 광고 상품을 나열해 놓은 이 소개서에 오만과 탐욕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더스쿠프가 넷플릭스의 광고 소개서를 입수해 심층 분석했다.
■ 오만, 미지의 지표 = 최근 디지털 광고업계는 넷플릭스의 광고 상품 소개서를 두고 술렁이고 있다. 정확히는 불평불만이다. 넷플릭스 특유의 비밀주의 탓에 광고 효과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대표적인 게 '마케팅 도달범위'다. 넷플릭스는 상품 소개서에 '광고요금제에 가입한 국내 소비자의 현황'을 넣지 않았다. 광고주가 넷플릭스에 광고를 진행했을 때 얼마나 많은 시청자에게 광고가 도달할 수 있을지를 비밀에 부친 셈이다.
논란의 소개서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소개서 서두엔 글로벌 OTT 시장을 장악한 넷플릭스의 위상을 줄줄이 써놨다. "190개 국가, 구독자 2억2100만명, 전 세계 시청자 6억8500만명, 소셜미디어 팬 7억6000만명…." 한국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보유한 '넘버원 OTT 서비스'라는 점도 어필했다. 국내 전체 OTT 이용자의 4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했다는 거다. 서두에 이어 본문엔 광고 노출 방식과 가격, 분량 등을 설명해 놨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론 누가 얼마나 이 광고를 보거나 볼 수 있는지를 알기 어렵다. 언급했듯, 넷플릭스의 광고는 광고요금제에 가입한 고객에게만 노출된다. 소개서에서 내세운 '6억명이 훌쩍 넘는 가입자'와 '4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은 이 상품과 접점이 없다는 얘기다.
디지털 광고업계 관계자는 "광고 상품 소개서의 디테일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광고주들이 대행사인 나스미디어에 추가 설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넷플릭스 광고요금제의 흥행 여부가 광고주가 원하는 광고 효과와 직결되는 셈인데, 이런 내용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다른 미디어 업계 마케팅 관계자는 넷플릭스 광고 소개서를 두고 "더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광고하고 싶은 니즈를 가진 광고주에 매력적인 소개서는 아니다"면서 "'우리가 넷플릭스'란 식의 자신감만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넷플릭스는 광고요금제에 가입한 구독자 수만 비공개로 한 게 아니란 점이다. 베일에 싸인 지표는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게 국가별 유료 구독자 수 추이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구독자 수와 대륙별 구독자 수는 실적 발표와 함께 공개하고 있지만, 국가별 수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가 내놓은 콘텐츠의 정확한 흥행 수치도 알기 어렵다. 매주 인기 상위에 오른 콘텐츠를 추려 발표할 뿐이다. 이는 넷플릭스란 OTT의 정책적 판단에서 기인한 '깜깜이'다. 넷플릭스는 제작진에도 수치를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비밀주의를 내세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OTT 업계 관계자는 "그간 넷플릭스는 광고 수익모델을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청률이나 국가별 가입자 수를 공개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광고요금제를 도입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넷플릭스가 광고요금제의 가입자 수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건 광고요금제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시장조사업체 안테나의 자료를 인용해 2022년 11월 한달간 미국에서 넷플릭스에 가입한 신규 고객 중 광고요금제를 선택한 비율을 따져봤다. 놀랍게도 결과는 9%에 불과했다. 기존 고객을 포함한 전체 미국 고객 중에서 광고요금제를 선택한 비율은 이보다 더 낮은 0.2%에 머물렀다.
국내에서도 반응이 미적지근하긴 마찬가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넷플릭스 광고요금제 출시를 앞두고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7명은 광고요금제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광고요금제를 이용할 의향이 있는 질문에는 68.9%가 "조건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답했고, "전혀 생각이 없다"는 응답률은 27.8%나 됐다.
광고 가격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넷플릭스는 상품의 가격을 CPM(1000회 노출되는 데 필요한 광고비) 기준으로 책정했다. 15초 상품은 6만2720~7만5260원, 30초 상품은 7만8400~9만4080원이다. 여기에 고객 타기팅을 좁히면 추가 할증을 붙인다.
가령, 넷플릭스의 톱10 콘텐츠에 광고할 경우 40%, 특정 연령과 성별에만 광고가 노출하게끔 유도하면 25%의 추가 요금이 붙는 식이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노출 방식이 달라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유튜브는 CPM 기준 2만원 안팎인데, 넷플릭스는 이보다 3~4배 비싸게 책정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넷플릭스 광고 상품은 인기가 높다. 넷플릭스가 2022년 시범적으로 적용한 광고 상품은 이미 대부분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넷플릭스가 가진 위상과 브랜드 파워가 대단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기업 실무진 사이에선 "넷플릭스가 브랜드와 플랫폼을 힘을 믿고 배짱 영업을 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경쟁사가 넷플릭스 광고 슬롯을 다 선점하면 곤란한 상황이 올 수 있어 구매 고려를 안 할 순 없는 상황"이라고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 탐욕, PPL = 그만큼 넷플릭스의 위상이 탄탄하다는 건데, 이 소개서엔 더 무서운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광고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론칭한 넷플릭스의 수익화 전략은 광고요금제를 통해 구독자를 늘리고, 광고주를 모집하는 일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넷플릭스의 광고 상품 소개서를 더 깊숙하게 들여다보면, 그들의 수익 다각화 전략을 어림잡을 수 있다.
수익 다각화 전략의 핵심 무기는 '오리지널 콘텐츠'다. 넷플릭스 광고 상품 소개서엔 '추후 예정인 스폰서십 상품'을 안내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면서 특정 기업 브랜드와 협업한 사례를 담았다. 드라마 '기묘한이야기'와 도미노피자, 영화 '애덤프로젝트'와 미국의 식품회사 크래프트의 콜라보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콘텐츠이면서도 작품 내에 해당 기업의 브랜드 상품을 눈에 띄게 많이 노출시켰다. 국내 미디어 환경으로 치면 'PPL(간접광고)'을 했던 건데, 넷플릭스로선 상품 소개서를 통해 이런 PPL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오리지널 콘텐츠의 기획ㆍ제작 단계부터 참여하는 브랜드 광고, 이를테면 PPL이 구독자 증가세가 꺾인 넷플릭스의 또다른 캐시카우가 될 수 있다는 거다.
■ 또다른 전략 락인 = 소개서엔 오리지널 콘텐츠를 활용한 또 다른 전략도 숨어있다. 넷플릭스는 같은 광고 요금제로 콘텐츠를 보더라도, 오리지널 콘텐츠와 제휴 콘텐츠에 차별을 뒀다. 가령, 제휴 콘텐츠 영화는 프리롤(영상 시작 전 광고)과 미드롤(영상 중간 노출 광고)을 모두 삽입한다.
반면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영화엔 프리롤만 삽입한다. 광고 요금제에 가입한 구독자는 오리지널 콘텐츠 영화를 볼 땐 중간 광고를 안 봐도 된다. 이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몰입도가 제휴 콘텐츠보다 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오리지널 콘텐츠는 넷플릭스를 글로벌 1등 OTT로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다. 2012년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작해 2021년 '오징어게임'까지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전 세계 시청자를 락인(Lock-in)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점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에 중간 광고를 넣지 않기로 한 건 '락인 효과'를 더 강하게 만들려는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 교수(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넷플릭스가 자체제작한 콘텐츠라고 모두 흥행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화제를 모으는 데 실패하면 돈만 쓴 꼴이 된다. 이런 점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에 중간 광고를 넣지 않겠다'는 전략은 머뭇거리는 구독자를 넷플릭스로 향하게 만드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
다만, 광고를 앞세운 넷플릭스의 전략적 변화를 시청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시청자들은 콘텐츠에 달라붙어 있는 광고나 PPL을 거추장스럽게 본다. 사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광고를 콘텐츠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만든 건 '무광고 전략'을 사용한 넷플릭스의 영향이 크다. 일정한 구독료를 내면 광고도 없고 PPL도 없는 콘텐츠를 몰아 즐길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을 이 플랫폼이 선사했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넷플릭스가 수익성을 강화할수록 소비자들의 시청 경험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면서 "넷플릭스가 전략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이 받을 위화감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광고를 선택하면서 탐욕을 드러낸 넷플릭스는 더 많은 시청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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