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품위 있는 달콤함, 마음 속 응어리가 사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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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도 내가 내키지 않는 음식이 있다.
음식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브리코 콸리아와 벨기에 와플은 내가 재충전이 필요할 때 애용하는 조합이기도 하다.
이 둘은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선입견이 경계의 대상이라는 걸 알려줄 뿐 아니라 '내가 나름 괜찮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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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도 내가 내키지 않는 음식이 있다. 내 경우, 모스카토 와인과 벨기에 빵인 와플이 그랬다.
그런데 모스카토는 내가 다녔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가 있는 아스티(Asti)를 대표하는 화이트 와인 품종이다. 얼마나 유명하냐면 모스카토 다스티(아스티의 모스카토란 뜻)로 불릴까. 모스카토를 좋아하지 않았던 건 당도 탓이었다. 내 입맛에 과하게 단데 알코올 도수는 낮았다. 사탕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과 정반대다. 오히려 꽃향기가 진한 아스티의 또 다른 발포성 와인 브라케토가 나는 더 좋았다.
와플을 꺼린 까닭도 비슷했다. 달고 흐물거린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어느 여대 친구들과 가끔 그들의 학교 근처 와플 집을 다니면서부터 이런 생각을 했다. 해외에서도 와플을 먹어봤지만 느낌은 비슷했다.
하지만 나의 오래된 편견이 얼마 전 깨졌다. 모스카토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건 이탈리아 친구들이다. 모스카토를 피한다고 했더니 피에몬테 친구들은 나에게 와이너리 ‘라 스피네타’의 모스카토인 ‘브리코 콸리아’를 소개해줬다.
이 와인은 모스카토로는 드물게 단일 밭의 포도로 만든다. 그래서 품위 있게 달다. 덜 단 맛 사이로 꽃과 과일 향기가 앞다퉈 밀려온다. 또 대량 생산으로 발포성 와인을 만드는 샤르망 방식을 쓰지만 거품이 전통적 방식의 스파클링처럼 아주 정밀하다. 입에 머금으면 작은 들꽃이 입안에서 터지는 느낌이다. 내가 알고 있던 모스카토가 아니었다.
코뿔소·사자가 그려진 라벨로 유명한 라 스피네타는 1977년 문을 연 후발주자다. 이 와이너리는 모스카토로 시작해 성공을 거둔 뒤 피에몬테를 대표하는 바르베르스코·바롤로를 빚었다. 최근에는 토스카나까지 진출했다. 모스카토는 물론이고 와이너리의 생산 와인 대부분이 각종 대회와 평론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와플에 대한 편견을 깬 것은 아내 덕분이었다. 아내가 얼마 전 여의도에 들렸다가 벨기에 사람이 가문의 레시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플을 사 왔다. ‘와플이 와플이지’라며 씹는 순간 와플에 대한 고정관념이 단박에 깨졌다. 이를 밀어내는 탄력과 버터와 설탕의 농밀한 향에 놀랐다. 뜨거운 와플의 맛은 달고 느끼한 것을 꺼려왔던 나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물했다.
음식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브리코 콸리아와 벨기에 와플은 내가 재충전이 필요할 때 애용하는 조합이기도 하다. 특히 강연이나 방송 출연 뒤 긴장이 쫙 풀린 밤에, 나는 이 와플(애플 시나몬을 좋아한다)과 브리코 콸리아를 함께 마시곤 한다. 간단하게 와플에 와인 한두잔 하려고 시작하지만 이내 다 먹어버린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와플의 농밀한 단맛과 모스카토의 상큼함이 어우러지면서 마음속의 응어리를 완벽하게 녹여버린다.
이 둘은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선입견이 경계의 대상이라는 걸 알려줄 뿐 아니라 ‘내가 나름 괜찮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추운 날씨 탓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이맘때 나에게는 제법 유용하다.
글·사진 권은중(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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