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비밀이 ‘웃음의 위로’로 변신했다
우리의 첫 스탠드업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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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오면서 할아버지 여러명과 마주쳤고 자주 그들을 때렸다. 그것이 내 삶을 통틀어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유일한 경우였다. 할아버지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내 몸을 더듬었다. 횡단보도에서,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지하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길모퉁이에서. 마치 자기 걸 만지듯이 당연하게 더듬고는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뻣뻣이 굳어버렸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 할아버지가 아무 일도 없이 귀가해서 곤히 자고 있을 걸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털어놓아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미 그 순간은 지나갔고, 나는 아무것도 못 했으며,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사람에게 위로받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나를 더듬고 돌아선 한 할아버지의 뒤통수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그날 밤 단잠에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내가 때린 할아버지들
내가 때린 할아버지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한 편의 만화영화 같은 일화가 쌓여갈 때마다 친구들은 말했다. “할아버지 얘기 해 줘.” 그러면 나는 그날의 티피오(TPO, 시간·장소·상황)에 맞는 할아버지를 한명 골라 그를 때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잠자코 듣던 친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다 일제히 웃어 젖혔다. 엉덩이에 털이 날 일이었다. 누군가는 불쑥 손을 잡더니 고맙다고 했고, 누군가는 벌떡 일어나서 자신에게도 때리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놀라운 것은 그런 식으로 더듬어지지 않은 몸을 찾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믿고 싶지 않을 만큼 한명도 빠짐없이 그랬다.
그들은 불시에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뻣뻣이 굳은 여자들만 남았다. 여자들은 갈수록 굳어갔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그때와 똑같은 얼굴을 했다. 나는 여자들이 할아버지를 마주친 순간 어디든지 뿅 하고 나타나 대신 두들겨 패주는 상상을 했다. 뻣뻣이 굳은 몸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다 같이 할아버지의 급소를 차는 훈련을 하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의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자 나는 이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그것이 나의 첫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였다.
2022년 12월의 첫째주 주말, 마포의 한 작은 바에서 역사적인 첫 공연이 열렸다. 그 공연의 제목은 이름하여 <일어나서 웃겨봐>. 동명의 스탠드업 코미디 워크숍 ‘일어나서 웃겨봐’의 수료 기념으로 열린 스탠드업 코미디 쇼다. 무대에는 워크숍에서 살아남은 최종의 6인이 올랐다. 올해 5월부터 12월까지 약 6개월간 40명으로 시작한 워크숍이 6명이 되는 동안, 포기하지 않고 말하기와 스탠드업 코미디를 단련해온 이들이었다. 추운 겨울밤 한적한 주택가 모퉁이에 위치한 작은 바는 활기를 띠었다. 세번 여는 공연은 하루 만에 매진되었고, 100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갔다.
나는 이 모든 사건의 주최자로서 공연의 호스트를 맡았다. 자리를 가득 채운 관중들에게 말했다. “오늘 공연은 스탠드업 코미디가 아닙니다.” 관중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일어나서 뭘 할 거긴 한데, 여러분이 웃어야 코미디가 되죠. 코미디라는 건 결국 결과론적인 거니까요.” 그때 대기실에 있던 코미디언들은 생애 첫 무대를 앞두고 덜덜 떨고 있었다. 객석이 찰 때마다 그들의 얼굴은 한 톤씩 하얘지더니 거의 백지장에 가까워졌다.
그즈음 우리는 공연이 재미가 없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서로의 이야기에 웃지 않은 지가 이미 오래였다. 완전히 질려 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열번도 더 넘게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더 이상 흥미롭거나 새롭지 않았다. 말로도 들었고 글로도 수도 없이 읽어서 가슴에 새기다 못해 문신을 한 기분이었다. 누군가 다음 대사를 까먹으면 옆에 있는 누구라도 다음을 읊어줄 수 있었다. 단어 하나라도 다르게 말하면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공연 전 2주 동안은 잠을 줄여가며 새벽까지 대본을 외웠다. 고3 수험생 이후로 뭔가를 그렇게 열심히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 그들은 한 공간에 모여 모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엔 초점이 없었으며 다리를 달달 떨고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다 이름이 불리면 벌떡 일어나 무대로 나갔다.
농담이 태어나기까지
무대 위에 오른 뒤에야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나기 전까지 농담은 채 태어나지도 않은 것이었다. 늙고 병든 엄마가 거부할 수 없이 ‘귀여워서’ 돈을 모아 왼쪽 귀에는 청력을, 오른쪽 눈에는 수정체를 심어줬다는 케이(K)-장녀 미진부터, 7816일 동안 자신의 옆자리를 지킨 반려견 마일로에게 말 그대로 개 짖는 소리로 30초 동안 영상 편지를 쓴 자연, 젖꼭지가 싫다는 한마디로부터 무성애와 혐오라는 거대한 담론을 웃으며 가로지른 우디, 사촌 오빠의 성추행으로부터 가장 은밀하고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가족 내 성추행과 낙태, 여성 혐오, 비건을 농담의 영역으로 꺼내놓은 소윤, 이제는 태양계에서 퇴출당한 명왕성에서 비밀 요원으로 지구에 파견되었지만 서울 집값이 너무 비싸 경기도 파주에서 월세를 사는 사회 초년생 명왕인 미드, 돌고 돌아 결국 아빠 딸이지만 아빠가 상상했던 그 모든 것보다 위대함을 증명하는 어마무시한 딸년 서브까지.
관중들은 금세 비밀을 눈치챘다. 이 모든 이야기는 웃음기를 빼고 말하는 순간 하나도 웃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살면서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할, 가장 고통스럽고 은밀한 비밀이자 비극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떤 비극은 그만한 무대가 필요하다는 걸, 어떤 비밀은 그만큼 큰 빛과 무대와 관객으로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알까. 관객들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망설이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렇게 입은 웃고 눈은 울면서 요상하게 일그러진다.
나는 웃으며 관객에게 묻는다. 어떤 한 가지 이야기를 열다섯번 고쳐본 적이 있냐고.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되풀이하여 말하고, 글로 쓰고, 고치고, 다시 말하는 과정을 그렇게 반복하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이야기 속에 담겨 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그리고 분명히 휘발되고 있음을. 무엇이 슬픈 이야기고, 무엇이 웃긴 이야기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음을.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모두와 웃을 일만 남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글 쓰고 말하는 사람이다. 에세이집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유료 뉴스레터 ‘격일간 다솔’을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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