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고·햇반 안 팝니다"…세밑 갑들의 전쟁
내년 납품가 조정 두고 벌어지는 협상
'안 팔면 손해'…합의 이룰 가능성 높아
올해의 마지막 주간유통 시간입니다. 즐거운 이야기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지만, 식품업계 제조사와 유통사 간 납품가 갈등이 거세지면서 이번 주에도 싸우는 이야기를 다뤄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서 쿠팡이 CJ제일제당 제품의 발주를 중단하는 등 한 차례 소동이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롯데마트가 CJ제일제당·대상·풀무원·롯데제과와 납품가를 두고 이견을 보이다가 '발주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거, 심각한 걸까요?
'납품가 업or다운' 공방전
모든 '발주 중단' 사건의 중심에는 납품가가 있습니다. 유통업계는 연말에 제조업체와 내년도 상품 납품가를 협상합니다. 취급하는 물량이 막대한 만큼 상품을 얼마나 공급할 지, 얼마에 공급할 지 미리 정해 두는 거죠. 당연히 양 측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가격으로 계약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입니다.
발주 중단은 이 과정에서 유통사가 꺼내들 수 있는 카드 중 하나입니다. 사실, 최후의 카드라고 봐야겠죠. 그 가격에 파느니 차라리 안 팔고 말겠다는 일종의 '블러핑(bluffing)'입니다. 한 마트에서 자사 제품이 끊기면 다른 마트에서 팔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은 자신이 주로 가는 마트나 이커머스를 잘 바꾸지 않습니다. 눈에 띄는 대체 제품을 사죠.
그래서 업계에서는 제조사와 유통사 간 분쟁이 생길 경우 대체로 '유통사가 갑질을 했다'고 인식합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도 비슷한 사례들에서 유통사가 제조사보다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었죠. 쿠팡이 CJ제일제당과의 분쟁에서 '납품가'가 아닌 '공급량 부족'을 강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납품가를 낮추려고 갑질한 게 아니라는 거죠.
유통사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최저가를 원하는데, 제조사는 원가 상승을 이유로 자꾸 가격을 올립니다. 올린 가격을 다 반영해 주다 보면 최저가 판매나 마진,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 비싸게 팔면 재고만 쌓이겠죠. 결국 마진을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 앞에 식구도 없다
최근 롯데마트와 제조사들의 다툼을 보면 '누가 갑'인지를 따지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번 발주 중단 역시 '납품 단가'가 발단이 됐습니다. 롯데마트와 롯데슈퍼가 통합 작업을 하던 중 같은 제품인데 마트와 슈퍼의 납품가가 다르다는 걸 확인한 겁니다.
롯데마트는 제조사들에 두 가격 중 납품가가 낮은 쪽으로 가격을 맞춰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하면서 '발주 중단'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심지어 이 제조사 중에는 그룹 계열사인 롯데제과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룹 계열사끼리도 '마진율' 앞에서는 남남이 된 셈입니다.
롯데마트 입장에서는 롯데슈퍼와 통합을 하며 납품가를 눈으로 확인했으니 당연히 '맞춰 달라'는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못 봤다면 모를까, 봤는데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죠. CJ제일제당 등 제조사들의 입장도 납득이 갑니다. 판매 채널이 다르고 방식도 다른데 무조건 낮은 가격에 맞춰 달라는 건 떼를 쓰는 거라는 주장입니다.
유통사가 '갑'이 돼서 일방적으로 제조사를 쥐어짜는 것도, 제조사가 '갑'의 입장에서 유통사에 '손해보고 팔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양 측이 모두 최선의 이익을 내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거고, 발주 중단은 그 일환인 거죠.
그래서, 비비고 만두 살 수 있나요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의 발주 중단 이슈가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며 부담을 갖기도 합니다. 연말 협상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데 마치 다시는 거래하지 않을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는 거죠.
실제 롯데마트는 이슈 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상과 협상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풀무원과도 큰 이견 없이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CJ제일제당은 대상이나 풀무원보다 납품 품목이 많아 진행이 더디지만 업계에서는 이 역시 '합의 불가'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서 서로 "갑질"이라며 거친 여론전을 펼쳤던 쿠팡과 CJ제일제당도 협상에 진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쿠팡과 CJ제일제당은 최근 '양사는 서로 중요한 파트너이다, 이번 논란은 논의 과정에서 나온 파열음에 불과하며 향후 신뢰를 기반으로 잘 풀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연말에 마진율 조정을 놓고 서로 이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매년 있는 이슈인데 올해엔 가격 인상 이슈 등이 맞물리면서 조금 더 수면 위로 올라오며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부각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채널과 제조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 운명체입니다. 결국 모든 건 '협상의 일환'이라는 의미입니다. 쿠팡이나 롯데마트에서 다시는 햇반을 사지 못할까봐 걱정하셨다면, 조금은 덜어 두셔도 될 것 같습니다.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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