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2] 작은 머리, 선명한 복근, 긴 팔과 다리, 큰 눈과 오뚝한 콧날, 거기에 찰랑이는 머릿결까지. 고대 그리스가 그린 미(美)의 이상향입니다. 태곳적 미의 기준은 여전히 아름다움의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리스 남신을 묘사한 석상이 풍기는 아우라에 넋을 잃곤 하지요. 독일의 미학자 빙켈만은 “그리스 비율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은 절대자의 진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석상의 딱 한 군데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움 그 자체지만, 어째서인지 남성성을 상징하는 성기가 형편없는(?)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석상으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유달리 작은 성기로 묘사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큰 성기는 남성성의 지표인데도 불구하고, 왜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남신을 ‘고개 숙인 남자’로 표현했을까요.
두 번째 사색, 바로 성기의 역사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선 작은 성기가 사랑받았다?
고대에서 성기는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었습니다. 농경사회일수록 노동력이 많아야 했고, 다산(多産)은 선으로 통했기 때문입니다.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봐도, 가슴과 성기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묘사돼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보다 앞선 이집트에서도 큰 성기로 묘사된 신의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하지요. 라이벌 관계였던 페르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들에게 성기는 ‘대대익선’(大大益善)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고대 그리스에서만 성기가 유독 작게 그려졌을까요.
그리스 석상의 작은 성기는 학자들에게도 ‘핫이슈’ 였습니다. 수많은 미술사학자가 이 주제에 천착했고, 결국 결론을 도출해냅니다. “그리스의 성기가 작은 건 그것을 매우 아름답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요.
우리가 알다시피, 고대 그리스는 철학의 나라였습니다. 이들에게 남성성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신체 단련을 통한 근육질 몸매와 합리적 사고로 무장한 이성이었죠. 인간의 강한 의지로 신체적 아름다움과 빛나는 지성을 갖출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원초적인 욕망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교양있는 그리스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성기는 욕망의 지표였기에 그만큼 작아야 했던 셈입니다. 성장하지 않은 아이의 성기가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그리스의 동성애’를 쓴 케네스 도버는 “그리스인들에게 거대한 성기는 그저 멍청하고 탐욕적이며 흉한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성기의 대대익선 이데올로기가 그리스에서 만큼은 소소익선이 된 셈입니다.
고대로마에선 작은 여자도 사랑받았다
소소익선의 흐름은 여성에게도 적용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계승한 로마로 가봅니다. 고대 로마에서 가슴이 풍만한 여성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로마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는 “여성의 가슴은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입니다. 현대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으로 보자면, 공분을 살만한 발언이지만, 당시 로마 사람들의 이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로마 여성들은 당대 미의 기준에 자신의 몸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천과 붕대로 가슴을 세게 묶어 가슴이 자라는 걸 막았다고 합니다. 일각에선 브래지어의 시작이 고대 로마에서 시작됐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태조 왕건이 왕건(?)이 아니었다고?
고대 그리스의 작은 성기 예찬은 이역만리 한반도에서도 이어집니다. 바로 고려시대입니다. 2000년 전 그리스와 1000년전 고려가 무슨 연관이냐고요. 해답을 찾기 위해서 1992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한 동상이 발견됩니다. 역사학계를 발칵 뒤집을만한 일이었습니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을 묘사한 동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계가 주목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왕건의 성기였죠. 최고존엄인 왕의 동상임에도 불구하고, 성기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인 2cm로 작게 묘사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라 지증왕이 거의 30cm에 달하는 성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을 정도로 고대 한반도에서도 큰 성기가 대접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고려의 반감을 갖고 있던 반골세력이 “왕건은 왕건(?)이가 아니”라며 폄훼하려던 것이었을까요. 전혀 아니었습니다. 답은 불교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이 왕건상이 당시 불교문화가 집약된 결과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부처가 갖춰야 할 32가지의 신체 특징을 ‘32대인상’으로 규정합니다. 그 특징 가운데 하나가 ‘마음장상(馬陰藏相)’이었습니다. 말(馬)의 남근(陰)처럼 성기가 오그라들어 몸 안에 숨은(藏) 형상(相)을 뜻합니다.(말이 성기를 숨기고 있다는 것도 의외의 사실입니다). 도가 통하여 깨달음을 얻으면 하체의 양기가 머리쪽으로 올라가 성기가 아주 작아지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깨달음이 부족합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 왕건의 성기를 아주 작게 표현하여 “부처와 같은 깨달음을 얻은 자”라고 존경을 표했던 셈이지요. 태조왕건상과 그리스 석상의 연결고리입니다.
모든 것은 아름답다, 큰 것도, 작은 것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고려. 세 나라가 그린 미의 이상향을 돌아보면서 다시 사색합니다. 이상적인 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걸요. 영국 미술 사학자 엘렌 오렌손 역시 “큰 성기가 남성적이라는 건 현대인의 상상”이라고고 우리를 위로(?)합니다.
남녀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시대입니다. 남성을 조롱한다면서 작은 성기를 의미하는 손가락 모양 로고를 사용한 커뮤니티도 있었습니다. 행여 현실에서 당신을 조롱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해보시는 건 어떤지요.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숭상한 미(美) 그 자체이면서, 부처의 깨달음을 얻은 자”라고요. 계묘년, 그리스적인 자신감으로 충만한 한해를 보내시길.
<참고자료>
ㅇ고려 태조왕건의 동상(2012년), 노명호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ㅇ막대에서 풍선까지:남성 성기의 역사(2003년), 데이비드 프리드먼 지음, 까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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