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임인년 ‘미스터 션샤인’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김순덕 대기자 2022. 12. 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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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나를 뽑아준 편집국장 댁에 몇몇 선배들과 세배를 갔을 때다. 여기자는 한해 한두 명쯤 뽑히던 그 추운 시절(지금은 거의 절반이다), 국장이 “기자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를 보는 기자와 안 보는 기자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걸 들여다보기 시작해 연말이면 이 잡지가 내놓는 새해 세계전망을 들여다보는 게 나만의 연말행사가 됐다(작년 말 이코노미스트는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했다).

2023년 전망을 담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 표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연말 새해 전망을 담은 특집호를 발행한다.
1년 전 ‘50억 벌어 교수직도 던진 최성락 투자법’이라는 책으로 대박 낸 최성락 전 동양미래대 교수도 젊은 날 비슷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이코노미스트’가 본 본 근대조선’이라는 제목에 꽂혀 그의 책을 샀다. 서문을 보니 대학 때 고품격 영어잡지를 봐야 영어실력이 는다는 영업사원에 홀려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100년 전 조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그가 굳이 일본 국립도서관까지 찾아 이코노미스트를 뒤진 건 1843년 창간된 이 잡지가 객관적 시각으로 사건을 보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엔 방관자가 사물을 냉정히 바르게 본다(傍觀者淸)는 격언도 있다던가.


청일전쟁 러일전쟁 예견했던 이코노미스트

안타깝게도 약소국 조선이 단독으로 다뤄진 기사는 없다. 중일 러일 등 강대국 관계의 대상으로 언급될 뿐이다. 제목이 Korean War인 1894년 9월 24일 기사도 청일전쟁을 다룬 내용이다. “일본군을 목격한 사람들은 장비와 조직의 정밀함을 언급했으며 함대의 상태도 최상인 점에 주목했다”며 일본의 승리를 전망했다(조선에선 죄 청나라 승리를 믿었다).

청일전쟁 내용을 다룬 이코노미스트 1894년 9월 24일 지면. 구글·미국 미네소타대 자료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광무개혁을 시작했던 1898년 1월 8일 기사는 슬프기 짝이 없다. “러시아는 조선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과 완전한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거다. 1899년 말부터 ‘극동지역에서의 소문’이라는 제목으로 5년 후의 러일전쟁을 예견한 것도 놀랍다. 1902년 1월 30일 영일동맹을 맺은 뒤엔 “영일동맹은 영국과 일본에 큰 이익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2월 15일).

1910년 한일병합 기사가 단신 수준이라는 사실은 허망하다. “러일전쟁으로 조선을 손에 넣은 뒤, 일본은 조선에 자신들의 사법과 행정 체제를 밀어붙였다. 이제 일본은 명목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대륙의 권력자가 됐다.”(1910년 8월 27일)


국제정세에 눈감고 권력다툼에 골몰했던 나라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일본 식민사관에 따르면 조선은 당쟁 때문에 망한 나라였다. ‘100년 전 영국 언론은…’에 따르면 조선 황실은 국제정세에 무지해 망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삼국간섭으로 랴오둥 반도를 청에 반납했어야 했던 일본이다. 120년 전 임인년(壬寅年) 일본이 당시 세계 최강국 영국과 맺은 영일동맹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세계적 사건이었다. 이코노미스트가 진작부터 러일전쟁을 예고했듯 국제정세에 밝은 사람은 이 동맹이 일본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내다볼 수 있었음에도 고종실록엔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 동아일보DB
그 무렵 고종실록에 영국이 언급되는 건 딱 하나, “광무 6년 양력 1월 30일(공교롭게도 영일동맹을 맺은 바로 그 날이다) 이재각을 특명대사로 임명하여 영국 황제의 대관식에 참가하게 하다”는 것뿐이었다.

차라리 호남 선비 황현이 낫다. 그가 쓴 ‘매천야록’ 1902년 1월엔 “시찰사 파원(派員) 붙이들을 소환하도록 하고, 음직(蔭職;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에 의해 맡은 벼슬)으로 차함(借啣;실제 근무하지 않고 벼슬 이름만 가지던 일)한 자들을 관보에 게재하지 말도록 하였다. 이 때에 영국과 일본이 협조하여 동맹을 맺고 우리나라의 내정을 관리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떠돌아 조정의 의론이 흉흉하였으므로 이러한 조칙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유언비어일지언정 지식인은 영일동맹을 들어봤다는 얘기다.

매천야록에는 이 같은 집권층의 무능과 부정부패, 권력다툼에 대한 비판이 끝없이 이어진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라를 말아먹은 것은 조선의 못난 집권층이었던 거다.

미스터 션샤인과 애기씨의 불꽃같은 사랑

나라가 망했다고 조선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이코노미스트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지난 몇 년 간 이뤄진 가혹한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 통치는 원래부터 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은자의 나라(Hermit Kingdom) 국민에게서 반항할 만한 기질과 여력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1910년 8월 27일)

이 대목을 보는 순간 나는 2018년 방송된 김은숙 극본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떠올렸다. 국가보훈처가 얼마 전 드라마 속 유진 초이 역의 실존 인물인 황기환 선생을 2023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진 초이가 극중 남장 스나이퍼이자 의병인 애기씨 고애신과 불꽃사랑을 한 것이 1902년부터 1907년까지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 통치기였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배우 이병헌이 유진 초이를, 김태리가 고애신을 연기했다. tvN 화면 캡처
물론 드라마이고 고증에 문제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저물어가는 조선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義兵)이다. 원컨대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는 포스터 문구는 아직도 가슴을 친다.


의병은 있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 지금도?

한중일 문명비평서 ‘풍수화’(風水火)에서 김용운은 “한국의 원형에 귀족의 책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반면 일본 원형에는 의병이 없다”고 썼다. 달리 말하면 일본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는 의미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근대화를 시작하고, 120년 전 영일동맹을 맺고(일본은 늘 최강대국과 동맹을 맺어 국익을 꾀하는 나라다), 국제정세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해 나라를 키우고 지켜온 데는 이 영향도 적지 않다고 본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제정세에 무지한 채 한물간 이념에 매달려 죽어라고 근대화를 막던 위정척사파의 후예, 86운동권 정권은 2022년 임인년 대선에서 마침내 국민심판을 받았다. 그러고도 거대야당이랍시고 국회권력을 움켜쥐고는 당 대표 방탄에 골몰하며 국정발목이나 잡는 의원들 몰골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찾을 수 없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 역시 슬프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보여주지 못했다. 능력주의 인사라지만 마치 실력 있고 깨끗한 인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양 고관들은 여전히 당당하다. 이러다 ‘아빠 찬스’를 타고 나야 성공할 수 있는 신분사회로 굳어질까 겁난다.

앞으로 4년 반, 윤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만 해준대도 나라 분위기는 달라진다. “한국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존재한다!” 외칠 수 있게 되고, 우리는 ‘깔딱 고개’를 넘어 품격사회로 진화할 것이다. 120년 전 임인년처럼 또 미스터 션샤인이 달려와 “귀하는 조선을 지키시오. 난 귀하를 지킬 터이니…” 해주길 고대할 순 없지 않은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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