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썰] ‘살아있는 권력’ 김건희 앞에 ‘살권수’ 팽개친 검찰
이번엔 “권 회장, 최은순·김건희에 알려준 녹취록 많다”
소환조사는 감감무소식…검찰은 ‘폭로’ 아닌 ‘수사’ 기관
‘고양이 앞의 쥐.’ 이런 비유가 적절할까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뒷받침하는 녹취록 등 증거들이 확보돼 있는데도 김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조차 못 하고 있는 검찰의 모습 말입니다. 지난 정부에서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내세우며 정의와 공정의 화신인 양 행동하던 검찰이 정권이 바뀌자 ‘살아있는 권력’이 된 김건희 여사 수사에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5차례 공판에서 김 여사에 불리한 사실 공개
다만 주목할 것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재판 과정에서 검사들이 김 여사의 연루 정황을 하나둘씩 꺼내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모킹건이라고 할 만한 내용들이 잇따라 공개됐습니다.
이 가운데 핵심적인 12월2일 공판 내용에 대해선 <논썰> 109회 ‘“김건희 전화해 8만주 매도” 검사 충격 발언, 판 뒤집히나’편과 110회 ‘‘주가조작 자금줄’ 공범 3년 구형, 김건희 유죄 땐 윤 대통령 불똥’편에서 자세히 소개해드렸습니다. 요약하면,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2차 작전 기간인 2010년 11월1일 대표적 주가조작 거래인 ‘통정매매’에 참여해 전화로 직접 8만주 매도 주문을 냈다는 것입니다. 이런 거래를 위해 ‘민○○(블랙펄인베스트 투자자문사 임원)→이○○(블랙펄인베스트 대표)→권오수(도이치모터스 당시 대표)→김건희’ 순으로 연락이 이뤄지는 구조였을 것이라고 검사가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검사가 공판에서 또 다른 주요 사실을 밝힌 게 있었습니다. 지난 10월28일 공판에서 검사가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와 증권회사 직원 사이의 대화 녹취록입니다.
신한증권 담당자: 신한투자 ○○○ 과장입니다.
최은순: 응 거기서 내 꺼 그냥 다 팔아. 싹 팔아.
신한증권 담당자: 네?
최은순: 혼자만 알고 있어. 이거가 3500원 밑으로 회장이 딜을 해놓았대. 이거 주식을 어차피 떨어뜨리지 않으면 성사가 안 된대.
신한증권 담당자: 큰일 난대요?
최은순: 그래서 이거 주식을 떨어뜨릴… 그것을 할라고 하나 봐. 어떤 방법이 됐든지 떨어뜨릴 그걸 하고 있대. 고민을 하고 있대. 그래서 인제 우리 아는 사람에게는 팔으라고 하고, 미운 얄미운 사람 있잖아. 엿 먹으라 하고 내버려 둔대.
신한증권 담당자: 그럼 일단 4천원에서 저기 뭐야… 될 수 있으면 어떻게 해볼게요. 전화 드릴게요.
*출처: <뉴스타파>
윤 대통령 장모 최씨가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전 회장으로부터 내부 정보를 받아 주식거래를 했고, 그 주식거래는 어떤 이유에서든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거래였다는 것입니다. 이날 공판에서 검사는 최씨가 도이치모터스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를 한 또다른 사례도 녹취록으로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권오수 전 회장이 김건희 여사에게도 자주 내부 정보를 알려줬다는 것입니다. 검사가 공판에서 권 전 회장을 신문하면서 나온 말입니다.
권오수: 제 입장에서는 최은순씨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 건데. 이건 뭐 극히… 정말 일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한 거고.
검사: 제가 나중에도 또 제시할 테지만, 증인은 최은순씨나 김건희씨에게 회사 사정들을 자주 얘기해주고 그 사정들이 녹취록에 남아있는 게 많이 있어요. 어쩌다 한번이 맞나요?
권오수: 13년 전 일이라 정확히 얘기한다는 게….
*출처: <뉴스타파>
김건희 여사가 권오수 전 회장으로부터 내부 정보를 수시로 받아 주식거래에 이용했다는 증거를 검찰이 확보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드러난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정황들과 합쳐 보면, 김 여사가 권 전 회장과 공범관계일 가능성이 한층 커지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검사들이 재판 과정에서 제시한 김 여사 관련 증거들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2010년 1월12일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에게 직접 전화해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거래한 통화 녹취록 (5월27일 공판)
-2010년 1월13일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에게 도이치모터스 주식거래를 승인한 통화 녹취록 (5월27일 공판)
-2010년 6월16일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에게 “저하고 이○○(주가조작 선수)씨 제외하고는 거래를 못하게 하세요”라고 말한 통화 녹취록 (4월22일 공판)
-2010년 11월1일 주가조작 선수의 ‘8만주 매도’ 요청 뒤 김건희 여사가 직접 증권사 직원에게 전화해 8만주를 매도했다는 통화 녹취록과 검사 발언 (12월2일 공판)
-2011년 1월13일 주가조작 공범 사무실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김건희’란 이름의 파일(김 여사 명의 증권계좌의 인출액·잔액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음) (4월8일 공판)
-2011년 6월10일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가 도이치모터스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한 정황을 보여주는 증권사 직원과의 통화 녹취록 (10월28일 공판)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전 회장이 김건희 여사에게 내부 정보를 자주 알려준 정황이 많은 녹취록으로 남아 있다는 검사 발언 (10월28일 공판)
한동훈 ‘결론 임박’ 밝힌 뒤 7개월 흘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재판에 참여하는 검사들이 이렇게 김 여사에게 불리한 사실들을 하나하나 공개하는 것을 두고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도 높아집니다.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는 이런 분석을 내놨습니다.
“중요한 것은 (검사) 한두분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김 여사에게 불리할 수 있는 정황들을 골고루 3~4명이 얘기한다… 검사로서의 양심의 자유 문제가 있고, 또 나중에 특검 등으로 다시 들췄을 때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안 한 것들이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소환도 못 하고 기소도 못 하니까 그거라도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12월23일 <교통방송> ‘신장식의 신장개업’ 인터뷰)
어떤 이유에서든 검사들의 ‘법정 폭로’(?)가 김 여사의 수사 필요성을 더욱 높여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검찰에 면죄부를 주지는 않습니다. 검찰은 ‘폭로’하는 기관이 아니라 ‘수사’하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검사들이 밝힌 것만 해도 수사에 나서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무엇보다 이런 사실들을 검찰이 이미 다 확보해놓고도 그동안 김 여사를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5월 인사청문회에서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대해 “당연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후 국회에서 김 여사 수사의 결론이 임박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소환조사 필요성에는 계속 입을 다물었습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건희 여사 수사하실 겁니까?
한동훈 장관: 지금 수사가 대단히 많이 진행돼 있죠.
고민정: 수사를 마무리하려면 해당 사람에 대해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게 상식적인 것 아닙니까?
한동훈: 수사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고요.
고민정: 어떤 다른 방식의 조사가 있는지 여쭙는 겁니다.
한동훈: 결론을 내기 전 단계까지 많이 진행된 상황인 걸로 저는 알고 있는데요. 검찰이 적정한 법에 따라 처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5월1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지금 드러나고 있는 수많은 사실에 비춰보면 더욱 상식에 맞지 않는 답변입니다. 그리고 당시에 이미 결론에 가까웠다는 검찰 수사가 이후 7달이 넘도록 왜 지지부진한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주가조작은 한 장관이 틈만 나면 ‘엄단하겠다’고 강조해온 증권·금융범죄입니다.
야권 수사에는 4개 지검 10여개 부서 매달려
검찰의 이런 태도는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이고 적극적인 수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수사 상황을 일별해보면 이렇습니다.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사건(반부패수사1·3부),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건(반부패수사2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공공수사1부), 북한 어민 북송 사건(공공수사3부)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형사1부)
-서울동부지검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일부 블랙리스트 의혹(형사6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관련 사건(형사3부)
-대전지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형사4부)
-수원지검
이재명 대표 성남에프시(FC) 후원금 의혹(성남지청 형사3부)
이재명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형사6부)
검찰의 핵심 수사 역량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즉 예전의 특수부가 온통 야당 수사에만 매달리는 형국입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편파적 수사입니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담당하는 반부패수사2부까지도 야당 수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김 여사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지난 21일 이재명 대표에게 전격 소환 통보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요란하게 수사를 벌여온 대장동 사건이 아니라 성남에프시(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한 소환 통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돈을 받은 의혹도 아니고 시장으로서 시 소속 축구단에 기업 후원금을 유치한 것을 두고 제3자 뇌물죄로 처벌하는 게 타당한 법리냐는 논란이 예상되는 사건입니다. 경찰이 한차례 무혐의 종결한 사건을 다시 살려냈습니다. 검찰의 강력한 ‘수사 의지’가 느껴집니다. 대장동 사건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사건으로라도 소환조사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받습니다.
이재명 소환에 커지는 질문 “김건희는 조사 안 하나”
그럴수록 이런 질문이 더 크게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범죄 혐의가 명백한 대통령 가족은 언제 소환받을 것인지 먼저 물어보길 바란다.”(이재명 대표, 23일 강원도당 현장 최고위원회)
당사자인 이 대표만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계속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 수사는 정치적 중립성, 공정성, 최소한의 형평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표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수사의 공정성은 결과의 공정성만이 아니라 수사 시작부터 수사 과정, 그리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 재판 절차 모든 게 동등해야 하는 것이다. 검찰이 전 정부와 야당 인사에 대해서는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 절차를 진행해왔다. 한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재판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의혹들이 녹취록 등의 형태로 굉장히 많이 등장하고 있다. 과연 야당 인사와 관련한 혐의 정황이 이 정도였다면 그냥 덮어놨을까 의문이다. 죄가 있고 없고의 문제를 넘어서라도 수사의 기본적인 형식적 평등마저도 저버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불공정으로 인해 현 윤석열 검찰이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수사가 오히려 정당성을 상실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재명 대표는 검찰 소환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12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새해 1월9일 직후로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대표가 검찰에 출석하는 상황이 되면 김 여사 소환조사에 대한 요구도 그만큼 증폭될 것입니다.
혐의가 농후한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는 끽소리도 못한 채 웅크려 있고, 야권 인사 수사에는 자원을 총동원해 전력투구하는 검찰의 모습에서 ‘살아있는 권력 수사’라는 간판은 퇴색해버렸습니다. 아예 정권과 한몸이 된 듯합니다. 이런 검찰을 일컫는 말이 바로 ‘정치 검찰’, ‘권력의 시녀’입니다. 검찰 구성원들 스스로 창피하지 않은지 궁금합니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서 ‘권력의 시녀’로
살아있는 권력의 범죄를 더욱 엄격히 수사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검찰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근대 형법 사상의 기초를 놓은 18세기 이탈리아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가 쓴 <범죄와 형벌>의 한 대목을 소개하며 마칠까 합니다.
“특히 권력을 가진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보통사람의 범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으로 더 멀리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들의 범죄는 강자의 특권을 확인시켜, 정의와 의무라는 국민의 신뢰를 파괴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강자의 특권에도 위협이 되므로, 특권을 행사하는 자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자 모두에게 위험한 결과를 불러온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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