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 시작된 은둔…어느덧 47살까지 덮쳤다"[중년 은둔형 외톨이]
헤럴드경제는 시민단체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G'L 학교밖청소년연구소의 자문을 토대로 중년 은둔형 외톨이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중년 은둔 외톨이가 언론에 직접적으로 소개된 것은 처음이다. 중년의 기준은 각종 지원에서 소외된 ‘만 35세 이상'으로 설정했다.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TV에서 ‘은둔형 외톨이’ 다큐를 봤어요. 지원하는 단체가 자막으로 지나가는 거에요. 놓치지 않고 기억했다가 전화했어요. ‘나 좀 도와달라고’ 말했죠. 근데 40대라 (지원이) 다 안 된다는 거에요. 그때 죽으려 했어요.”
유주현(가명·47)씨는 대화 도중 극단적인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는 10년 넘게 은둔 생활을 했다. 집에 있던 시간이 워낙 길어 정확히 몇 년 동안 숨어 지냈는지 기억조차 못한다.
유씨는 취업 시기에 1997년 외환위기(IMF)를 겪은 ‘저주받은 95학번’이었다. 유씨도 경제불황을 피할 수 없었다. 23살 취업을 앞둔 그는 아버지의 실직과 본인의 취업난을 동시에 겪었다. 유씨는 “취업이 어려웠으나 당시 청년들은 (취업준비생을 위한) 지원이 없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암울한 사회에서 도망치듯 숨었다. 그리고 24년 동안 습관적으로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유씨는 “2009년부터 2014년을 제외하고 대부분 생활을 숨어서 지냈다. 몇 년 집에 있다가 한 두 달 사회 나왔다 다시 들어가는 식이다”고 말했다. 유씨가 인터뷰에 응한 것도 ‘잠깐 사회 나오는 시기’라서 가능했다. 유씨는 재판 때문에 법원에 출석할 일이 생겨 지난 11월 ‘강제 외출’을 하게 됐다.
3년 동안 집에만 있었던 우한승(가명·44)씨도 사회에서 입은 상처가 은둔 계기가 됐다. 2년 동안 직장 내 갑질에 시달렸다. 당시 디자인 회사에 다니던 우씨는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폭언을 하는 사장에 시달렸다. 우씨는 “예를 들어 커피를 타오라 한 다음에 커피 맛이 별로라며 타박을 준다. 그리고 “엄마가 다 해줘서 커피를 못 타는 것”이라며 직원들 앞에서 “나는 마마보이다”를 여러 번 외치게 했다”고 말했다.
함종철(가명·41)씨는 2015년 사업 실패로 파산을 하면서 모두와 연락을 끊었다. 함씨는 “블랙박스과 같은 전자제품 수입회사를 운영했다. 자본금 10만원으로 시작해 월 2000만원을 가져갈 정도로 돈을 벌었다”며 “파산 전 경쟁업체와 언성을 높일 정도로 싸웠는데 그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은둔 생활이 길어질 거란 생각은 못했다. 현실을 잊기 위해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하루를 채웠고, 그러다 보면 몇 달이 지났다.
유씨의 일상은 매우 불규칙적이다. 특별히 할 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 집 컴퓨터에 깔려있는 스페이드 카드 게임을 하염 없이 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드라마를 틀어 놓고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유씨는 “그냥 틀어만 놓는 거에요. 시간 보내야 하니까”고 말했다. 함씨는 웹서핑과 배달 음식 먹기를 무한 반복했다. 햇빛 보는 게 힘들었던 밤에 주로 생활했고, 어쩌다 한번 밤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함씨는 “가족을 포함해 모든 연락을 안 받았다”고 말했다.
미디어에 나온 은둔형 외톨이는 유씨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간헐적이지만 유씨는 은둔생활을 중단하기 위해 밖에 나가려는 시도를 자주 했다. 다만 쉽게 좌절될 뿐이었다. 은둔형외톨이지원단체 관계자는 “중년 은둔 외톨이의 도움 요청 전화를 간헐적으로 받는다. 단, 실제 지원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극소수”며 “대부분 은둔 기간이 길고 나이가 많아 (지원이) 힘들다. 또 상담 전화를 했다가도 중간에 연락이 끊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비대면으로 일도 한다. 대부분 단기 알바다. 유씨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알바, 디자이너였던 우씨는 웹디자인, 블로그 후기 알바 등으로 돈을 벌었다. 유씨는 “온라인 사주를 봐주는 알바부터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했다”며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을 가장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사정은 각자 달랐지만 은둔 생활이 길어진 원인은 비슷했다.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유씨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와 갈등을 빚으며 지내고 있다. 그는 “다시 일어서려 해도 엄마가 했던 말에 자존감이 낮아져 ‘넌 안 된다’, ‘쓰레기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함씨는 사업 실패를 해도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오랜 가정폭력으로 가족과 거리가 멀어졌다. 함씨는 “아버지를 만나봤자 한심하다 이런 소리만 듣는다. 동생은 저에게서 가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고 무서워하고…혼자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이해해준 사람이 있었던 2009년부터 2014년 사이에는 집에만 있지 않았다. ‘잠깐 사회 나오는 시기’에 만난 애인 덕이 컸다. 유씨는 “저를 계속 (밖으로) 꺼내줬다. 어디 같이 가자고 하고…하지만 결국 나한테 지쳤다”라고 말했다.
우씨도 친한 형과 애인이 생기면서 은둔 생활을 중단했다. 우씨는 “이 생활을 종료해보려고 용기를 내서 밖에 나온 시기에 애인과 친구가 생겼다”며 “애인이 좋아하게 옷을 예쁘게 입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외출을 했다.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면 다시 (집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씨와 함씨는 현재는 은둔생활을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도 각종 제도에서 소외돼 언제든 다시 자신을 가둘 수 있는 상황이다. 은둔형 외톨이 관련 지원뿐만 아니라 다른 지원을 받으려 해도 ‘만 34세’ 조건이 붙었다.
오랜기간 동안 경력도 단절돼 제대로 된 일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우씨는 “컴퓨터 교육을 받으려 해도 청년만 가능하다”며 “다행히 예전에 함께 일했던 선배들이 일감을 준다”고 말했다. 함씨는 다시 창업을 하고자 해도 나이가 걸림돌이 됐다. 함씨는 “나이 제한이 걸려있어서 취업 교육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단 한 가지 지원만 받을 수 있다면 대화 모임을 가지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우씨도 “대화 모임을 가지고 싶다. 사람을 만나려면 돈이 들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며 “은둔생활 중이거나 은둔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함씨도 “이미 친구들은 다 결혼하고 안정적인 삶에 들어가 다시 연락해도 대화를 나누기 힘들다”고 말했다. 유씨는 “은둔생활은 중독성이 있다”며 “사회에 나가야 할 이유가 없으면 또 (집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binna@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남자는 많이 배울수록 뚱뚱, 여자는 많이 배울수록 날씬"
- “우리집값 앞자리가 바꼈어요”…전국 아파트 중위가격 3억원대로 뚝 [부동산360]
- “욕먹어도 포기 못하더니” 넷플릭스 ‘일반인 연애’ 베팅 반전
- 48세 디카프리오, 23세 배우와 열애설…25세 이하 공식 이어가나
- “백번은 넘게 봤겠다” 모두 아는 ‘이 절규’의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에드바르 뭉크 편]
- 노래방에서도 ‘영웅시대’…임영웅, ‘소주 한 잔’·‘티어스’ 다 제쳤다
- 직원 연봉 2억에 재택근무, 부러움 샀는데… “파티 끝났다”
- “30대 워킹맘, 부업으로 월 1100만원 벌었어요” 무슨일 하나 했더니
- [영상]'세계 1위 골퍼' 리디아 고·'현대家' 정준씨 화촉…정의선 회장, 신랑 넥타이 고쳐주기도
- 홍석천, 도로 위 쓰레기를 맨손으로...뒤늦게 알려진 선행 '훈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