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 시작된 은둔…어느덧 47살까지 덮쳤다"[중년 은둔형 외톨이]

2022. 12. 31. 09: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주
히키고모리(引きこもり).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활동하는 사람, 한국어로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를 일컫는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사회적 문제로 꼽히는 히키고모리의 절반 이상은 '중년'이다. 이들은 일본의 불황기 ‘잃어버린 20’년에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년 히키고모리는 일본에 경제적 손실 뿐만 아니라 ‘8050 문제’를 야기시켰다. ‘8050 문제’는 청년 시절 시작한 은둔생활이 길어지면서 50대 히키고모리 자녀와 80대 부모가 함께 사회적으로 고립,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등 여파로 20대 초반 '청년' 은둔 외톨이들은 현재 40대 중년이 됐음에도 이를 벗어나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 취업난, 경기불황으로 대거 늘고 있는 은둔 청년들도 언제든 은둔 중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의 허리’라 불리는 중년의 은둔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시사점이 많다. 하지만 중년 은둔형 외톨이는 각종 지원에서 소외된 채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투명인간'으로 살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시민단체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G'L 학교밖청소년연구소의 자문을 토대로 중년 은둔형 외톨이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중년 은둔 외톨이가 언론에 직접적으로 소개된 것은 처음이다. 중년의 기준은 각종 지원에서 소외된 ‘만 35세 이상'으로 설정했다.
중년 은둔형 외톨이들은 겨울철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옷을 껴입고, 낮이 아닌 밤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업 실패 후 은둔한 경험이 있는 함종철(가명, 41)씨는 웹서핑과 배달음식 먹기를 무한 반복하는 일상을 보냈다. (사진은 직접적 관련이 없음)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TV에서 ‘은둔형 외톨이’ 다큐를 봤어요. 지원하는 단체가 자막으로 지나가는 거에요. 놓치지 않고 기억했다가 전화했어요. ‘나 좀 도와달라고’ 말했죠. 근데 40대라 (지원이) 다 안 된다는 거에요. 그때 죽으려 했어요.”

유주현(가명·47)씨는 대화 도중 극단적인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는 10년 넘게 은둔 생활을 했다. 집에 있던 시간이 워낙 길어 정확히 몇 년 동안 숨어 지냈는지 기억조차 못한다.

외환위기·직장 갑질·파산…은둔 계기가 된 상처들

유씨는 취업 시기에 1997년 외환위기(IMF)를 겪은 ‘저주받은 95학번’이었다. 유씨도 경제불황을 피할 수 없었다. 23살 취업을 앞둔 그는 아버지의 실직과 본인의 취업난을 동시에 겪었다. 유씨는 “취업이 어려웠으나 당시 청년들은 (취업준비생을 위한) 지원이 없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암울한 사회에서 도망치듯 숨었다. 그리고 24년 동안 습관적으로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유씨는 “2009년부터 2014년을 제외하고 대부분 생활을 숨어서 지냈다. 몇 년 집에 있다가 한 두 달 사회 나왔다 다시 들어가는 식이다”고 말했다. 유씨가 인터뷰에 응한 것도 ‘잠깐 사회 나오는 시기’라서 가능했다. 유씨는 재판 때문에 법원에 출석할 일이 생겨 지난 11월 ‘강제 외출’을 하게 됐다.

3년 동안 집에만 있었던 우한승(가명·44)씨도 사회에서 입은 상처가 은둔 계기가 됐다. 2년 동안 직장 내 갑질에 시달렸다. 당시 디자인 회사에 다니던 우씨는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폭언을 하는 사장에 시달렸다. 우씨는 “예를 들어 커피를 타오라 한 다음에 커피 맛이 별로라며 타박을 준다. 그리고 “엄마가 다 해줘서 커피를 못 타는 것”이라며 직원들 앞에서 “나는 마마보이다”를 여러 번 외치게 했다”고 말했다.

함종철(가명·41)씨는 2015년 사업 실패로 파산을 하면서 모두와 연락을 끊었다. 함씨는 “블랙박스과 같은 전자제품 수입회사를 운영했다. 자본금 10만원으로 시작해 월 2000만원을 가져갈 정도로 돈을 벌었다”며 “파산 전 경쟁업체와 언성을 높일 정도로 싸웠는데 그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하루종일 단순게임·동영상 시청…어느 덧 중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게시된 은둔형 외톨이의 방. 자신의 친형이 7년째 은둔형 외톨이라는 사연이 화제를 모았다. [보배드림 캡처]

그렇게 시작한 은둔 생활이 길어질 거란 생각은 못했다. 현실을 잊기 위해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하루를 채웠고, 그러다 보면 몇 달이 지났다.

유씨의 일상은 매우 불규칙적이다. 특별히 할 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 집 컴퓨터에 깔려있는 스페이드 카드 게임을 하염 없이 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드라마를 틀어 놓고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유씨는 “그냥 틀어만 놓는 거에요. 시간 보내야 하니까”고 말했다. 함씨는 웹서핑과 배달 음식 먹기를 무한 반복했다. 햇빛 보는 게 힘들었던 밤에 주로 생활했고, 어쩌다 한번 밤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함씨는 “가족을 포함해 모든 연락을 안 받았다”고 말했다.

미디어에 나온 은둔형 외톨이는 유씨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간헐적이지만 유씨는 은둔생활을 중단하기 위해 밖에 나가려는 시도를 자주 했다. 다만 쉽게 좌절될 뿐이었다. 은둔형외톨이지원단체 관계자는 “중년 은둔 외톨이의 도움 요청 전화를 간헐적으로 받는다. 단, 실제 지원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극소수”며 “대부분 은둔 기간이 길고 나이가 많아 (지원이) 힘들다. 또 상담 전화를 했다가도 중간에 연락이 끊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비대면으로 일도 한다. 대부분 단기 알바다. 유씨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알바, 디자이너였던 우씨는 웹디자인, 블로그 후기 알바 등으로 돈을 벌었다. 유씨는 “온라인 사주를 봐주는 알바부터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했다”며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을 가장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날 이해하는 사람 있었다면 은둔 안 해”

사정은 각자 달랐지만 은둔 생활이 길어진 원인은 비슷했다.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유씨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와 갈등을 빚으며 지내고 있다. 그는 “다시 일어서려 해도 엄마가 했던 말에 자존감이 낮아져 ‘넌 안 된다’, ‘쓰레기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함씨는 사업 실패를 해도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오랜 가정폭력으로 가족과 거리가 멀어졌다. 함씨는 “아버지를 만나봤자 한심하다 이런 소리만 듣는다. 동생은 저에게서 가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고 무서워하고…혼자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이해해준 사람이 있었던 2009년부터 2014년 사이에는 집에만 있지 않았다. ‘잠깐 사회 나오는 시기’에 만난 애인 덕이 컸다. 유씨는 “저를 계속 (밖으로) 꺼내줬다. 어디 같이 가자고 하고…하지만 결국 나한테 지쳤다”라고 말했다.

우씨도 친한 형과 애인이 생기면서 은둔 생활을 중단했다. 우씨는 “이 생활을 종료해보려고 용기를 내서 밖에 나온 시기에 애인과 친구가 생겼다”며 “애인이 좋아하게 옷을 예쁘게 입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외출을 했다.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면 다시 (집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제도서 사라진 이들 “돈보다 대화모임”
과거 사업 실패로 은둔형 외톨이가 됐던 함종철(가명·41)씨. 현재는 외출이 가능하나 사람들이 많은 장소를 불편해한다고 했다. 김빛나 기자

우씨와 함씨는 현재는 은둔생활을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도 각종 제도에서 소외돼 언제든 다시 자신을 가둘 수 있는 상황이다. 은둔형 외톨이 관련 지원뿐만 아니라 다른 지원을 받으려 해도 ‘만 34세’ 조건이 붙었다.

오랜기간 동안 경력도 단절돼 제대로 된 일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우씨는 “컴퓨터 교육을 받으려 해도 청년만 가능하다”며 “다행히 예전에 함께 일했던 선배들이 일감을 준다”고 말했다. 함씨는 다시 창업을 하고자 해도 나이가 걸림돌이 됐다. 함씨는 “나이 제한이 걸려있어서 취업 교육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단 한 가지 지원만 받을 수 있다면 대화 모임을 가지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우씨도 “대화 모임을 가지고 싶다. 사람을 만나려면 돈이 들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며 “은둔생활 중이거나 은둔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함씨도 “이미 친구들은 다 결혼하고 안정적인 삶에 들어가 다시 연락해도 대화를 나누기 힘들다”고 말했다. 유씨는 “은둔생활은 중독성이 있다”며 “사회에 나가야 할 이유가 없으면 또 (집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binna@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