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을 이룬 비스마르크가 독일 외교부에서 사라졌다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2022. 12. 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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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좌), 아나레나 배어복(우)

독일 외교부를 설립했고, 프로이센의 수상으로서 독일 통일을 이룬 ‘철의 재상(宰相ㆍEiserner Kanzler)’ 오토 폰 비스마르크(Bismarck)가 독일 외교부에서 사라졌다.

녹색당 소속인 아나레나 배어복(Baerbock) 장관이 이끄는 독일 외교부는 지난달 외교부 간부들이 매일 아침 모여서 회의를 하는 대회의실인 ‘비스마르크 홀’을 ‘독일 통합 홀’로 바꾸고 대형 회의 탁자 정면 벽에 걸려 있던 비스마르크 초상화도 떼어냈다.

그러자 340명에 달하는 비스마르크의 후손들과 기민당ㆍ기사련(CDUㆍCSU), 자유민주당(FDP) 등 우파 정당들은 “녹색당이 자신들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 것과는 모두 다 싸우는 최근의 관행을 계속하고 있다”며 “역사는 지우는 것이 아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비스마르크 후손들이 특히 발끈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조상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가 프로이센과 독일 제국의 사실상 초대 외교부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왕국 주도로 설립한 북부독일연합의 수상으로서, 또 나중에는 독일 제국의 수상으로서 1870년 1월 8일에 자신의 직속 지휘 하에 ‘외교실(office)’을 만들었다.

비스마르크 이후, 독일 외교부는 이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연방 정부의 다른 부(Bundesministeriumㆍministry)와는 달리 ‘Amt(office)’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독일 외교부 관리들은 퇴근하면서 종종 “내일 아침 비스마르크 홀에서 보자”고 인사한다고, 독일 언론은 전했다.

독일 외교부는 왜 홀의 이름을 개명하고 비스마르크의 초상화를 떼어냈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독일 언론 매체들의 질문에 “이 결정은 외교부의 전통이 독일의 민주적 역사에 굳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만 했다.

함부르크의 비스마르크 기념비/위키피디아

녹색당은 연립 정부에 참여하기 전인 2020년 초에도 함부르크에 있는 비스마르크 기념비에 대해 “철거되거나 뒤집혀 세워져야 한다”며 “인종차별주의의 희생자들이 진정한 영웅들이며 (비스마르크 같은) 범죄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기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비스마르크의 후손인 에른스트 폰 비스마르크는 28일 배어복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독일 외교부가 자신들이 독일의 민주적 역사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비스마르크는 민주주의자도 아니고, 식민주의자이고 여성의 권리를 무시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민주주의의 어머니’라는 영국도 수십 년 뒤에야 실시했던 일부 민주적 권리를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시사 주간지 슈피겔에 입수한 이 서한에 따르면, 그는 비록 남성에게 제한됐지만 보통ㆍ평등ㆍ비밀 투표를 보장하고 유대계에게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현대적 사회보장제도를 최초로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 서한은 또 그의 조상인 비스마르크가 “분명히 실수를 저질렀지만 황제의 피(被)고용인인 그가 흠결 없는 민주주의자이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그를 부정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고, 미국인들은 토머스 제퍼슨이나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비판할 것이 많아도 그들의 영웅을 이렇게 대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후손 340명이 속한 비스마르크 가문의 대표인 알렉산드르 폰 비스마르크는 최근 성명을 내고 “우리 비스마르크 가문은 우리의 역사와 우리 자신의 나라가 이런 식으로 취급되는데 대해 놀라고 할 말을 잊었다”며 배어복 장관의 역사적 몰(沒)인식을 비판했다. 그는 “배어복 장관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며 “과거의 모든 인물은 당시 상황에서 인식되고 평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야당인 기민련(CDU)도 성명을 내고 “독일 외교는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유산(遺産)을 고찰해야 한다. 비스마르크와 그의 업적은 오늘날 다르게 평가될 수 있지만, 그가 독일, 특히 조국 통일을 위해 한 역사적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과거 지우기’는 단지 외교부만의 일이 아니다. 베를린 연방주에서도 100개 거리의 이름을 개명(改名)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프로이센 시절의 황제와 황태자 이름 외에도 독일의 천재 작곡자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이름도 제거 대상에 올랐다.

바그너는 독일민족주의를 고취했고 나중에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였다는 이유로, 루터는 그의 반(反)유대적 발언이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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