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지켜낸 전남 광양…‘윤동주 여행상품’ 개발나서

강현석 기자 2022. 12. 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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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보관했던 전남 광양의 ‘정병욱 가옥’ 복원 모습. 당시 보자기에 싼 시집을 항아리에 넣어 마루 밑에 보관했다. 광양시 제공.

105년 전인 1917년 12월 30일 중국 북간도에서 태어난 시인 윤동주(1917∼1945)는 한반도 남쪽 끝 전남 광양과 무슨 인연이 있을까? 윤동주는 생전 광양을 찾은 적이 없다. 하지만 광양은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나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저항하던 시인이 굳건하게 한글로 써 내려갔던 시들은 남해 작은 포구 한 가옥의 품에서 지켜졌다. 포구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지킨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싸움터였던 노량 바다와도 가깝다.

전남 광양시는 30일 “내년부터 광양의 윤동주 관련 유적이 포함된 여행상품을 운영하는 여행사에 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양시가 ‘윤동주 여행상품’ 개발에 나선 것은 광양의 한 가옥이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데 큰 역할을 한 인연 때문이다.

광양시 망덕포구에 있는 ‘정병욱 가옥’은 일제강점기 윤동주 시인이 직접 엮었던 시집이 보관됐던 곳이다. 이 집에서 살았던 정병욱(1922∼1982)은 일제강점기 윤동주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에 다녔다.

일제강점기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보관했던 전남 광양의 ‘정병욱 가옥’의 옛 모습. 당시 보자기에 싼 시집을 항아리에 넣어 마루 밑에 보관했다. 광양시 제공.

정병욱은 선배였던 윤동주와 함께 같은 집에서 하숙할 정도로 절친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육필 시고 3부를 직접 만든 윤동주는 자신이 1부를 갖고, 1부는 은사인 이양하 교수(1904∼1963)에게 그리고 마지막 1부는 정병욱에게 맡겼다.

일제의 검열로 시집을 출간하지 못한 시인은 1942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학도병으로 끌려가게 된 정병욱은 이 시집을 광양의 어머니에게 맡겼다. 그는 어머니에게 “살아 돌아올 때까지 간직해 주시고 두 사람이 다 죽어 돌아오지 않더라도 독립이 되거든 모교로 보내 세상에 알려지게 해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고 한다.

어머니는 윤동주 시집을 명주 보자기에 겹겹이 싼 뒤 항아리에 넣어 마루 밑에 파묻었다. 이렇게 지켜진 원고는 해방 이후인 1948년 1월 시집으로 간행되며 세상에 나왔다. 시집에는 <서시>를 비롯해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시대의 어둠을 비추는 별과 같은 19편의 시가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일제강점기 연희전문학교에서 만나 깊은 친분을 나눴던 윤동주(왼쪽)와 정병욱. 광양시 제공.

윤동주가 1943년 일본에서 독립운동 혐의로 붙잡힌 뒤 징역 2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후쿠시마 형무소에서 1945년 2월 16일 사망하면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시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 됐다.

정병욱은 생전 회고록 <잊지 못할 윤동주 형>에서 “내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주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했다.

정병욱은 자신의 호를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를 뜻하는 ‘백영(白影)’이라고 지었다. 정병욱은 1948년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고전 시가와 고전소설 등 한국 고전문학 연구의 초석을 놓았고 국어국문학회와 판소리학회를 창립하는 등 한국 문학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일제강점기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보관했던 전남 광양의 ‘정병욱 가옥’ 복원 모습. 당시 보자기에 싼 시집을 항아리에 넣어 마루 밑에 보관했다. 광양시 제공.

정병욱이 살았던 광양의 가옥은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광양시는 정병욱 가옥 주변에 ‘윤동주 시 정원’을 만들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시 전편을 시비로 새겼다. 포구와 섬 배알도의 정원을 잇는 해상 보도교에는 ‘별 헤는 다리’ 라는 이름을 붙였다.

광양시 관계자는 “광양과 윤동주 시인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모르는 분들이 많아 여행상품 개발을 추진하게 됐다”면서 “중국 북간도와 일본에 남아있는 윤동주 발자취와 광양을 연계하는 여행상품 등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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