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의 영화뜰] 추리는 잡고 여운은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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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 주의 :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주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흥행 추리소설 집필로 가문을 일으킬 정도의 큰 부와 명예를 누린 주인공 할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죽음을 맞는다. 대저택을 찾은 유능한 사설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은 어딘지 미심쩍어 보이는 딸, 아들, 며느리와 손주들을 상대로 수사를 이어간다. 젊은 이민자 간병인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도 의심 대상에 오르는 건 물론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탐정 블랑의 시선을 쫓아가는 관객은, 등장인물이 흩뿌려 놓은 지난 행동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춰가며 끝내 진범을 추적해내는 추리극 본연의 짙은 재미를 누린다. 흥행과 평가 면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뒀던 '나이브스 아웃'(2019) 이야기다.
이 작품의 후속편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지난 23일 넷플릭스에 최초 공개됐다. 라이언 존슨 감독이 다시 한번 연출을 맡아 추리극 연출자로서의 역량을 여전히 과시하는데, 오락적인 측면에서의 만족도는 높지만 1편에서 안겼던 짙은 여운은 홀연히 사라져버린 아쉬움이 남는 결과물이다.
1편이 고전적인 매력이 듬뿍 담긴 대저택을 배경으로 시각적 긴장감을 조성했다면, 신작은 모든 면에서 소위 '힙'한 분위기로 무장해 돌아왔다. 주인공부터 IT 사업으로 대성한 억만장자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외딴섬으로 과학자, 정치인, 인플루언서, 트위치 스트리머 등 절친한 친구들을 불러들인다. 루브르에서 대여한 진품 모나리자 그림부터 세계의 경제 구도를 순식간에 재편할 수 있는 신종 에너지원까지, 최고급과 최첨단의 모든 것을 갖춘 화려한 이 섬에서 돌연 예상치 못한 죽음이 엄습한다. '사건'의 시작이다.
본격적인 추리물의 재미를 누릴 수 있는 건 러닝타임이 1시간쯤 지난, 바로 그 대목부터다. 관객은 처음부터 블랑이 이 사건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섬에 들어오면서 진범을 찾기 위한 승부수를 띄워뒀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차곡차곡 정보를 쌓은 관객은 이때부터 지나간 상황을 '되감기 하듯' 돌이킨다. 그저 스쳐 보냈던 영화 속 장면들이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로 탈바꿈하고, 복잡하게 얽힌 원한관계에 의거한 떡밥 역시 빠짐없이 회수된다. 마치 제 자리를 알 수 없어 답답했던 퍼즐을 드디어 완성해나가는 듯한 즐거움인데, 이 대목에서의 장르적 쾌감은 1편만큼이나 준수하다.
다만 1편에 크게 못 미치는 대목도 있다. 바로 결말부다. '나이브스 아웃'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추리 과정의 재미뿐만은 아니었다. 장르의 미덕을 철저하게 즐긴 관객이 극장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영화는 삶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깊이 새기는 강인한 메시지를 보여줬다.
그 메시지는 '선한 의지'에 대한 긍정이다. 1편에서 자신의 실수로 할아버지를 죽인 줄로만 알았던 마르타는 처벌을 감수하고라도 탐정에게 진실을 고백하려 한다. 타고난 재력도, 사회적 지위도, 잔꾀도 없는 데다가 심지어는 '거짓말을 하면 구토가 나온다'는 신체적 약점까지 지니고 있었던 그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었던 건 결국 그의 선한 의지가 탐정 블랑의 눈에 관찰돼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영화 가장 마지막에 등장했던 문장 “my house, my rules, my coffee!!”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된 것도 그래서다. 눈앞의 이득에 흔들리지 않고 '내 원칙대로'(my rules) 행동하다 보면 결국 나만의 강력한 유산(my house, my coffee)을 남길 수 있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결말은 어떤가. 모든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핵심 인물 앤디(자넬 모네)가 배신자 친구를 강렬하게 응징하는 과정에서 통쾌함은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층위의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추리를 주도하는 탐정임과 동시에 인간 삶의 선한 의지를 옹호하는 존재로서 활약했던 탐정 블랑의 역할 또한, 인과응보라는 테마 안에서 기능적으로만 활용되고 만다. 추리는 잡았지만 여운은 놓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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