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0장의 엽서가 모인 엽서 도서관, 포셋[MZ 공간 트렌드]
2022. 12. 31. 08:01
가까운 이에게 보내는 엽서 한 장, 특별한 선물을 고르는 일
우연히 카카오톡에 카드 보내기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카드를 고르고 이모티콘과 글씨체를 커스텀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번에는 이 기능을 한번 써 봐야지. 해가 바뀌는 일을 핑계로 연락이 뜸했던 사람에게 인사하고 고마운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누구에게라도 먼저 연락이 오면 수많은 주소록의 목록 중 내 이름을 검색해 한마디를 건네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 함박웃음을 짓는다. 단체로 복사·붙여넣기를 한,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예외다.
그래도 손편지를 따라갈 수는 없다. 우체통을 보면 정감을 느끼고 누군가의 글씨가 쓰인 편지를 보면 설레기까지 한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는 우리가 잊고 있는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일까. 작가 강인숙 씨는 “편지는 수신인 혼자서만 읽는 호사스러운 문학”이라고 말한다. 단 한 사람을 위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발명되기 전까지 편지는 유일한 소통의 수단이었지만 이제 편지를 쓰는 일은 일종의 이벤트다. 편지를 쓰기로 다짐한 사람은 조금 더 성의를 들이려고 노력한다. 선물이 될 것이므로….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이 어느 계절이며 무슨 기념일이냐를 따져보고 알맞은 모양의 엽서를 찾는다. 편지를 쓰는 일은 얼마나 수고로운가! 평소보다 다정한 말투로 할 말을 오랜 시간 고민한다. 정성 들여 고른 엽서에 흠이 날까봐 메모장에 연습하고 한 자 한 자 정갈하게 적어 내려간다. 겨우 손바닥만 한 종이에는 이제 한 움큼 퍼낼 수 있을 듯한 진심이 담겼다. 적히지 않은 마음을 상상하면서 혼자이면서도 둘이 함께인 듯한 묘한 경험을 한다.
손편지를 쓰고, 저장하다
포셋은 엽서 전문 판매점이다. 2022년 6월 연희동에 자리를 잡았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오브젝트가 만든 공간이다. 홍대입구역에서 걸어서 30분, 역 앞의 중앙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도 10분을 가야 한다. 연희빌딩 안에 있지만 간판이 없어 입구 앞에 ‘포스트카드, 레터, 라이트, 스토리지(postcard, letter, write, storage)’라고 적힌 사각 기둥을 찾아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없고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가면 노란 우체통처럼 보이는 간판이 보인다. 연희동 길목이 익숙하지 않은 초행자라면 찾아가는 길이 조금은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다.
가게 안은 엽서들의 향연이다. 빼곡한 엽서들은 모두 3200장 정도다. 사진부터 일러스트, 타이포그래피로 만든 엽서까지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엽서는 직접 제작한 선반에 진열했는데 마치 책장에 꽂힌 책자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이 도서관에 가득한 책들이 엽서로 바뀌는 상상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한편에는 손편지를 쓸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메모지와 펜이 놓여 있고 의자를 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놓아 편지를 쓰며 운치를 즐길 수 있다. 외국에서 온 듯한 두 여자는 서로의 엽서를 골라 계산한 뒤 자리에 앉았다. 고요한 평일 저녁 시간, 펜촉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생생했다. 주말에는 사람들로 북적여 테이블에 앉기 위해 줄을 서기도 한다.
기록 보관함도 있다. 책이나 소품을 넣을 수 있는 캐비닛이다. 각 번호가 적혀 있는 캐비닛에 물건을 넣고 어느 외국의 호텔 객실 키처럼 생긴 열쇠로 잠근다.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캐비닛 안에 노트를 넣어 교환 일기를 주고받거나 선물을 넣어 상대방에게 열쇠를 준 뒤 찾아가 열어 보라는 이벤트를 해도 즐거울 것이다. 이용료는 월 1만1000원이다. 사용하지 않는 캐비닛은 열려 있는데 그중 몇 개 보관함은 ‘가상실재서점 모이(moi)’의 자리다. 모이는 큐레이션 전문 온라인 서점인데, 모이의 기록 보관함은 10권의 책과 큐레이터 노트로 꾸며졌다. 캐비닛 안과 밖 곳곳에 적힌 문구들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기획 전시 작품도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2022년 6월 연희동에 문을 연 포셋은 같은 해 11월 부산 전포점을 새로 열었다. 개인의 취향이 트렌드가 되는 요즘이다. 3000여 개의 엽서에서 자신만의 선호를 찾아내는 기쁨과 속 깊숙이 녹아 있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두 번, 세 번 시간이 날 때마다 포셋으로 발길을 이끈다. 처음 방문할 때는 시간을 넉넉히 두고 작품을 감상하듯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엽서 안에 있는 그림을 보고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다면 그를 위한 짧은 인사를 전하자. 엽서와 연필, 진심을 담은 한 문장만 있다면 충분하다.
윤제나 한경무크팀 기자 zena@hankyung.com
가까운 이에게 보내는 엽서 한 장, 특별한 선물을 고르는 일
우연히 카카오톡에 카드 보내기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카드를 고르고 이모티콘과 글씨체를 커스텀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번에는 이 기능을 한번 써 봐야지. 해가 바뀌는 일을 핑계로 연락이 뜸했던 사람에게 인사하고 고마운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누구에게라도 먼저 연락이 오면 수많은 주소록의 목록 중 내 이름을 검색해 한마디를 건네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 함박웃음을 짓는다. 단체로 복사·붙여넣기를 한,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예외다.
그래도 손편지를 따라갈 수는 없다. 우체통을 보면 정감을 느끼고 누군가의 글씨가 쓰인 편지를 보면 설레기까지 한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는 우리가 잊고 있는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일까. 작가 강인숙 씨는 “편지는 수신인 혼자서만 읽는 호사스러운 문학”이라고 말한다. 단 한 사람을 위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발명되기 전까지 편지는 유일한 소통의 수단이었지만 이제 편지를 쓰는 일은 일종의 이벤트다. 편지를 쓰기로 다짐한 사람은 조금 더 성의를 들이려고 노력한다. 선물이 될 것이므로….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이 어느 계절이며 무슨 기념일이냐를 따져보고 알맞은 모양의 엽서를 찾는다. 편지를 쓰는 일은 얼마나 수고로운가! 평소보다 다정한 말투로 할 말을 오랜 시간 고민한다. 정성 들여 고른 엽서에 흠이 날까봐 메모장에 연습하고 한 자 한 자 정갈하게 적어 내려간다. 겨우 손바닥만 한 종이에는 이제 한 움큼 퍼낼 수 있을 듯한 진심이 담겼다. 적히지 않은 마음을 상상하면서 혼자이면서도 둘이 함께인 듯한 묘한 경험을 한다.
손편지를 쓰고, 저장하다
포셋은 엽서 전문 판매점이다. 2022년 6월 연희동에 자리를 잡았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오브젝트가 만든 공간이다. 홍대입구역에서 걸어서 30분, 역 앞의 중앙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도 10분을 가야 한다. 연희빌딩 안에 있지만 간판이 없어 입구 앞에 ‘포스트카드, 레터, 라이트, 스토리지(postcard, letter, write, storage)’라고 적힌 사각 기둥을 찾아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없고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가면 노란 우체통처럼 보이는 간판이 보인다. 연희동 길목이 익숙하지 않은 초행자라면 찾아가는 길이 조금은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다.
가게 안은 엽서들의 향연이다. 빼곡한 엽서들은 모두 3200장 정도다. 사진부터 일러스트, 타이포그래피로 만든 엽서까지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엽서는 직접 제작한 선반에 진열했는데 마치 책장에 꽂힌 책자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이 도서관에 가득한 책들이 엽서로 바뀌는 상상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한편에는 손편지를 쓸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메모지와 펜이 놓여 있고 의자를 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놓아 편지를 쓰며 운치를 즐길 수 있다. 외국에서 온 듯한 두 여자는 서로의 엽서를 골라 계산한 뒤 자리에 앉았다. 고요한 평일 저녁 시간, 펜촉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생생했다. 주말에는 사람들로 북적여 테이블에 앉기 위해 줄을 서기도 한다.
기록 보관함도 있다. 책이나 소품을 넣을 수 있는 캐비닛이다. 각 번호가 적혀 있는 캐비닛에 물건을 넣고 어느 외국의 호텔 객실 키처럼 생긴 열쇠로 잠근다.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캐비닛 안에 노트를 넣어 교환 일기를 주고받거나 선물을 넣어 상대방에게 열쇠를 준 뒤 찾아가 열어 보라는 이벤트를 해도 즐거울 것이다. 이용료는 월 1만1000원이다. 사용하지 않는 캐비닛은 열려 있는데 그중 몇 개 보관함은 ‘가상실재서점 모이(moi)’의 자리다. 모이는 큐레이션 전문 온라인 서점인데, 모이의 기록 보관함은 10권의 책과 큐레이터 노트로 꾸며졌다. 캐비닛 안과 밖 곳곳에 적힌 문구들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기획 전시 작품도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2022년 6월 연희동에 문을 연 포셋은 같은 해 11월 부산 전포점을 새로 열었다. 개인의 취향이 트렌드가 되는 요즘이다. 3000여 개의 엽서에서 자신만의 선호를 찾아내는 기쁨과 속 깊숙이 녹아 있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두 번, 세 번 시간이 날 때마다 포셋으로 발길을 이끈다. 처음 방문할 때는 시간을 넉넉히 두고 작품을 감상하듯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엽서 안에 있는 그림을 보고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다면 그를 위한 짧은 인사를 전하자. 엽서와 연필, 진심을 담은 한 문장만 있다면 충분하다.
윤제나 한경무크팀 기자 ze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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