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법정]⑬자발적 성매매 처벌 '합헌'…헌재의 그 '결정'
결정 이후에도 논쟁은 현재진행형…성구매자만 처벌 목소리도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건의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성매매는 '가장 오래된 비즈니스'로 불린다. 성매매 역사는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기원전 45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 신전 여사제들이 순례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 시초라는 설도 있다.
한국은 오래 전부터 성매매를 규제했다. 처벌 대상이 된 것은 1961년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당시 성매매를 한 사람은 '3만환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는 처벌 규정을 뒀지만 현실에서는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2000년과 2002년 군산 화재 참사로 성매매 여성들의 삶이 조명받으면서 이들을 보호하고 업주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힘을 받아 법이 만들어졌고 2004년 시행됐다. 명칭은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매매피해자보호법)과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처벌법). 이른바 '성매매특별법'이다.
◇성매매 여성들 집단반발…"자발적 성매매 처벌 말라" 헌법소원 법이 시행됐지만 출발은 녹록지 않았다. 생계가 막막해진 성매매 여성들이 단식투쟁과 집회를 벌이며 강하게 반발하면서다. 아예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여성들도 등장했다.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성매매 처벌 문제는 헌법재판소까지 가게 됐다. 2012년 13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40대 직업여성 김모씨가 "자발적 성매매 여성까지 처벌하는 것은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며 성매매처벌법 21조 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해당 조항은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해 성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를 처벌하도록 했다.
이 사건은 재판 전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찬반 의견도 팽팽했다. 성매매처벌법이 합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매매 행위는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행위이며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성매매는 사회 구조적 문제이므로 국가가 나서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씨를 비롯해 위헌을 주장하는 이들은 해당 조항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돈이나 성적 만족 등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이용할지는 개인의 선택이므로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헌재 '합헌' 결정…"건전한 성풍속을 해칠 땐 마땅히 규제해야" 2016년 3월 헌재는 돈을 주고 성을 산 남성뿐만 아니라 착취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여성도 처벌하도록 한 성매매특별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앞서 헌재는 2009년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 2015년 2월 간통죄에 각각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결정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가 포함돼 이번에도 위헌 판단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헌재는 "개인의 성행위 그 자체는 내밀한 사생활에 속하고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대상에 속하지만, 그것이 외부에 표출돼 사회의 건전한 성풍속을 해칠 때는 마땅히 법률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며 합헌 결정 이유를 밝혔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이라도 사회에 해악을 끼칠 우려가 있으면 법률로써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성 판매행위를 처벌하지 않으면 성판매 여성의 인권 향상은커녕 오히려 성매매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 우려가 있다"며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성구매자뿐만 아니라 성판매자도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성판매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이익을 위한 성매매가 더 커질 수 있다"며 "불법 인신매매로 성판매 여성에게 합법적인 성판매를 강요하는 등 성매매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간 성매매특별법은 수 차례 위헌심판대에 올랐지만 모두 각하나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위헌으로 판단된 1건도 성매매를 알선한 여관 종업원과 업주를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판단이었다.
◇3인의 소수의견 주목…"자신의 성 처분할 권리"
2012년 성매매처벌법 위헌심판에서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이 결정된 반면 2016년 성매매처벌법 위헌 여부는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합헌 결정됐다. 재판관 3명이 위헌 의견을 낸 것을 두고 사회 변화와 달라진 가치관이 반영된 소수의견이므로 그 의미를 짚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용호 재판관은 성매매 처벌은 성판매자와 성매수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사회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성을 처분할 권리를 인정한 셈이다.
조 재판관은 "성매매처벌법 시행 10년이 지났지만 성매매 근절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생활에 대한 비범죄화 경향이 현대 형법의 추세"라고 설명했다.
또 "국가가 특정 내용의 도덕관념을 잣대로 그에 위반되는 성행위를 형사처벌한다면 그러한 도덕관념을 갖지 않는 사람들의 성적 욕구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며 "지체장애인, 홀로 된 노인, 독거남 등 성적 소외자는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일부위헌 의견을 낸 김이수·강일원 재판관은 성구매자에 대한 처벌은 정당하지만, 성판매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위헌이라고 봤다.
두 재판관은 "여성 성판매자는 기본적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보호와 선도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면서 "이들이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절박한 생존 문제 때문"이라고 밝혔다.
◇나라마다 성매매 판단 제각각…"사회적 논의 현재진행형"
성매매에 대한 판단은 나라마다 다르다. 성매매 관련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이 있다.
호주, 독일, 헝가리, 네덜란드, 스위스, 그리스 등은 성매매가 합법이다. OECD 가입국 38개국 중에서도 많은 나라가 성매매를 합법 또는 제한적 합법화했다.
스웨덴은 성매매를 금지하지만 성구매자만 처벌하고 판매자는 처벌하지 않는 '노르딕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합리적 조정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스웨덴처럼 성구매 수요 차단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단 의견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par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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