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뱃속에 집만 짓고 떠난, '라봄이'에게[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안녕, 라봄아.
초겨울에 네가 선물처럼 찾아왔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라봄이'라고 너를 부르기로 했지.
섣불리 너를 반기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도 됐지만,
남편과 나의 8년 결혼생활에 찾아온 널
초음파로 처음 만난 순간
사실 이루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행복했단다.
그 뒤로 매일같이 그리는 우리의 미래엔
네가 빠진 적이 단 한번도 없었어.
아침에 눈을 뜨면 희망감에 차올랐고,
소심하고 겁 많은 나에게
왠지 모를 강단도 생기는 기분이었지.
그런 네가 엄마 뱃속에 집만 지어놓고 떠났다는구나.
진료실을 나와 배부른 엄마들 사이에서
아빠와 참 오래도 울었단다.
겨울은 더 깊어지고 이제 새해가 찾아오려고 해
새해가 되어 너를 정말로 떠나보내기 전에,
아직은 뱃속에 있는 너에게 꼭 말해주고 싶어.
이번에는 미숙한 엄마에게 잠시 들러 여행을 떠났지만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고.
다음에는 눈·비·바람 다 막아주는 튼튼한 집 같은 엄마가 돼서
씩씩하게 너를 만날 준비하고 있을게.
우리에게 잠시 봄을 선물해주어서 고마워.
사랑한다, 라봄아.
- 봄을 기다리며, 엄마가
어느샌가 불러도 듣지 못하고, 장난감을 던져줘도 반응이 느린 널 보며 이별이 가까워졌음을 전혀 생각지 못한 날 원망한다. 좀 더 자주 보러가고, 더 많이 사랑해줬어야하는데. 그 무렵 다른 강아지를 데려와 네가 자랄 때보다 더 좋은 것들로 키우는 날 보며 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뒤늦게나마 네게도 좋은 것들을 해주려는 날 보며 또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널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기력없이 잠만 자던 네가 갑자기 온몸을 휘어가며 꼬리를 치고 날 알아 보는듯 반기는 걸 보며 불안감이 스쳤었는데. 그걸 몰랐던 언니가 미안해. 조금 더 오래, 따뜻하게 안아주고 긴 인사를 해줬어야 했는데.
그리고는 넌 먼 길을 떠났지. 새카매진 눈을 하고 초점이 없는 널 보고도 실감하지 못했어. 그저 시간이 멈춘 줄로만 알았어.
자두야, 네가 멀리 간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엄마는 여전히 네 이름만 들어도 울지만, 언니는 울지 않으려 애쓰고 있어. 조그맣고 너무너무 천사같던 네가 집에 아직도 있을 것만 같아. 거기선 잘 지내고 있니? 여전히 장난감을 물고 놀아달라 조르니? 아직도 이를 드러내고 U 자로 몸을 휘며 웃니? 너무너무 보고싶어.
자두야, 꼭 다시 언니를 만나러 와 줘. 기다릴게.
사랑해, 보고 싶어.
태어나자마자 선천성 소아암으로 중환자실에서 생후 일주일만에 수술과 항암치료를 시작한 우리 아가. 그리고 출산한 뒤 발열로 아이를 만나지도 못하는 널 보는 내 맘이 찢어질 듯 아팠는데…어느새 우리 아이는 치료가 끝나 곧 세 돌이고 곁에서 행복하게 자라고 있어.
그땐 정말 끝나지 않는 터널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는데. 10개월만에 터널속에서 밝은 빛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내 옆에 있었던 너와 첫째 건우 덕분이야. 우리가 똘똘 뭉쳐서 한 팀으로 이겨낸 게 아닐까 싶어.
육아와 살림, 아이들 교육에 지쳐 우울증까지 온 널 보며, 혹여나 내가 사랑을 많이 주지 못해 힘들게 된 건 아닌지 반성하게 돼. 새해엔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자길 더 돌보고 사랑하는 표현하는 아빠이자 남편이 되어볼게.
우린 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거야,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내년에도 행복한 추억의 사진첩을 만들어가자. 늘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여보.
난 세상에서 엄마 글씨가 제일 좋아. 명필이니, 캘리그라피니 암만봐도 엄마 글씨만큼 예쁜 글씨체를 본 적이 없어. 내년에도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손편지니까 이제 그만 져줘.
37년을 밥해주랴 빨래해주랴 수발 다 들어줬잖아. 그렇게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딸이 결혼해 독립했으면 앓던 이 빠진듯 훌훌 털고 우리엄마 팔자 필 줄 알았는데. 매일 전화하며 주말에 뭐하냐, 어디 안 가냐, 여기와라. 40년 가까이 매일봤는데도 뭐가 이쁘다고 그렇게 보고싶어 하는지 몰라.
그래서 집에 가면 난 엄마 등만 보다 와. 병치레 많이 하던 딸내미 시원찮다며 뭐라도 제대로 먹여보내려고, 바지란히 밥하고 반찬하고 가져갈 것 챙겨주니까.
매달 생활비 보태라고 돈 보내주면 단 한 번을 당연하게 생각치 않았던 엄마. 능력없는 죄로 자식 등골 빼먹는다며 미안하다 말하던 엄마. 그런데 엄마, 내가 세상에 어떤 빚을 내서 엄마에게 준 들 다 갚을 수 없어. 그냥 미안하다 말고 고맙다고 해주면 돼.
작년보다 올해가 낫고 내년엔 더 괜찮을 거라며 그저 다 감사하고 살자는 엄마. 그 말 계속하도록 내가 더 잘할게. 내년엔 땡빚이라도 내서 한쪽 어금니라도 임플란트 해줄테니 고집 부리지말고. 허리도 치료 좀 잘 받고. 아, 손편지 꼭 써주고(히히).
사랑해, 엄마. 가늠할 수 없는 우주 크기만큼♡.
2021년 3월에 만나 어쩌다보니 2년을 함께하게 되었고, 너희들은 이제 졸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구나.
너희들을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던 선생님에게 누군가 말했어. '선생님은 날려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우는 직업이다'라고. 내 품에서 너희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여전히 많이 아쉽고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이젠 더 넓은 세상을 향한 너희들의 비행을 응원하려 해.
아직 초보 선생님이라 많이 서툴고 부족한 점도 많은 나를 항상 좋은 선생님이라 불러주며 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게 해주어서 고마웠어.
선생님은 2021년과 2022년, 우리가 함께했던 따뜻한 시간 속에서 기다릴게. 가끔은 우리가 함께했던 기억에 찾아와 행복했던 시간들을 추억해주렴!
나의 첫 졸업 제자들! 많이 보고 싶을 거야. 너희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해. 사랑한다!
처음 소개받은 날 얘기를 나눴을 때, 난 자기가 사기꾼인줄 알았어. 타지에서 만난 우린 같은 고향, 같은 동네, 같은 나이, 같은 취향, 거기다가 아버지 고향까지도 같았지.
그렇게 우리는 타지에서 서로에게 큰 힘이되며 좋아하는 마음을 키워갔지. 그리고 곧 1주년을 앞둔 지금, 난 자기가 너무너무 좋아서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어. 지금처럼 퇴근 후 조잘조잘 하루의 일상을 공유하고, 주말을 같이 보내며 행복하게 잘 지내자.
내가 가장 신뢰하고 응원하는 남형도 기자님을 통해 내 마음이 꼭 전달되길 바라며.
사랑해 지현아♡
작년 오늘, 무슨 용기가 섰는지 겁없이 너의 입양을 결정하고.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였던 시간이 지나고. 매일같이 옷장 뒤에 숨어있던 율무가 이젠 온 집안을 누비며 잘 지내주는 모습이, 누나에겐 바꿀 수 없는 기쁨이고 행복이야.
단지 운이 좋아서, 어쩌면 그 반대여서 인간으로 태어났고 그래서 그 누구도 생명의 미천함을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요즘들어 말 못하는 동물들에게 너무 가혹한 뉴스들을 접할때면 율무를 바라보는 마음 한편도 아팠어. 율무는 우릴 만났지만 그렇지 못한 더 많은 생명들이 이 모진 겨울날을 잘 버틸수 있을지해서….
율무야, 어쩌면 내가 외면해왔던 불편한 현실들과 편치 않은 마음을 매번 깨닫게 해줘서 고마워. 소중한 깨달음으로 새해에도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이 세상을 위해 더 많이 베풀고 보탬이 되는 일 많이 할게. 지금처럼만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자.
사랑해 율무!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는거지?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간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코로나로 요양병원 면회도 못 가던 때라, 할머니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보낸게 지금까지 맘이 너무 아파.
태어날 때부터 키워주고 첫 손녀 딸이라고 금이야 옥이야 예뻐해준 우리 할머니. 다 커서는 엄마한테도 못하는 뽀뽀를 할머니한텐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내가 너무 사랑한 우리 할머니.
나 살기 바쁘다고 할머니 모른척 한 것 정말 미안해. 요양병원에서 필요한 거 있다고 전화올 때 짜증내서 미안해. 할머니가 나한테 준 사랑은 정말 한도 끝도 없었는데, 그 사랑에 보답도 제대로 못 해줘서 정말 미안해 할머니. 많이 보고싶다. 하늘나라에선 안 아프고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는거지? 힘들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유독 많이나…. 하늘에서 나랑 우리 엄마, 이모, 삼촌 잘 지켜봐줘요.
나도 할머니가 준 사랑 잊지않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게. 그러다 예쁘게 할머니 만나러 갈게. 그때까지 할머니! 나 잘 지켜봐줘! 내가 많이 사랑해 할머니! 그리고 많이 보고 싶으니까 꿈에 자주 나와줘 할머니. 우리 할머니 정말 고마웠고 사랑해요.
아빠가 살아보니 인생은 늘 행복하지만도, 계획한 대로 흘러가진 않더라. 오늘 행복하다가도 어느 날 문득 펑펑 눈물이 쏟아질 때도 있고, 고통에 몸서리치는 날도 있었어. 너희가 그런 날이 왔을 때 꼭 이 편지를 읽었으면 한다.
1등하거나 상위 등급에 속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아빠가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돌아보니 삶은 '승부의 연속'이더라. 학교에서 시험 볼 때, 회사에 입사할 때, 이직 결과를 기다릴 때 모두 경쟁이 없는 곳은 없더라. 하지만 모두가 1등을 하고, 승자가 될 수는 없어. 때론 승부에서 지더라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승자라는 것을 아빠도 뒤늦게 깨달았어. 어느 순간에서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함을 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모든 과정은 분명 너희들에게 좋은 경력이 된단다.
기회는 다양한 경험의 축적에 비례하지, 절대 등수나 등급으로 주어지지 않더라. 재능은 물려받을 수 있지만, 인품은 너희가 키워나갈 수 있단다. 품격을 높이면 매 순간이 기회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
마지막으로 너희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아이들이었단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 눈도 못 뜨고 울고 있을 때도, 재채기하며 방귀를 '뿡' 뀔 때도, 하다못해 노란 변을 쌓는 순간에도 모두가 너희를 보며 행복해하고, 웃고 있었어.
아빠는 너희가 이 세상에 큰일을 할 사람이란 걸 믿는다. 그러니 너희만의 비행기를 타고 마음껏 세상을 날 수 있기를.
사랑하는 딸 푸른윤슬, 아들 언에게 너희들의 날개 아빠 오현호가.
아가씨, 요즘 얼마나 가슴 아픈 나날들을 보내고 있나요. 소예가 태어나자마자 병원에 있다니, 품에 안겨있어야 할 아기인데요.
4년 전 이맘 때쯤 저도 그랬어요. 우리 윤아가 갑자기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나고, 온몸에 치명적인 세균이 퍼져서 생사를 오가고 있었지요. 산후조리도 못하고 내내 울면서도 하루에 꼭 두 번씩 면회를 갔었어요. 겨우 목숨을 살린 뒤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할지도 모른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기도 했고요. 다 내 탓이라고, 내가 백배 천배 만배 더 아파도 되니 내가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살면서 가장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이에요.
소예도 34주에 태어나 벌써 한 달째, 엄마 품을 떠나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었지요. 내일 서울 큰 병원으로 간단 소식을 들었어요. 그 조그마한 아기 몸에 종양이 있다니요. 일반실 밖에 병실이 없다던데, 소예와 초보 엄마가 안쓰럽고 걱정도 돼요.
경험자로서 결국은 해피엔딩이란걸 미리 알려줄게요. 우리 윤아 봐요. 곁에 숨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아이인데, 어느새 쑥쑥 건강하게 컸잖아요. 이제는 엄마 말 좀 잘 들었으면, 밥 좀 잘먹었으면, 동생하고 안싸웠으면…하고 바라는 게 많아졌어요. 우리 딸, 아직 큰 수술은 남아있지만 그 또한 잘 해내리라 믿어요. 우리 소예도 잘 해낼거예요! 그러니 엄마가 든든하게 곁에서 지켜줘요.
평범한 일상이 가장 감사함을 깨달아요. 윤아와 소예, 언니 동생하며 같이 놀 그 날을 그려보아요. 생각만 해도 미소지어지네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가씨, 엄마 탓이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이, 아름다운 세상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같이 기도해요.
P.S. 이 글을 혹시 누군가가 보게 되신다면 조그마한 마음 조금씩만 보태주세요. 우리 소예가 온 우주의 기운을 힘입어 항암치료 잘 이겨낼 수 있도록요. 모두 따뜻한 새해, 평안한 한 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단층집을 짓고 사는 게 꿈이란 내 말에, 우린 결혼 약속도 하기 전부터 땅을 보러 다녔었지. 그렇게 반년을 돌아다니다 연고 하나 없는 강원도 영월에 정착했고, 얼마 전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신혼집이 완성되었어.
처음 땅을 다진 날, 처음 기둥을 세운 날, 처음 창문이 생긴 날(엉성한 상태였지만), 처음으로 그 집에서 잠을 잔 날, 처음으로 온수에 몸을 씻던 날. 그 수많은 처음마다 감격을 금치 못했던 우리가 떠올라. 집을 짓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된 예상치 못한 고난들 속에서도 여기까지 걸어온 우리가 참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식이 용감이라고 참 무모했던 것 같아 ㅎㅎ. '집짓기'라는 이 엄청난 일을 벌일 생각을 하다니 말야. 그래도 서로가 있어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
짜증도 많고 걱정도 많고 화도 많은 나 때문에 올 한 해 마음 고생 심했을 당신에게, 고맙고 미안하단 말을 꼭 하고 싶었어. 앞으로는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마워", "사랑해"란 말만 할 수 있게 내가 더 성숙한 어른이자 동반자가 될게.
2023년에는 더 많이 웃고, 더 자주 행복하자! 고마워, 여보. 그리고 정말 많이많이 사랑해!
전단작업을 위해 함께 무더위와 추위에도 움직여주셨던 따뜻한 단톡방 가족들. SNS 공유도 활발히 해주시고, 전단지 제작과 또미(똘이를 찾다가 길에서 발견해 입양한 아이) 치료비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움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TV동물농장에 소개되어서 똘이 소식이 어디서라도 들려오길 바라봅니다. 우리 똘이가 사람들 눈에 띄어 나타나 주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똘이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쉼없이 열심히 찾아보려 합니다. 게으름을 피우면 죄가 될 것 같아요.
사랑하는 똘이야. 어디에 있니?
널 잃어버리고 찾아다닌지 10개월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어. 하루하루가 지옥이고 끔찍한 악몽속에서 살아가고 있어. 추운 겨울 처음 가본 낯선 산에서 길을 잃고 우왕좌왕 찾아 헤맸을 똘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죄책감에 숨이 멎을듯 괴로워. 낯선 산에 가지 않았더라면,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부주의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텐데 하고 자책해.
얘들아, 안녕? 올해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하루를, 일주일을, 한달을, 그렇게 한해를…우리 같이 보냈구나.
선생님은 올해 처음 너희 만날 때 사실 무척이나 걱정이 됐어. 너희도 초등학교가 처음이었겠지만, 선생님도 마찬가지였거든.
입학식 때도 선생님은 사진 속에선 아주 밝게 웃고 있지만, 속으론 거의 울고 있었어. 너희 6명을 데리고 어떻게 한해를 보내야할지 막막했어.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선생님이 너희에게 뭔가를 해주려고 잔뜩 힘주고 욕심을 부려 그랬던 것 같아.
1년이란 시간을 너희와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보내보니, 너희는 알아서 다 크더라구. 사실 너무 빨리 커 버려서 아쉬울 정도로. 그렇게 알아서 무럭무럭 자라는 존재들이더라구. 선생님이 미처 몰랐어.
어리석은 선생님이 교실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고함을 치며 겁을 줘보기도 하고, 눈을 부라리며 시시때때로 무서운 척해서 미안해. 그런 선생님 표정에도 너희들, 12월이 된 이젠 겁도 하나 안먹고 그냥 히히 웃어버리더라 ㅎㅎ.
사랑스런 나의 8살 제자들! 내년에는 우리 함께할 수 없겠지만, 난 너희를 아주 오래도록 잊지 못할거야. 크리스마스 트리의 반짝이는 색색깔 전구처럼, 그렇게 선생님의 마음 속에서 오래도록 반짝 빛나주렴.
존재만으로도 사랑하고 고맙다, 얘들아!
고등학교 3년 내내, 딸 공부 방해될까봐 큰소리 한 번 낸 적 없던 우리 엄마. 기숙사에 있다가 집에 돌아오는 주말이면, 늘 내가 좋아하는 고기 반찬 차려주고 스트레스 풀라고 먹고 싶은 음식 왕창 사다줘서 고마웠어.
입시때문에 예민해져서 엄마한테 말도 툭툭 내뱉고 짜증 냈던 게 많이 후회돼. 끝나고 되돌아보니 내 옆에서 제일 신경 쓰고 응원해주던 사람이 엄마였단 걸 깨달았어.
수능 성적표 받고 원하던 대학교의 최저를 맞추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펑펑 울던 내게 엄마가 그랬잖아.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옆에서 열심히 하던 모습 엄마가 다 지켜봤다고, 그거면 된 거라고. 위로해주던 엄마의 말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엄마랑 같이 다른 대학교 면접 보러 갔을 때, 학교 캠퍼스가 너무 이쁘다면서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다행히도 그 대학교에 합격해서 서울 상경을 앞두고 있네. 좀 두렵기도 하지만, 캠퍼스에 있는 날 보며 행복한 웃음 짓던 엄마 모습 기억하며 씩씩하게 지낼게!
엄마도 내 걱정 하지 말고, 이제 자식들도 어느정도 키워놨으니까 엄마 인생 행복하게 살아♡ 딸이 응원할게.
사랑해요, 엄마.
딸 혜은이가.
인아야, 나야. 남편이기도 하고, 가끔은 남의 편이기도한 원희야.
매일 퇴근하고 저녁 시간에 그림 그리느라 자기에게 시간을 못 쓰고 혼자 보내게 해서 정말 미안해. 가끔 미안하다고 할 때 괜찮다고 말해주면서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는 인아에게,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지.
지금의 내가 작가로 불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의 배려와 응원 때문이 아닐까 싶어.
배려해준만큼 더 멋지게 성장하는 자랑스러운 남편이 되도록 할게.
언제나 밝고 넘치는 에너지로 우리 가족 엔돌핀이 되어준 우리 블리. 올해 9월 말 '뇌막뇌척수염(뇌와 척수에 염증이 찬 병명)' 진단을 받고 씩씩하게 이겨내 주고 있지.
엄마랑 아빠는 아직도 그날 어두운 부산 하늘. 병원 옥상에서 블리를 MRI실로 보내고 하염없이 흘리던 눈물을 잊을 수가 없어. 그때 다짐했거든. 엄마 아빠가 우리 블리 가족으로 데려왔으니 끝까지 잘 책임지기로. 우리 블리가 어떠한 모습이어도 말이야.
두 눈이 보이지 않고 인지장애로 집안 곳곳을 누비고, 가득 찬 염증의 고통으로 24시간 하염없이 울부짖던 너.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가 그저 우리 블리 편안하게 조금이라도 잘 수 있게 등을 토닥여 줄 수밖에 없어 너무 미안했어.
그와 동시에 엄마는 걷잡을 수 없는 큰 불안감과 우울감이 찾아왔어. 혹시나 우리 블리를 잃지 않을까 하고. 매주 병원에서 듣는 말들로 한없이 무너지다가도, 혼자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고 집에 가면 우리 블리가 하루는 걸어 나오고 하루는 꼬리도 흔들고 그렇게 조금씩 나아진 모습으로 엄마를 반겨줬어. 그래서 엄마 조금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아. 이 또한 블리 덕분이야.
우리 블리가 건강해질 수 있다면 엄마는 매주 가는 병원도, 새벽 다섯시 일어나 약을 챙겨주는 일도 약 먹이기 위해 매번 삶는 고구마도 블리의 밥투정도 아침저녁으로 재 시간에 먹이는 약들도 늦잠 없는 삶도 다 별거 아니야.
블리가 잘 견뎌내 주고 있는 덕분에 다시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우리 블리가 좋아하는 산책도 조금은 불편하지만 공놀이도 할 수 있어 엄마는 너무 행복해. 더 단단한 엄마가 되어 우리 블리 지켜줄게. 어떤 모습이든 엄마는 우리 블리를 너무너무 사랑해. 털이 한 움큼 빠져도, 매일 눈가에 있는 눈곱들도, 쉬로 물든 발도, 아빠만 편애하는 블리의 눈빛도, 입 냄새나는 너의 뽀뽀도.
엄마는 지치지 않을게. 그러니 부디 우리 블리도 엄마 곁에서 오래 함께 해주길 바래. 블리야! 정말 정말 사랑해.
에필로그(epilogue).
어루만져 달라며 뒤돌아 보드라운 등을 보여주던 똘이.
소파에서 스르르 곤히 잠든 내 몸에 따스히 얹어지던 담요.
일 힘들지 않게 대충하라던, 세상 기준과 다른 지지의 말.
바스락 소리에, 흰 눈 위에 동그란 발자욱을 내며 다가온 동네 고양이.
마흔이 되어서도 듣는 차 조심하고 다니라는 말.
악플 보지 말라면서 정작 자신은 다 찾아보던 사람.
맛있는 것 먹으러 가겠냐고…절망을 조심스레 감싸 안는 말.
양손에 가득 안아서 가져와야 할만큼 넉넉하고도 따뜻한 집밥.
이른 새벽 취재갈 때면, 전날 저녁엔 늘 들리는 커피 내리는 소리.
나보다 더 화내주어, 내 화마저 잊게 만드는 절대적인 내 편.
사랑한다 말하지 않았으나, 실은 빠짐없이 사랑한단 거였던 올해의 기억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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