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예규→환경부 고시→KS→?, 난맥상 드러난 방음터널 재질 규정

이승욱 2022. 12. 3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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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가 사망 5명 등 46명의 사상자를 낳을 정도로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는 방음터널 재질이 불에 잘 타는 물질인 터라 불길이 삽시간에 확산됐기 때문이다.

가연성 물질이 방음터널 주재료로 쓰인 까닭은 화재 사고는 염두에 두지 않은 허술한 규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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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에서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

국토교통부 예규→환경부 고시→한국산업규격(KS)→?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가 사망 5명 등 46명의 사상자를 낳을 정도로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는 방음터널 재질이 불에 잘 타는 물질인 터라 불길이 삽시간에 확산됐기 때문이다. 가연성 물질이 방음터널 주재료로 쓰인 까닭은 화재 사고는 염두에 두지 않은 허술한 규제 때문이다.

30일 <한겨레> 취재 결과, 방음터널 재질 관련해 정부가 운용하는 규정 자체가 매우 부실했다. 방음터널의 재질과 성능에 대한 규정은 국토교통부 예규인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 담겨 있다. 문제는 이 지침은 화재 사고를 염두에 두지 않은 환경부 고시(방음시설의 성능 및 설치 기준)를 그대로 준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 고시는 방음 성능을 규정하기 위한 용도이지 화재 발생을 대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경빈 환경부 생활안전과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환경부 고시는 소음 저감 기능을 관리하기 위해 제정됐다. 안전 방재와는 관련이 적다”고 말했다. 제정 목적이 다른 규정을 국토부가 그대로 끌어다쓰면서 방음터널 안전 관리에 구멍이 난 모양새다.

환경부 고시도 허술하긴 마찬가지다. 이 고시는 한국산업규격(KS)에 정한 방음판을 쓰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산업규격에는 방음터널에 쓰이는 ‘투명 방음판’ 관련 규격이 없었다. 한국산업규격을 관리하는 국가기술표준원 담당자는 <한겨레>에 “투명 방음판 관련 한국산업규격은 현재 없다”고 확인했다. 환경부 쪽도 이런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 근거 없는 고시를 환경부가 제정·운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까닭에 건설 현장에선 방음터널을 지을 때 국가건설기준 표준시방서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준의 내열성 규정도 매우 부실하다. 이 기준에선 이번에 화재가 난 방음터널에 쓰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과 같은 플라스틱 수지는 85℃(열변형온도 기준)까지만 버티면 방음시설 재료로 쓸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표준시방서에 담겨 있는) 내열성 규정은 화재 대비가 아니라 여름철 햇빛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규정”이라며 “불이 한 번 나면 1000℃ 이상 올라가는 방음터널 재질에 적합한 규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열성 규정이 이렇게 허술한 이유는 투명 방음판은 방음터널이 아닌 방음벽에 주로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화재 가능성이 낮고 화재가 나더라도 피해가 작은 방음벽만 염두에 두고 투명 방음판의 내열성 규정이 제정됐다는 뜻이다. 투명 방음판을 서로 이어 만드는 방음터널이 갖는 위험의 크기는 애초부터 고려되지 않았던 셈이다. 최 교수는 “방음 터널을 전제로 한 투명 방음판 재질에 대한 관리 규정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이런 사정은 국토부도 파악하고 있지만 그 대책이 소걸음이다. 국토부는 지난해 말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뒤 터널형 방음시설 화재 안전 기준 마련을 위한 용역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발주된 이 연구의 종료 시점은 2024년 3월이다. 용역 연구가 실제 법령에 반영되고 집행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방음터널의 안전 관리 강화는 단기간 내에 이뤄지기는 어려운 셈이다.

이와 함께 지진이나 화산 폭발과 같은 천재 지변에 대비한 안전 진단도 방음 터널은 그 대상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물 유지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교량에 만들어진 방음 터널만 안전점검 대상으로 정하고 있어서다. 이번 화재가 난 방음터널처럼 지상에 만들어진 시설은 안전 진단 대상이 아니다. 국토부 쪽은 “안전진단 대상에 방음터널을 포함하기 위해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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