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떠나면 사랑이 이뤄집니다”...여기가 수도권 ‘해넘이 핫플’ [방방콕콕]

지홍구 기자(gigu@mk.co.kr) 2022. 12. 3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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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정동진·장흥 정남진 이어
인천 정서진 새로운 명소로 주목
고려 설화에 “이곳 오면 사랑 이뤄져”
영종도·대다물도·강화도 낙조 일품
정서진 노을. <자료=인천서구청>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코 앞이다.

덩달아 행복한 고민이 꼬리를 문다. 연말 해넘이를 볼까, 연초 해돋이를 볼까.

매년 되풀이 되는 이 고민의 원조는 분명치가 않다. 예부터 한 해를 잘 마무리해야 새해를 잘 맞이한다는 구전이 후대로 이어졌고, 이동 수단이 발달하고부터는 해돋이·해넘이 명소를 찾아 한해를 정리하고 소원을 비는 이가 많아졌다.

‘정서진(正西津)’은 해맞이 명소로 유명한 강릉 정동진의 정 반대쪽(인천시 서구 오류동)에 있다.

이름 대로 정동진은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정동 쪽, 정서진은 정서 쪽에 있다. 임금이 살던 광화문에서 말을 타고 각 각 정동 쪽과 정서 쪽 방향으로 달리면 나오는 육지 끝의 나루터란 뜻이다.

정서진은 2011년 3월 18일 서울 광화문 도로원표를 기준으로 측정한 결과 경인아라뱃길이 서해와 만나는 경인아라뱃길 여객터미널 부근(북위 37도 34분 8초)으로 확인됐다.

인천 서구는 서해 낙조를 테마로 하는 관광명소를 만들기 위해 ‘정서진’ 좌표를 찾았다.

1994년 드라마 제작 후 관광명소로 부상한 강릉 정동진이 관광지로 뜬 것에 착안해 2004년 정남진을 개발한 전남 장흥군이 자극제가 됐다.

정서진의 서막은 관광 자원화지만 통일이 안 된 우리나라 국토에서 지정할 수 있는 정동·남·서쪽 좌표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렇게 탄생한 정서진은 낙조(落照)가 일품이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수만명의 인파가 몰리는 이유다. 육지와 인천공항을 잇는 영종대교, 대다물도, 강화도 사이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이 서해 바다 수평선과 구름을 물들일 때면 속 깊이 자리한 복잡한 감정이 순식간에 잦아든다.

이 때문일까? 정서진에서 서해를 바라보고 선 정호승 시인의 시비(시 ‘정서진’)는 위로와 희망, 영원(永遠)을 노래했다.

‘벗이여/눈물을 그치고 정서진으로 오라/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히/노을 지는 정서진의 붉은 수평선을 바라보라/해넘이가 없이 어찌 해돋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해가 지지 않고 어찌 별들이 빛날 수 있겠는가/오늘 우리들 인생의 이 적멸의 순간/해는 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찬란하다/해는 지기 때문에 영원하다.’

정서진 경인아라뱃길 노을. <자료=인천서구청>
낙조 감상 포인트는 크게 세 곳이다.

해안가를 따라 듬성듬성 있는 소나무 둔덕 위에 엉덩이를 깔고 보는 낙조는 바다 수평선과 눈높이의 차가 가장 적어 바다에 반사되는 낙조의 산란이 그림 같다.

프리즘을 넓혀 낙조를 보고 싶다면 바로 옆에 있는 아라인천여객터미널 하늘정원이나 아라뱃길 경인항 통합운영센터 23층에 있는 전망대가 좋다.

매일 오후 9시까지 무료로 개방하는 76m 높이 전망대에 오르면 인천 서해와 경인항, 영종대교, 서해갑문, 경인아라뱃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덜 알려졌지만 고려시대 때 장모루(長牟樓)라 불렸던 정서진을 배경으로 한 설화를 알고 나면 낙조 감상의 기쁨은 두배로 높아진다.

설화 내용은 대강 이렇다.

고려 말엽 전라도에 사는 한 대갓집 선비는 왕도인 개경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중 장모루촌 여각(여관)에 묵었다.

그곳에서 만난 여각 주인의 딸과 선비는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과거시험에 낙방한 뒤 다시 여각에 들른 선비는 딸과 함께 살았고, 개경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걱정한 고향 집 사람들은 수소문 끝에 여각을 찾아 아들의 모습을 보고 탄식한다.

선비는 장래를 약속하고 여각을 떠나 3년 뒤 장원급제를 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합격을 기도하고 기다려준 여각의 딸과 재회해 백년해로(百年偕老)한다.

서덕현 인천 서구문화원 사무국장은 “정서진은 노을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두 연인의 사랑이 이뤄져 백년해로를 한 설화가 깃들어 있다”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고 가꾸어가는 연인과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곳”이라고 했다.

노을은 순간 지지만 여운은 길다. 정서진을 바로 뜨기 어려운 이유다.

이럴 땐 정서진 일대를 천천히 걷자. 소나무 둔덕 옆에는 조약돌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이 있다. 종 모양을 형상화한 가로 21m, 높이 13.5m 조형물의 이름은 ‘노을종’이다.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지었다. ‘노을’을 줄이면 ‘놀다’를 의미하는 ‘놀’이 되는데 놀이가 가지는 장난스러움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암 투병 끝에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이민아 목사·전 검사)을 떠올리며 ‘노을이 종소리로 번져갈 때’를 헌시했다고 한다.

조형물 옆 계단에는 세계 각지의 노을 명소를 찍은 사진이 월별로 정리돼 있다.

4월엔 대만 단수이, 5월엔 터키 이스탄불 사원과 우크라이나 키이우, 영국 런던 타워브리지의 노을이 멋지다고 한다. 정서진 노을과 비교하는 재미는 덤이다.

아라뱃길 경인항 통합운영센터 1층에는 경안 아라뱃길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홍보관도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중단됐던 ‘정서진 해넘이 행사’가 3년만에 부활한다.

인천 서구문화원은 ‘정서진, 빛으로 물들다’ 주제로 31일까지 수변무대와 노을종 주변에 경관조명을 설치해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연출한다. 올해 마지막 날인 31일엔 거리공연, 푸드 트럭을 운영한다.

올해 마지막 날인 31일 정서진의 일몰 시각(경인항 기준)은 오후 5시 25분이다.

정서진 표지석. <지홍구 기자>
정서진 표지석. <지홍구 기자>
정서진 갈매기 조형물 포토존. <지홍구 기자>
지상 76m 아라뱃길 전망대. <지홍구 기자>
라이더들의 성지, 4대강 자전거길 출발점
정서진에는 해안 둔덕을 따라 연결된 자전거 길도 있다.

2012년 4월 개통한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여기서 시작된다.

노을종 인근에 이를 기념하는 ‘가자, 가자, 가자! 바퀴는 굴러가고 강산은 다가온다/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출발점’이라고 적은 기념석과 ‘START(출발)’가 선명한 아치 조형물이 있다. 자전거 마니아들에게 기념 촬영 장소로 인기다.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정서진(경인아라뱃길 아라 서해갑문)에서 출발해 ‘아라 김포한강갑문~팔당대교~충주 탄금대~상주 상풍교~부산 낙동 하굿둑(부산 을숙도)’에 이른다.

기념석 일대는 광장으로 조성했는데 총 거리 633km를 본따 ‘633광장’이라 이름 지었다. 자전거길 종주를 꿈꾸는 라이더들에게 출발점과 도착점 역할을 하는 정서진은 마치 성지와도 같다.

정서진 아라갑문 자전거길 옆에는 국토종주 인증 수첩에 인증 도장(아라 서해갑문 코스)을 찍을 수 있는 빨강색 부스가 있다. 633km를 종주한 라이더는 아라뱃길 경인항 통합운영센터 1층 안내데스크(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에서 ‘자전거 종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정서진은 경인 아라뱃길 개통과 함께 만들어진 아라빛섬(인공섬)과 연결돼 산책 코스로도 인기다.

인공 호수를 따라 조성한 산책로와 야외무대, 정서진 광장을 걸으며 인천 앞바다와 갈대 숲, 대형 풍력 발전기 등을 볼 수 있다.

인근 경인아라뱃길 여객터미널, 문화관까지 살펴본다면 90분대 관광이 가능하다. 여객터미널 옆 ‘정서진 아트큐브’에는 인천 서구청과 인천서구문화재단이 마련한 무료 문화 예술 행사가 열린다. 올해는 정규 프로그램은 18일 종료돼 내년 3월 다시 시작한다.

정서진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출발점’ 아치.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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