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韓 최초 에미상 문턱 넘다 [2022 결산]

윤효정 기자 김민지 기자 2022. 12.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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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콘텐츠 거점 되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주연 배우 이정재와 황동혁 감독(오른쪽) ⓒ AFP=뉴스1 ⓒ News1

(서울=뉴스1) 윤효정 김민지 기자 = ◇ "다 같이 이 역사를 만들었다."

2022년 9월1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황동혁 감독의 소감이다. 그의 표현처럼 '오징어 게임'은 한국 최초, 아시아권 최초로 에미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며 '역사적' 사건을 만들었다. 2021년 9월 공개된 후 광속, 광역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의 완벽한 1주년 축포이자 K-콘텐츠 열풍의 만개였다.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오징어 게임'은 공개되자마자 주목받았다. 아이들이 하는 한국의 전통 놀이가 잔혹한 데스 게임의 도구가 되는 흥미로운 구성, 서바이벌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류애와 그로 인한 고뇌 등은 촘촘한 서사를 만들기 충분했고,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덕분에 2021년 9월17일 처음 공개된 후 2주 만인 10월2일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되는 모든 국가에서 1위(플릭스 페트롤 기준)를 하는 대기록을 세웠고, 공개 28일 만에 누적 시청 시간 16억5000만을 돌파했다. 그 해 10월 블룸버그통신은 ‘오징어 게임’의 가치가 1조원에 가깝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 열풍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열기를 더했다.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하며 '역사상 가장 흥행한 넷플릭스 드라마'로 기록됐다. 이 흥행은 시상식에 반영됐다. 2021년 12월 미국 피플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올해의 정주행 시리즈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미국 독립영화 시상식인 고섬 어워즈에서 '40분 이상의 획기적 시리즈'의 주인공이 됐다.

202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상식을 휩쓸었다. 1월에는 일남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오영수가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TV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한국 배우 최초 골든글로브 수상의 쾌거를 거뒀다. 2월에 열린 제28회 미국배우조합상에서는 정호연이 '여우주연상', 이정재가 '남우주연상', 그리고 작품이 그 해 최고 액션 연기가 담긴 작품과 배우들에 주는 'TV시리즈 최우수 스턴트 앙상블상'을 수상했다. 이어 제27회 크리스틱초이스 시상식에서 이정재가 '드라마 남우주연상'을, 작품이 아시아 최초로 '외국어 시리즈상'을 받았다. 2022 할리우드 비평가 협회 TV 어워즈에서도 이정재가 '남우주연상', 작품이 '국제 시리즈상'을 차지하며 2관왕에 올랐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주연 배우 이정재 ⓒ AFP=뉴스1 ⓒ News1

◇ '오징어 게임' 마침내 에미상까지

'오징어 게임'과 전 세계의 시선은 에미상으로 향했다. 에미상은 미국 텔레비전 과학기술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시상식으로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1년간 트로피 레이스를 거치며 2021~2022 가장 성공한 시리즈로 자리매김한 ‘오징어 게임’이 과연 에미상 트로피도 손에 쥘 수 있을지 여부는 초미의 관심이 모였다.

쾌조의 출발이었다. 프라임타임 에미상에 앞서 열리는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배우 이유미가 '드라마 시리즈 부문 여우 게스트상'을 수상하고 '스턴트 퍼포먼스상', '스페셜 비주얼이펙트상' 등 기술 부문에서도 수상 낭보를 전했다. 이어 프라임타임 시상식에서 이정재는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 황동혁은 '감독상'을 거머쥐며 또 한 번 한국, 아시아, 비영어권 콘텐츠 최초라는 기록을 썼다.

영국 가디언지는 '오징어 게임'의 6관왕을 '놀라운 소식'이라고 표현하며 "(에미상이) 비영어권 작품에 보수적인 것을 고려할 때 '오징어 게임'의 수상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수상을 했다는 것은 에미상이 때때로 대담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평했다.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은 단순히 한 작품의 성과를 넘어 문화적, 국제적으로 유의미한 역사였다.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가 제작한 한국 드라마이자, 비영어권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의 수상은 다국적 협업 체제를 바탕으로 한 OTT 플랫폼 글로벌 콘텐츠의 시대임을 보여주는 사건인 동시에 '비영어권' 작품의 성과였다.

황 감독은 "영어가 아닌 시리즈로 에미의 벽을 넘었다"라고 감격의 소감을 전했다. 미국 중심으로, 비영어권 콘텐츠에 배타적이었던 시상식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걸 기뻐한 것. 그러면서 "이런 기회의 문을 다시 닫지 말고 계속 열어주셨으면 한다"라며 '오징어 게임'으로 인해 생긴 비영어권 작품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랐다.

K-콘텐츠와 미디어 플랫폼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유건식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장은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 등의 성과를 두고 "'굿닥터'를 미국에서 리메이크할 때 파일럿에는 동양계 배우가 나왔지만 정규 시즌이 시작된 뒤에는 빠졌다"라며 "그만큼 할리우드는 동양권 배우, 콘텐츠에 보수적인데 이번 에미상에서 그런 부분 희석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어 "그때가 2017년인데 5년 사이에 '기생충'도 나오고 방탄소년단(BTS)도 인기를 얻으면서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시너지가 확대돼 드라마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유통망인 넷플릭스로 공급된 영향도 크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에 대해 "K-콘텐츠가 경쟁력이 있다는 게 인증된 것"이라고 그 의미를 말하며 "이전에는 '신드롬이 일어났다' 정도였다면, 감독상 수상만 봐도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걸 인증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향후 K-콘텐츠의 전망은 어떨까. 정 평론가는 "글로벌 OTT를 통해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로컬 콘텐츠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됐다"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세계로 나간 ‘오징어 게임’, 세계가 주목하는 K-콘텐츠

K-콘텐츠가 가진 힘 역시 주목받고 있다. 정 평론가는 ""K-콘텐츠가 왜 경쟁력이 있는가’를 보면, 전개 속도가 빠르고, 장르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의미 있는 메시지까지 담는 등 한국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이 있다"라며 "멜로도 사랑을 하기까지 과정을 디테일하게 담고, 주먹질을 하더라도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한 감정적 이야기를 담아서 그 진폭이 크다, 과거엔 아시아권에서만 그런 부분이 통했다면, 이제 서구에서도 이를 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에 앞서 영화 '기생충' 그리고 그룹 방탄소년단이 있었다. 음악, 영화, 드라마 전 분야에 걸친 한국 콘텐츠의 성과는 전 세계가 K-컬처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황 감독은 "K-콘텐츠 붐이 찾아왔고 많은 나라에서 주목하고 있다, 드라마 영화 K팝 한식 등 '핫'한 콘텐츠다"라며 "치열하게 다이내믹한 사회이고 작품들은 이 치열한 현대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점과 한국 콘텐츠의 높은 수준이 사랑받은 이유라고 본다"라고 했다.

'오징어 게임' 제작자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는 "한국 콘텐츠를 이제 전 세계인들이 너무 좋아한다"라며 "예전에는 한국말을 알아듣고 한국에 살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들만 좋아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세계로 나가는 통로가 있고 이 통로를 통해 이해도가 높아져서 다른 나라에서 한국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팀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 더 늘어나는 글로벌 OTT 플랫폼과 한국 크리에이터들의 협업

2022년 글로벌 OTT의 국내 콘텐츠 제작은 크게 늘었다. 넷플릭스는 2022년에만 국내에서 아홉 개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오픈했으며, 내년에도 이미 라인업이 꽉 찼다. 디즈니+(플러스)는 2022년 1월 '너와 나의 경찰수업'을 시작으로 '형사록', ‘카지노’ 등 여덟 작품을 공개했다. 이외에도 현재 십여 편의 작품이 공개를 앞두거나 제작 중이다.

또한 HBO 맥스는 미국 인기 드라마 '멘탈리스트' 한국판 리메이크 제작에 참여 중이며, 애플TV+(플러스)는 2022년 '파친코'로 눈도장을 찍었고 시즌2 제작을 확정했다. 한국 시장에 주목하는 글로벌 OTT 업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넷플릭스가 글로벌 유통망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주도했다면, 글로벌 OTT 플랫폼들이 앞다퉈 국내 콘텐츠 제작에 나설 때 국내 크리에이터들의 주도권도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해진다.

정덕현 평론가는 "K-콘텐츠의 선전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결과"라며 "한국 영화가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나 대중적 전파가 어려워 아쉬움이 남았다면, 이제 OTT를 통해 우리 작품이 해외에 바로 소개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그 사이 국내 콘텐츠도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장르적 폭이 넓어져 시너지가 발휘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건식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장은 "앞으로 (콘텐츠 업계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더 커지지 않을까 한다"라고 내다봤다. 그는 "세계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많은 기업들이 제작비 집행에 어려움을 가질 텐데, 한국은 미국에 비해 제작비가 1/10 정도다,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어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히트로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진 동시에 지식재산권(IP) 관련 논쟁도 촉발됐다.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의 흥행으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뒀음에도 작품의 지식재산권을 독점, 러닝개런티 없이 제작비의 110% 정도만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인 것. 지난 2021년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은 "20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는데 수익 배분은 240억원 정도로, 이게 합리적 배분인지 의문"이라며 "수익이 더 창출되면 제작사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냐"라고 했다. 수익이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으면 OTT와 제작사가 상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2018년 넷플릭스의 첫 한국 드라마인 '킹덤'을 시작으로 '오징어 게임'까지 넷플릭스표 한국 드라마의 폭발적인 성장이 이뤄진 4년을 바탕으로, 보다 합리적인 협업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콘텐츠 업계의 일부 시각을 반영한다.

이에 대해 유 소장은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다수 스튜디오들이 IP를 독점하는 상황"이라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기는 하지만 보완은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했다. 재방송을 하면 작가, 배우들이 저작권료를 받는 우리나라와 달리 넷플릭스는 추가적인 혜택이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 평론가 역시 "한국 콘텐츠는 창작자가 IP 권리를 얻는 게 취약해서 대부분 제작자가 가져간다"라며 "이 부분이 바뀌어 작품을 통해 일정 이상 수익이 발생할 때 창작자들에게도 (수익이) 돌아가는 법안이 마련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보상체계가 있을 때 글로벌 OTT와의 협업도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징어 게임' 제작자인 김 대표는 "시즌2는 '굿 딜'을 했다"라며 시즌1에 비해 좋은 조건으로 넷플릭스와 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IP 소유에 관한 이야기는 돈을 대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사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며 시작된 이슈인 것 같다"라면서도 "사실 제작사가 힘을 가지는 게 중요한데 초반에 들어가는 자본을 확보할 길이 열려야 한다고 본다"라는 의견을 냈다.

글로벌 OTT 플랫폼과 여러 차례 협업한 한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한국 콘텐츠가 해외 시장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글로벌 OTT 플랫폼에서) 한국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가능성을 훨씬 더 크게 보는 분위기"라면서 "글로벌 OTT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시도하기 어려웠던 작품도 많고 이런 변화를 통해 한국 콘텐츠도 엄청 업그레이드된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의 성향을 보고 저마다 다른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OTT 플랫폼이다, 예컨대 장르물은 OTT 시리즈로 제작하고 휴먼 드라마 성격이 강한 경우 제작사가 IT를 갖고 TV와 OTT에 동시 공급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라며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색깔과 작품의 포인트에 따라 유통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주도권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세부적인 조율을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다른 제작자는 "한국 콘텐츠 시장은 이제 확실히 글로벌 무대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있고 제작사들도 체급을 키워 안정적으로 제작 중이다, 과거의 중국, 일본, 아시아를 넘어 K-콘텐츠가 글로벌 무대에서도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라며 "앞으로 제2의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이 나와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내다봤다.

ich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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