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의 MLB스코프] 클래식과 대격변, 2022 메이저리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

이창섭 2022. 12.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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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 공인구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야구는 진작 끝났지만, 메이저리그는 뜨거운 스토브리그 덕분에 야구의 온기가 남아 있다. 야구가 없어도 야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그 중요한 일을 초반에 하지 못했다. 구단주 그룹과 선수노조가 새로운 노사단체협약(CBA)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직장폐쇄에 돌입했다. 99일간 모든 업무가 마비됐고, 스프링캠프에 이어 정규시즌도 제때 열리지 못했다. 양측은 3월11일에 극적 타결을 이뤘지만, 싸늘해진 여론이 당장 좋아지지는 않았다.

스포츠 앞에 '프로'가 붙는 이상 스포츠는 오롯이 스포츠로만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본질이 흐려저서는 곤란하다. 양측은 서로의 이익만 추구했을 뿐 그들을 둘러싼 팬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야구를 그저 분쟁의 무기로 삼은 것도 실망스러운 태도였다.

힘겹게 돌아온 메이저리그는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1994-1995년 선수노조 파업으로 등을 돌렸던 팬들을 불러들인 건 1998년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연출한 세기의 홈런 대결이었다. 야구의 꽃으로 불리는 홈런이 메이저리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2022년 메이저리그는 마치 데자뷰 같았다. 이번에 메이저리그를 구한 영웅은 애런 저지였다. 저지는 62홈런을 쏘아 올려 아메리칸리그 홈런의 새 역사를 작성했다. 1961년 로저 매리스의 61홈런을 61년 만에 경신했다. 저지보다 많은 홈런을 쳤던 내셔널리그 세 명의 타자들이 금지약물로 얼룩지면서(맥과이어 & 소사 & 배리 본즈) 저지의 62홈런은 더욱 가치 있는 기록으로 여겨졌다.

자칫 외면 받을 뻔 했던 메이저리그는 또 한 번 홈런 덕분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홈런은 야구의 순정이다. 세이버메트릭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수많은 세부 지표가 탄생했지만, 홈런은 클래식 시대의 자존심으로 남아 있었다.

때마침 클래식 시대에 전성기를 누린 마지막 타자가 이별을 고했다. 앨버트 푸홀스였다. 세인트루이스가 1년 250만 달러 계약을 안겨줄 때만 해도 성적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은퇴하기 전 친정팀과 마지막 동행 정도로 해석됐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은 푸홀스는 아우라가 달랐다. 살아있는 전설의 저력을 보여줬다. 109경기에서 24홈런을 터뜨려 불가능해보였던 700홈런 고지를 점령했다(통산 703홈런).

푸홀스는 모두의 시간을 되돌려 놓았다. 그런데 시간을 되돌린 건 푸홀스뿐만이 아니었다.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샌디 알칸타라는 잊혀졌던 완투형 에이스의 재림이었다. 2016년 크리스 세일 이후 6년 만의 한 시즌 6번의 완투 경기를 완수했다. 200이닝 투수가 점점 희귀해지는 가운데 228⅔이닝을 소화하며 독야청청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200이닝을 돌파한 투수는 알칸타라가 유일했다.

올드스쿨 감독들의 강세도 과거를 되돌아보게 했다. '무관의 제왕'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마침내 남은 과제를 해결했다. 뉴욕 메츠로 돌아온 벅 쇼월터 감독은 통산 4번째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클리블랜드 테리 프랑코나 감독 역시 통산 3번째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비록 토니 라루사와 조 지라디 감독은 불명예 퇴진을 했지만, 올해는 대체로 베테랑 감독들이 후배들에게 한 수 가르쳐 준 시즌이었다.

매년 야구의 위기설이 나올 때마다 귀결되는 건 야구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시대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때로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면서 '야구가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코로나 시즌에 선보인 '연장전 승부치기'와 '7이닝 더블헤더'가 대표적이다.

리그가 정상화 된 올해는 7이닝 더블헤더가 폐지됐다. 7이닝 더블헤더는 야구의 근간인 9이닝을 인위적으로 축소시킨 점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연장전 승부치기는 실효성을 이유로 유지됐다. 무엇보다 올해 가장 큰 변화는 내셔널리그 투수 타석이 사라진 것이었다.

내셔널리그는 1876년 리그 창설 이후 140년 넘게 투수 타석을 고수해왔다(2020년 제외). 투수 부상의 위험성이 대두됐지만, 전통을 계승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또한 투수 타석은 진작에 지명타자를 사용하고 있는 아메리칸리그와 차별화되는 요소이기도 했다. 내셔널리그 입장에서는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투수 타석을 없앤 야구는 지금보다 실용적인 측면이 강조될 것이다. 올해 처음 소개된 피치컴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인 훔치기를 방지하는 대안으로 도입됐지만, 결국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투수들이 공을 던지는 시간을 제한하는 피치 클락이 실시된다(주자 없을 시 15초, 주자 있을 시 20초). 여기에 시프트 제재와 베이스 확대도 눈여겨 봐야 될 규정들이다.

내년 시즌 메이저리그는 야구의 변곡점이 올 수도 있다. 우리가 알던 야구는 맞지만, 우리가 보던 야구는 아닐 것이다. 올해는 이러한 대격변을 맞이할 준비 시간이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 무의미한 순간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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