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축구대표팀엔 한 명도 없지만…5살에 한국 온 '난민' 청년의 꿈

김미루 기자, 김성진 기자 2022. 12.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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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출신 신분때문에 K3 리그 한 경기도 못 뛴 풍기 사무엘
볶음밥의 눌은 밥을 긁어 모으고 있는 풍기 사무엘 선수. 그는 "눌은 밥이 진짜다. 이거 먹으려고 밥 볶는다"며 철판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눌은밥을 긁어냈다. /사진=김미루 기자


지난 19일 자정에 시작된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 프로축구 K리그 포항스틸러스의 풍기 사무엘(21)은 경기도 평택시 집에서 경기를 봤다. 사무엘의 부모는 프랑스를 응원했다. 프랑스 대표팀의 에이스 킬리언 음바페(24·파리 생제르맹)가 카메룬과 알제리 출신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이주민 2세라는 점에서 선수 구성을 맘에 들어했다. 프랑스 대표팀의 에두아르도 카마빙가(20·레알 마드리드)는 앙골라 난민 출신이다. 사무엘의 아버지는 "한국은 왜 난민 출신 선수를 기용하지 못하냐"고 아쉬워했다.

사무엘도 카마빙가처럼 앙골라에서 태어나 다섯살이던 2006년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한국에 왔다.

축구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집 근처 공원에서 우연히 평택 유나이티드FC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나서였다. 곧바로 축구를 시작해 평택 청담중 축구부를 거쳐 경남FC 유스팀인 진주고 축구부로 진학했다. 집과 거리가 멀어 2학년 때 청담고로 돌아와선 축구부 주장을 맡았다.

2020년 말 K리그 개막을 앞두고 입단한 포항스틸러스에서 사무엘의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 이른바 '센터백'이다. 사무엘은 팀 동료들이 믿어주는 수비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같은 팀 수비수 선배 하창래 선수(28)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하 선수가 경기장 위에서 버티면 사무엘은 마음이 편안했다. 사무엘은 "하 선배의 경기 운영 능력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풍기 사무엘 선수의 유치원 졸업사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만 7세까지 유치원을 다녀 정규 과정보다 1년 늦게 졸업했다. /사진제공=풍기 사무엘

지난해 풍기 사무엘이 포항스틸러스에서 훈련 받는 모습. /사진제공=풍기 사무엘

K리그가 탐낸 어린 수비수...'신분' 때문에 한 경기도 뛰지 못하다
문제는 귀화 절차가 늦어지면서 불거졌다. 서류상 사무엘은 앙골라 국적 난민이자 외국인이다. K리그에서는 구단마다 국적과 상관없이 외국인 선수 3명을 둘 수 있다. 프로 구단 입장에서 외국인 베테랑 선수를 포기하고 신인 외국인 선수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사무엘은 규정에 따라 만 19세 성인이 되자마자 지난해 8월 귀화 시험을 치렀지만 1년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귀화 심사에는 평균 1년 8개월이 걸린다.

포항스틸러스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올해 1월 K3 리그 파주시민축구단에 입단한 것도 출전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K3 리그에서도 팀이 이번 시즌 30경기를 치르는 동안 사무엘은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K3 리그에는 만 21세 이하 선수를 기용하는 U-21 제도가 있지만 한국인 선수에게만 적용된다. 같은 팀 성정윤(21), 안유준(20) 선수가 이 제도로 경기를 뛰지만 사무엘은 이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소속팀 선수들은 답답한 마음에 "국밥 먹는 사진을 찍어서 출입국 사무소에 보내주겠다"고 말한다. 사무엘은 한창 실전 경험을 쌓을 나이에 출전을 못해 하루 하루가 아쉽다.

사무엘이 야구 선수라면 프로리그에서 뛸 수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 규정을 신설해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고교야구를 주관하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에 선수로 등록돼 활동했다면 국적에 관계 없이 한국 선수로 간주한다.

풍기 사무엘(21·왼쪽) 선수가 지난해 포항스틸러스 체력단련실에서 고영준 선수(21)와 쉬는 시간에 찍은 사진. /사진제공=풍기 사무엘

한국만 빼고...전세계가 즐긴 '다문화 월드컵'
사무엘의 꿈은 여느 선수들처럼 '왼쪽 가슴에 태극 마크'다. 사무엘이 귀화 시험을 치른 가장 큰 이유다.

지금까지 한국으로 귀화해 국가대표가 된 축구 선수는 없다. 특별귀화 제도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특별귀화는 문화·체육 등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인 외국인에게 한국 국적을 주는 제도다. 2012년 에닝요 선수(41·브라질)가 귀화를 희망했지만 무산됐다. 대한체육회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반 귀화로 국가대표가 되는 길은 열려 있다.

올해 카타르 월드컵은 다문화 월드컵이었다. 참가국 32개 중 귀화 선수가 없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5개국에 그쳤다. 각국 대표팀의 귀화 선수도 137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유럽은 덴마크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귀화 선수를 출전 명단에 올렸다. 이번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4강에 오른 모로코는 출전 선수 26명 중 절반이 넘는 14명이 귀화 선수였다.

사무엘은 "프랑스를 보면 다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지난 월드컵 우승과 이번 월드컵 준우승의 성과를 거뒀다"며 "한국도 대표팀에 귀화 선수를 더 긍정적으로 받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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