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투자했다 눈물의 존버"…개미들 또 '봉' 안되려면[김재현의 투자대가 읽기]
[편집자주] 대가들의 투자를 통해 올바른 투자방법을 탐색해 봅니다.
올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식 투자자들이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한 해였다. 기록적인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미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 경기 침체 우려로 뉴욕 증시가 급락했고 국내 증시 역시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투자 대가들의 지혜를 되새겨봐야 한다. 마침 지난 11월 글로벌 금융정보제공업체 모닝스타의 헤이우드 켈리 리서치 부문 대표가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과 파트너 찰리 멍거의 투자 교훈을 10가지로 정리했다.
2023년 새해를 앞두고 버핏과 멍거의 투자 교훈을 살펴보자.
1. 인플레이션은 '경제적 해자'를 선호하게 하는 또다른 이유다
2022년 이전까지 거의 40년 동안 인플레이션은 무시되어 왔다. 하지만 버핏이 쓴 글을 꾸준히 읽은 투자자라면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인플레이션은 버핏의 주요 주제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버핏이 특히 강조한 건 고(高)인플레 시대에 비용 상승 압력에 노출된 회사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강력한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s)'를 보유한 극소수의 기업들만 가격을 올려서 비용상승분을 상쇄할 수 있다. '해자'는 성곽의 주위를 둘러싼 도랑인데, 여기서는 경쟁사의 침입을 막는 높은 진입 장벽과 구조적인 경쟁우위를 뜻한다. 기업의 가격 결정력이 바로 우리가 넓은 해자를 가진 기업을 그토록 선호하는 이유다.
2. 색다른 금융상품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라
버핏과 멍거는 파생상품, 대재해채권(catastrophe bonds·채권발행을 통해 자본시장에서 위험분산을 가능케 한 금융상품), 암호화폐 및 혁신적인 금융 상품에 줄곧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버핏과 멍거가 버크셔 해서웨이를 운영하는 방식이 그들의 신중함을 잘 드러낸다. 버크셔는 막대한 현금과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으며 부채는 미미한 수준이다.
버핏이 말한 "30분 동안 함께 포커를 쳤는데도 누가 봉인지 모른다면, 바로 당신이 봉이다"라는 표현도 의미심장하다. 금융업계는 투자자들을 금융회사에 유리한 규칙에 맞춰 게임하도록 유도하려는 참가자들로 가득 차 있다. 두둑한 수수료가 포함된 건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지수옵션, 공매도, 3배수 인버스 ETF, 변액 보험은 건드릴 필요가 없다. 간단한 상품이 좋다. 수수료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3. 변동성은 리스크가 아니다
버크셔의 보험 자회사인 가이코, 제너럴리가 막대한 보험상품을 판매했기 때문에 버핏과 멍거는 리스크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그들은 금융 학계가 베타(β·종목의 시장대비 민감도)와 표준편차(σ·평균에서 분산된 정도) 같은 측정기준을 강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리스크를 인식하고 있다.
금융학계는 측정하기 쉽다는 이유로 변동성을 리스크의 대용물로 이용하는데, 이는 변동성이 커질수록, 즉 특정 자산 가격이 하락할 수록 위험이 커진다고 평가하는 잘못된 결과를 낳고 있다. 버핏 등 합리적인 투자자가 주식의 가격이 낮아지면 리스크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다.
대신 버핏은 리스크를 '영구적인 자본 손실을 입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해석한다.
4. 이사회는 반려견과 다름없다
버펏이 2002년 주주서한에서 내린 결론이다. 버핏은 대다수 기업의 이사회가 회사 경영진과 보상위원회의 요구를 그대로 승인해주는 도장 역할에 그친다고 힐난했다(심지어 버핏은 다른 기업 이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비판한 바도 있다).
버핏이 제시한 해결책은 두 가지다. 즉 회사의 사업을 이해할 뿐 아니라 주식 보유를 통해 이익이 회사와 결부된 이사회 구성원을 찾으라는 것으로, 이 경우에도 너무 큰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대신 버핏은 회사 경영진과 직원이 진실성을 가지는 게 중요하며 이사회가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감독하리라고 기대하는 건 몽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5.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투자다
버핏은 투자를 '팻 피치(fat pitch)'를 기다라는 타자에 비교했다. '팻 피치'는 타자가 치기 좋도록 느린 속도로 한가운데 방향으로 날아오는 공이다. 그런데 야구와 달리 투자에서는 스트라이크 세 개를 그대로 보내도 삼진을 당하지 않는다. 원하는 만큼 많은 공을 계속 지켜볼 수 있다.
버핏이 자주 하는 것처럼 현금을 쌓아 놓고 구경만 하는 것도 투자다. 대개 시장 조정으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더 매력적인 가격 수준이 되는 일이 일어난다.
6. 끊임없이 학습하라
버핏과 멍거는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멍거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론을 포함한 과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멍거는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추천했다. 모두 세계적인 스테디셀러다.
멍거는 "여러분은 워런과 내가 얼마나 많이 읽는지 알면 놀랄 것입니다. 내 자녀들은 다리가 두 개 달린 책 같다고 나를 놀립니다"라고 말했다.
7. 인덱스펀드는 훌륭한 발명품이다
사람들이 투자의 귀재이자 전형적인 액티브 투자자인 버핏이 인덱스펀드를 폄하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정반대다. 버핏은 지속적으로 인덱스펀드는 대다수 투자자가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칭송해왔다. 또한 인덱스펀드를 만든 잭 보글 뱅가드그룹 회장에게 찬사를 보냈다.
2007년 워런 버핏이 헤지펀드보다 인덱스펀드 수익률이 월등할 것이라며 뉴욕의 유명 헤지펀드 프로테제 파트너스와 100만 달러의 내기를 한 일화도 유명하다. 버핏은 뱅가드의 인덱스펀드에 투자하고 프로테제 파트너스는 5개 헤지펀드에 투자했는데, 10년 후 버핏의 인덱스펀드가 연평균 7.1%의 수익률로 헤지펀드 수익률(2.2%)를 압도했다.
8. 훌륭한 투자자는 가치주와 성장주를 구분하지 않는다
멍거는 버핏이 벤저민 그레이엄 스타일의 '담배꽁초 투자(cigar-butt investing)' 방식의 가치투자에서 훌륭한 기업을 매수하는 투자로 전환하도록 도왔다. 담배꽁초 투자는 한 두 모금 필 수 있는 담배 꽁초를 줍는 것처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회사를 헐값에 사서 이익을 챙기는 방식이다.
버핏은 멍거의 영향으로 "적당한 회사를 훌륭한 가격에 사는 것보다 훌륭한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1972년 버핏의 시즈 캔디 매수가 버핏의 전환을 뜻하는 이정표다.
여기서 핵심은 특정기업의 가치는, 기업의 성장 전망이 실현될 것으로 얼마나 확신하는지의 함수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가치주'를 '성장주'와 다르게 분석해서는 안 되며 가치주와 성장주 투자를 다른 투자스타일로 구분하는 것 역시 실수다.
9. 출생 복권을 잘 뽑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아라
마지막 두 가지는 삶 전체에 관계된 내용이다. 버핏은 자신이 20세기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여러 차례 강조했다. 만약 버핏이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태어났다면 그의 기업 분석이라는 특출한 능력이 쓸모없게 됐을지도 모른다. 버핏은 이것을 '출생 복권(birth lottery)'이라고 불렀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인생에서 행운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한번 돌이켜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여러분도 운이 좋을 가능성이 크다.
10. 행복을 여는 열쇠는 기대를 낮추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의 열쇠는 아름다운 배우자, 영리한 자녀 또는 즐거운 대화가 아니다. 대신 버핏과 멍거는 행복한 결혼의 열쇠는 기대치가 낮은 누군가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멍거는 행복한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원칙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대해, "행복한 인생을 위한 원칙은 매우 단순하며 첫 번째 원칙은 기대수준을 낮추는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멍거는 기대수준이 비현실적으로 높으면 평생 비참하게 살게 된다며, 자신 역시 기대수준을 잘 낮춰서 유리했다고 덧붙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기대치가 낮았다면 읽고 나서 "그래도 몇 가지 새겨 둘 내용이 있네!"라며 흐뭇해 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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