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중국 코로나의 시작과 끝
중국 베이징에서 대형 부동산 중개 회사 롄자(鏈家) 소속 중개인으로 일하는 28세 위(禹)씨는 새해 1월에 중국 북동부 헤이룽장성 미산(密山)시로 춘제(중국 음력설)를 쇠러 갈 예정이다. 위씨는 계묘년 춘제 공식 연휴(1월 21~27일)보다 조금 이른 1월 첫 주에 고향에 가려고 기차표를 알아보고 있다. 2020년 1월 춘제 이후 3년 만의 고향 방문이다. 춘제는 14억 인구 대이동이 일어나는 중국 최대 명절인데, 2021년과 2022년엔 코로나 방역 조치 때문에 고향에 다녀올 수 없었다. 홀로 객지 생활을 하다 오랜만에 가족을 보러 가는 게 좋으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80이 넘은 고령의 할머니가 얼마 전 코로나에 걸려 치료 중이기 때문이다.
요즘 중국인 지인에게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가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물론 마음속까지 담담하진 않을 것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코로나 비극’도 많다. 구급차가 오지 않아 할머니가 병원에도 못 가 보고 집에서 숨졌다, 병원에서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끝내 눈을 감았다, 화장장에 대기자가 너무 많아 아직 장례를 못 치렀다는 그런 얘기들이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먼 곳의 얘기가 아니라, 실제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중국 정부가 2019년 말부터 3년간 유지한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을 이달 7일 돌연 폐기한 후, 중국 내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폭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염됐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다. 중국의 공식 감염자 수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감염자가 많은 데다, 중국 정부가 그나마 매일 공개하던 감염자 통계 발표도 25일부터 전면 중단했기 때문이다. 중국 국내외 추정치를 보면 상황이 어둡다. 그동안 코로나 통계 발표를 맡았던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는 21일 내부 회의에서 12월 1일부터 20일까지 인구의 약 18%인 2억4800만 명이 감염됐다는 내용을 논의했다고 한다. 외신을 통해 보도된 내부 회의록에 따르면 그렇다. 하루 1190만 명 꼴이다. 특히 20일 하루 감염자 수 추정치는 370만 명이었다. 외부 추정치를 보면 중국의 바이러스 확산 상황은 더 심각하다. 29일 영국 건강 데이터 분석 기업 에어피니티는 내년 춘제 연휴 기간인 1월 23일 중국 일일 코로나 사망자 수가 2만5000명으로 정점을 찍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2023년 4월 말엔 사망자 수가 170만 명에 달할 수 있다는 게 이 회사 예상이다.
중국 정부가 3년간 고집스럽게 지킨 방역 조치를 한겨울에 급작스럽게 풀면서 바이러스가 이렇게 퍼질 것이란 걸 예상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통제를 한꺼번에 대거 완화한 것을 두고 중국 안팎에서 여러 해석이 나온다. 우선 직전에 중국 곳곳에서 벌어진 방역 불만 시위, 일명 ‘백지 시위’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그러나 그보다 근본적으론 경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더는 방치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해석이 더 유력하게 거론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10월 중국공산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만큼, 그동안 중국 국민에게 세뇌시켜온 ‘전염병 전쟁 승리’란 선전전엔 더는 집착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년 3월 집권 3기 공식 출범을 앞두고 경제 살리기가 최우선 순위가 됐다. 2022년 한 해, 중국 경제는 위태로웠다. 봉쇄와 격리, 이동 제한, 검사 의무와 같은 강압적 방역 조치로 중국 국내 수요와 소비, 수출 모두 부진했다. 중국 국가통계국 통계를 보면, 올해 1~11월 중국의 소비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소매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0.1% 감소했다. 2021년 연간 소매판매가 2020년 대비 12.5% 늘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기업 생산 활동 마비로 중산층과 저소득층 소득이 줄었고, 일자리가 없어 16~24세 젊은 층 실업률은 17% 이상을 찍었다. 중국의 수요·소비 감소는 중국의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다. 그나마 중국 경제를 떠받치던 수출도 10월 들어 2년 5개월 만에 감소 전환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장기화는 중국 경제를 더 깊은 늪으로 빠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시 주석이 경제 성장이 내년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직접 언급한 것은 희망적인 신호로 읽힌다. 내년은 올해보다 나을 것이란 기대다. 시 주석은 16일 끝난 중앙경제공작회의(이듬해 경제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경제 발전이 당의 첫째 의무”라며 소비 확대를 우선 추진하고, 더 강력한 재정 정책과 정확한 통화 정책을 펴고,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부동산 개발 기업의 합리적 자금 조달 수요를 충족시키겠다고 했다. 적극적 개입을 통해 어떻게든 경제를 성장 궤도로 다시 올려놓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은 3월 중국 정부가 제시한 ‘5.5% 안팎’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치는 3%대 초반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다. 이번 중앙경제공작회의가 끝난 후 외국 금융권에선 내년 중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5%대 후반까지 높였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위드 코로나’로 가는 길은 어지럽다. 중국만이 겪는 현상은 아니다. 3년 전 코로나의 시작을 기억하는 세계는 코로나의 끝을 향해 가는 중국을 불안하고 초조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걱정과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 추운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이 오듯, 혼돈의 끝에서 희망의 싹이 트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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