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남산 힐튼호텔 오늘 문닫는다…'40년 역사' 추억하는 발길 이어져

2022. 12. 31.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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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영업 종료’ 힐튼호텔 찾아가 보니…
향후 호텔·오피스 복합단지로 재건축 예정
‘1세대 건축가’ 김종성 설계…보존가치 ‘논란’
로비엔 역사 전시공간·자선열차…고객들 '인증샷' 찍으며 추억 간직
40년간 남산 자락을 지킨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이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28일 오후 찾은 호텔에는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는 많은 고객들이 있었다. 남산을 감싸는 듯 보이는 호텔 외관. 오연주 기자

[헤럴드경제=오연주 기자] “밀튼(밀레니엄 힐튼의 줄임말)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이 곳에 추억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열차 마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아이가 커서 보면 뜻 깊을 것 같아요.”(34세 김모씨)

1983년 문을 연 뒤 남산을 40년 간 지킨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이하 힐튼호텔)이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지난해 매각 이후 우여곡절 끝에 문을 닫는 이 호텔은 이날 체크아웃을 하는 투숙객이 마지막 손님이다. 영업종료가 임박하면서 힐튼호텔에는 이곳에 각별한 추억을 가진 이들은 물론 사라지는 것들에 아쉬움을 표하는 많은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국 건축가 설계한 국내1호 호텔
40년간 남산 자락을 지킨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이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28일 오후 찾은 호텔에는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는 많은 고객들이 있었다. 높이 18m에 이르는 중앙홀 아트리움. 오연주 기자

힐튼호텔은 1979년 착공해, 1983년 문을 연 지하 1층·지상 22층 규모의 5성급 호텔이다. 영업종료를 3일 앞둔 28일 오후 찾은 힐튼호텔은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부터, 중장년층 고객까지 다양하한 이들이 호텔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있었다. 10년 전 이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40대 황모씨는 “아이 어릴 때부터 연말 자선 기차는 잊지 않고 보러 왔는데, 이제 호텔이 철거되고 못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호텔 로비에는 40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전시도 준비됐다. 룸과 각종 연회에 사용되던 각종 집기, 호텔 도어맨의 과거 의상까지 보면서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힐튼호텔은 1983년 11월 문을 열었다. 이후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1999년 대우그룹은 싱가포르 기반 호텔운영사 CDL호텔코리아에 소유권을 넘겼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가 닥치자 힐튼호텔은 지난해 부동산펀드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에 다시 매각됐다.

40년간 남산 자락을 지킨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이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28일 오후 찾은 호텔에는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는 많은 고객들이 있었다. 호텔 내부에 있는 역사 전시 공간. 오연주 기자
40년간 남산 자락을 지킨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이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28일 오후 찾은 호텔에는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는 많은 고객들이 있었다. 과거 호텔리어가 입었던 복장이 전시돼 있다. 오연주 기자
40년간 남산 자락을 지킨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이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28일 오후 찾은 호텔에는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는 많은 고객들이 있었다. 과거 호텔리어가 입었던 복장이 전시돼 있다. 오연주 기자

남산을 병풍처럼 감싸는 모양으로 살짝 꺾어진 이 호텔은 건축가 김종성씨의 작품이다. ‘한국 1세대 건축가’로 당시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로 있던 김씨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요청을 받고 귀국해 호텔을 설계했다. 김 전 회장은 호텔 꼭대기 층인 23층 펜트하우스를 개인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사용했다.

힐튼호텔은 한국 건축가가 설계한 국내 1호 호텔로, 건축계에서는 호텔 철거 소식에 보존 가치를 알리며 적극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한 건축학과 교수는 “힐튼호텔을 부수고 거기에 더 큰 건물을 짓는 것은 신라 범종을 녹여서 가마솥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논란을 뒤로 하고 철거가 예정된 힐튼호텔의 두드러진 특징은 높이 18m에 달하는 중앙홀 아트리움이다. 남산 초입 자락 경사면에 자리잡아, 지하부터 자연광이 쏟아지는 천장까지 압도적인 개방감을 자랑하는 독특한 구조다. 아트리움에는 ‘아첼리오’라는 천연대리석을 알프스에서 운반해와 사용했는데, 요즘은 다시 구할 수도 없는 귀한 자재다.

연말 자선열차도 추억 속에서 운행 멈춘다
40년간 남산 자락을 지킨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이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28일 오후 찾은 호텔에는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는 많은 고객들이 있었다. 호텔 내부에 있는 역사 전시 공간. 오연주 기자

무엇보다 1995년부터 운행된 연말 자선열차는 힐튼호텔의 상징이다. 중앙계단을 둘러싸며 지하 공간에 만들어진 미니어처 마을을 열차가 달리는데, 기부한 기업들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관람객이 기부에 동참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비치된 도네이션 박스에는 수북한 온정이 쌓여있었다. 힐튼 열차는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의 첫 운행을 시작으로 힐튼 상하이, 힐튼 나고야 등 세계 각지의 힐튼 소속 호텔에서 수십여년 동안 연말 기부행사로 매해 모금된 후원금을 주변 이웃들에게 전달했다.

올해 10월 힐튼열차 론칭행사에 참석한 티모시 소퍼 힐튼 한국·일본·마이크로네시아 지역 부사장은 “지난 40여 년간 국내 업계를 선도하며 역사적 가치를 자랑하는 밀레니엄 힐튼 서울과 소중한 추억을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힐튼 열차의 마지막 운행을 시작하는 뜻깊은 날을 빌어 그동안 힐튼 열차는 물론 밀레니엄 힐튼 서울을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40년간 남산 자락을 지킨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이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28일 오후 찾은 호텔에는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는 많은 고객들이 있었다. 호텔의 ‘시그니처’인 자선기차. 오연주 기자
40년간 남산 자락을 지킨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이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28일 오후 찾은 호텔에는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는 많은 고객들이 있었다. 호텔 내부에 있는 역사 전시 공간. 오연주 기자

한편 힐튼호텔은 430여 명인 호텔 직원 중 80%는 이지스자산운용이 제시한 보상안을 받고 퇴직했다. 나머지 20%는 남아 이곳에 2027년 준공 예정인 호텔·오피스 복합단지의 자산관리회사에서 일할 예정이다. 힐튼은 서울 시내에 새로운 호텔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업장인 세븐럭 강북힐튼점은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 호텔로 영업장을 옮긴다.

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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