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탄소 배출로 세계 GDP 8% 손해⋯화석연료가 인플레 원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지난 11월 발간한 ‘2023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가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다. IMF(국제통화기금)도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이 2%를 밑돌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글로벌 투자은행(IB)들 역시 2% 안팎으로 내다봤다. 한국도 올해(2%대)보다 낮은 1%대의 경제 성장률이 전망된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검은 토끼의 해)은 우울한 전망대로 흘러갈까.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전망에도 경제 주체들은 토끼처럼 발빠르게 뛰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국내외 석학들을 만나 세계 경제 전망과 활로에 대해 물었다. [편집자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9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태양광 발전 시설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후 변화가 경제 생산성과 안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경제적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 변화가 인명 피해를 늘리고 노동 생산성을 낮출 뿐 아니라 공급망까지 파괴하면서 실물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같은 달 미국 플로리다주를 강타한 초강력 허리케인으로 100여 명이 사망하고, 주택 등 건물 수십만 채가 파괴됐다. 재보험사 스위스리에 따르면 추산 피해액만 650억달러(약 85조590억원)에 달했다.
기후경제학자인 거노트 와그너(Gernot Wagner) 미국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12월 8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기후 위기가 초래하는 경제 피해 규모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상 기후가 더 강력해지고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예측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2023년 세계 경제를 위협할 리크스로 기후 위기를 꼽는 이유”라고 말했다. 와그너 교수는 탄소가 1t 배출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입는 피해액이 200달러(약 26만원)라며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을 고려할 때 이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에 달하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그는 “‘녹색 전환(Green transition·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부진한 세계 경제에 활력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후 위기가 2023년 세계 경제를 위협할 리스크인가.
“이미 기후 위기는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대홍수 피해로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최소 2만 명이 사망했다. 2023년에는 기후 위기의 피해자가 누가 될지, 어디에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기후 위기가 초래한 재난의 강도와 빈도가 증가하고, 예측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 위기가 가져오는 경제적 피해액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미국을 기준으로 탄소 배출 1t마다 발생하는 경제적 피해액이 200달러 수준이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으로 계산한다면 이는 세계 경제 규모의 8%에 달하는 규모다.”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친환경 정책이 되레 인플레이션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독일의 경제학자 이사벨 슈나벨은 ‘화석플레이션(Fossilflation)’에 대한 개념을 내놨다. 화석 연료 가격의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가 겪는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화석 연료를 버려야 한다. 물론 친환경 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과정에서 물가가 오르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산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공급망을 강화하는 데 드는 비용이 반영됐을 뿐이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가격은 각각 20% 상승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화석 연료의 가격은 얼마나 올랐는지 아는가. 200%가 올랐다. 화석 연료 대신 친환경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는 뜻이다.”
-지정학적 위기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전 세계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까.
“오히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위기로) 녹색 전환에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 또 녹색 전환은 성장 동력을 잃은 전 세계 경제에 최적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칩과 과학법, 인프라법 등을 통해 앞으로 3년간 친환경 산업에 약 9000억달러(약 1178조원)를 투자할 방침이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공공 투자는 미국 외 다른 민간 투자자들이 막대한 자금을 친환경 분야에 투자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녹색 전환 관련 투자를 낙관하는 배경이다.”
-해외에선 벌써 녹색 전환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미국, 유럽 등 많은 국가는 이미 녹색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른바 ‘친환경 에너지 경쟁(Clean-energy race)’이 시작된 셈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1년 녹색 전환 관련 투자금의 규모는 7500억달러(약 980조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중국은 2660억달러(약 348조원), 미국은 1140억달러(약 188조원), 독일은 470억달러(약 62조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친환경 에너지와 관련 인프라에 대한 전체 투자액을 2조달러(약 2617조원)로 추산하기도 했다. 전쟁 등을 계기로 미국 등 전 세계가 녹색 전환 관련 투자를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올해 11월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기후 변화의 피해를 본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이 처음으로 타결됐다.
“이번 COP27은 손실과 피해 기금을 누가, 어떻게 낼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 자금은 앞으로 기후 위기로 피해를 본 국가에 대한 개발 원조와 탄소 배출 저감에 활용될 예정이다. 물론 기금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한계로 보인다. 펀드는 만들어졌는데, 정작 그 안에 돈은 없는 모양새다.”
-한국도 기금 조성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고 보나.
“당연하다. 늘 그렇듯 (기후 위기로) 가장 고통받는 것은 부유한 국가가 아닌 가난한 국가들이다. 기후 변화에 책임이 가장 적은 가난한 국가에 보상을 해주는 게 공평하다.”
-한국은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앞으로 원전 에너지 비중을 30%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원자력이 저탄소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만 한국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 것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원전을 도입했다는 이유로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탄소 배출 절감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친환경 에너지원 도입을 확대하고 저탄소 녹색 경제로의 전환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원전을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원전이 진정한 탄소 중립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저서 ‘누가 마지막 나무를 쓰러뜨렸나’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기 때문에 경제학으로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제학은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이기도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만 이끈다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자유방임주의적 관점에서 시장을 가만히 내버려 두라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규제와 개입을 통해 탄소를 배출하는 이에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에겐 인센티브를 제공해줘야 한다.”
Part 1. ‘검은 토끼’가 맞이할 도전들
①'RABBIT’으로 풀어본 새해 경제⋯R의 공포에서 탈출할까
[Infographic] 2023 세계 경제 대예측
Part 2. 전문가 2023년 진단
②[Interview]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③[Interview]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
④[Interview]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
⑤[Interview] 다니엘라 러스 MIT 컴퓨터공학·AI연구소장
⑥[Interview] 거노트 와그너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 교수
⑦[Interview]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⑧[Interview]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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