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아니다”…첨단 무기 과시하던 한국군, 조잡한 드론에 영공 뚫렸다 [박수찬의 軍]
크기가 2m 정도에 불과한 작은 무인기(드론)가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26일 북한 무인기 5대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고, 이 가운데 1대는 서울 은평구 등 서울 북부 상공까지 침투해 강북 일대를 횡단했다. 군은 전투기와 경공격기, 헬기 등을 투입했으나 격추에 실패했다.
북한이 띄운 무인기 중 서울 상공에 진입했던 1대는 시속 100㎞ 속도로 고도 3㎞에서 비행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글라이더 형태인 이 무인기는 원격조종이 아닌 사전에 입력된 좌표를 따라 비행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강원 인제군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기와 비슷하다.
현재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무인기들은 중국이나 옛소련 제품이 대부분이다.
대다수의 기종은 정찰이나 비행 능력 등에서 낮은 수준의 성능을 지니고 있고 원격조종도 쉽지 않으며, 미국의 MQ-9처럼 무장을 장착하는 기종도 아니다. 일각에서 북한 소형무인기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다.
전투기는 기지에서 정비와 무장 장착을 마치고 격납고를 벗어난 뒤 활주로로 이동, 출격한다. 특정 지역에서 상당한 시간에 걸쳐 출격이 이뤄지는 만큼 한·미는 관련 동향을 파악해 대비할 수 있다.
반면 소형 무인기는 평평한 곳이라면 어디든 이착륙이 가능해 원점 파악이 쉽지 않다. 크기가 2m 이하일 정도로 작아서 레이더 탐지가 어렵고, 설령 포착해도 가까운 거리에서 이뤄진다.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매우 부족하다.
이번에 북한 무인기가 오랫동안 날아다니는 대신 단시간 내 핵심 표적에 대한 ‘치고 빠지기’를 택했다면, 군이 전투기나 공격헬기를 투입할 여유조차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북한이 유사시 이번 도발에 투입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량의 자폭 드론을 한꺼번에 동원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는 이 드론을 한꺼번에 투입하는 ‘벌떼 작전’으로 우크라이나군 방공망을 뚫고, 발전소 내 연료저장소나 변전소 등을 정밀타격해 전력공급을 차단하는 전술을 썼다.
이는 국민 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전차나 장갑차 등을 수리할 정비소 운용에도 악영향을 미치면서 중화기 가동률도 낮아지는 모양새다.
북한도 러시아처럼 저가의 자폭 드론으로 러시아처럼 남한 내 기간시설을 무차별 공격하면, 전력 및 에너지난이 심각해지면서 민심이 동요할 위험이 있다. 민심이 흔들리면 전쟁 수행은 어려워진다.
민간 선박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선이 공해상에서 소형 자폭 무인기를 띄우면,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 지방도 사정권에 들어간다.
휴전선 이북과 수도권은 거리가 가까워서 북한 무인기는 미국처럼 위성을 통해 조종하거나 통신할 필요성이 적다. 북한으로서는 원격 제어에 집중할 필요성이 낮다.
반면 엔진 성능은 다르다. 무인기의 속도를 최고 시속 900~1000㎞까지 끌어올리면, 휴전선 이북 지역에서 수 분 내에 서울에 이를 수 있다. 지상 대공포부대나 전투기 등은 요격을 시도할 타이밍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은 옛소련이 만든 Tu-141 정찰무인기를 순항미사일처럼 개조해 국경에서 500㎞ 떨어진 엥겔스 공군기지를 여러 차례 폭격했다. Tu-141은 1980년대 제작된 구형이지만 시속 1000㎞로 빠르게 비행할 수 있어 러시아군 방공망을 돌파하고 있다.
북한 무인기 도발 직후 군에서는 “2014년과 비교하면 탐지는 이뤄졌으니 진전이 있었던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무인기를 요격할 수 있는 체계와 방법, 기술, 장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탐지를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군 소식통은 “프로야구에서 투수가 강속구를 던지는데 타자가 이를 제대로 받아칠 기술이나 방망이가 없다면, 타자는 강속구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걸 알고도 삼진을 당한다”며 “무인기를 잡을 기술이나 방법, 장비, 메뉴얼 등이 있어야 탐지도 실효성이 있다”고 말했다.
군은 레이저로 무인기를 파괴하는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1은 2027년, 재밍(전파방해)으로 무인기를 마비시키는 소형무인기 대응체계는 2020년대 중반을 목표로 전력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휴대용 소형무인기 대응체계를 신속시범획득 사업으로 도입, 대응 공백을 메울 계획이다.
합동참모본부가 28일 국회에 보고한 것처럼 국지방공레이더와 저고도탐지레이더, 열상감시장비와 KA-1, 공격헬기, 지상대공포 등을 패키지로 운용하는 방법도 있다. 29일에는 이와 유사한 합동방공훈련이 이뤄졌다.
하지만 낮은 고도로 비행하는 헬기가 고고도에서 활동하면 비행성능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2m 크기의 소형무인기를 헬기조종사가 제때 식별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벌컨포를 비롯해 신궁 휴대용 지대공미사일과 30㎜ 기관포를 결합한 비호복합체계 등 지상 방공무기는 저고도 침투 AN-2나 헬기 요격이 핵심이며, 24시간 가동도 어렵다.
특히 무인기 비행경로에 군 주둔지가 아닌 민간 거주지역이 많았고, 고도도 3㎞에 달했다. 일반적인 소형무인기 고도가 수백m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북한이 요격회피를 위해 고도를 높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지상 방공무기 사용은 더욱 제한된다.
개발중인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1은 지상 고정형으로서 이동과 전개가 쉽지 않다. 차량 탑재형인 블록-2는 블록-1 전력화가 이뤄진 후에 등장할 예정이다.
무인기에 위성항법장치(GPS) 신호를 보내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착륙하도록 하는 스푸핑(주파수 가로채기)은 무인기에 대한 해킹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국내 방산업계가 개발중이지만 2026년 이후에야 등장할 전망이다.
전면전 상황에서는 대응이 상대적으로 쉽다. 다수의 벌컨포나 중기관총을 투입해 소형 무인기 예상 경로에 수백발씩 쏘면서 화망을 구성하고, 지대공미사일을 조밀하게 배치하며 전투기로 24시간 경계태세를 취하면 막을 수 있다.
이를 두고 전시와 평시에 북한 무인기에 대응할 매뉴얼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소식통은 “민관군에서 전문가들을 모아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공부대 장병에 대한 교육 강화의 필요성도 나온다. 북한 무인기의 특성과 예상 비행 방향 등에 대한 사전 교육을 실시하면, 유사시 대응이 더욱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발포 시 민간 피해가 없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 장병들이 무인기 발견 직후 즉각 사격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줘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어 군 당국의 향후 대책 마련에 관심이 쏠린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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