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는 K기업] 파주에서 만든 드라마, 유럽·남미에서 흥행

이은영 기자 2022. 12. 3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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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 촬영은 옛말… 제작 환경 대폭 개선
글로벌 동심 잡은 IP, 시즌 제작에 1~2년
완구도 직접 공들여… 매출 68% 차지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 인근에 있는 CJ ENM 드라마 스튜디오 타운. 물류창고 단지를 연상케 하는 이곳엔 대형 스튜디오 13동이 줄지어 있다. 스튜디오는 1650㎡(약 500평)부터 5300㎡(약 1600평)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이 중 드라마 전문 스튜디오인 ‘스테이지 10′에 들어서자 암전에 가까운 어둠이 펼쳐졌다.

플래시를 비추며 내부로 들어서니 건축용 합판과 소품 더미 사이로 33㎡(10평) 남짓한 세트장이 환한 조명을 받고 있었다. 조명 아래에서 연기자와 스태프들은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형사록’의 두 번째 시즌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튜디오드래곤의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형사록 시즌2' 제작 현장. 감독과 스텝들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파주=이은영 기자

“하이, 큐” 소리와 함께 2600㎡(약 800평) 규모의 스튜디오에는 정적이 흘렀고 연기자의 대사 소리만 세트장 문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세트장 밖 어둠 속에선 모두가 침묵을 지키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컷, 오케이” 소리와 함께 스튜디오는 다시 분주해졌다.

‘형사록’은 스튜디오드래곤의 첫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그동안 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제작해왔다. 그 외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는 동시방영이나 구작 판매만 해왔으나,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글로벌 OTT와의 파트너십을 다각화하고 있다. 그 덕에 스튜디오드래곤의 해외 매출은 지난해 3분기 387억원에서 올해 3분기 1281억원으로 1년 새 3배 넘게 늘었다.

스튜디오드래곤의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형사록 시즌2' 세트장.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라 스튜디오드래곤이 현장 안전 관리를 강화하면서 세트 건설에는 방염목재만 쓸 수 있게 됐다. /파주=이은영

해외 수요가 늘고 주 52시간 근로제,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시행되면서 제작 환경도 바뀌고 있다. 현장에선 엄격하게 주 52시간에 맞춰 촬영을 진행하고, 현장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세트장은 방염 처리가 된 목재만을 이용해 짓는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올해 안전관리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한류(韓流·한국 대중문화 열풍)’로 불리며 아시아 지역 내에서 인기를 끌던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K 콘텐츠’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한국 영화가 글로벌 시상식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는가 하면 한국 드라마와 애니메이션도 OTT와 유튜브를 타고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미국 방송계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에미상 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작품 최초로 6관왕을 차지했고, 키즈 IP(지식재산권) ‘아기상어’의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120억회로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덕분에 한국의 콘텐츠 수출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체 수출액이 전년 대비 5.5% 감소한 2020년에도 16% 넘게 늘며 119억달러(약 16조원)를 기록했다. 가전제품과 이차전지 수출액을 훌쩍 웃도는 수치다. 지난해에도 136억달러(약 18조원) 수출을 기록하며 증가세를 이어갔다. 올해 상반기에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소폭 증가한 55억달러(약 7조원)를 기록했는데 특히 영화와 만화, 음악, 광고 등 분야 수출이 두드러졌다.

그래픽=손민균

이달 15일 찾은 ‘아기상어’ 제작사 더핑크퐁컴퍼니는 차세대 IP ‘베베핀’ 제작에 한창이었다. 베베핀은 더핑크퐁컴퍼니의 기존 IP와 달리 사람이 주인공인 3차원(3D) 가족 애니메이션이다. 핑크퐁과 아기상어를 ‘슈퍼 IP’로 키워낸 팀이 합심해 개발했다. 올해 4월 첫 선을 보였는데 유튜브 누적 구독자 300만명, 누적 조회수 5억2000만건을 돌파하는 등 아기상어보다 두 배가량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 서초구 더핑크퐁컴퍼니 본사에서 '베베핀' 제작 담당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더핑크퐁컴퍼니 제공

애니메이션 제작은 기획→원화 드로잉→모델링→리깅(rigging)→애니메이팅→라이팅 순으로 이뤄진다. 원화 디자이너가 캐릭터를 비롯해 소품과 배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질감 등을 포함해 그려내면, 2D 원화를 바탕으로 마치 찰흙을 빚듯 3D 모델링을 한다. 이후 찰흙 모형에 뼈대를 심듯이 관절을 설정해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틀을 짠다. 이를 리깅이라고 한다.

이후엔 연출팀의 시나리오 콘티를 바탕으로 카메라 각도, 캐릭터 움직임 등 장면을 구성한다. 이어지는 단계마다 움직임, 표정, 질감 등에 디테일이 더해지고 마지막에 빛과 그림자를 합성해 색감을 조정한다. 시즌 한 개를 제작하는 데 1년이 훌쩍 넘게 걸린다.

더핑크퐁컴퍼니의 차세대 IP '베베핀'의 캐릭터 리깅 작업. 디자이너가 2D로 작업한 원화를 바탕으로 3D 모델링을 하고 나면 관절을 설정해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게 하는 '리깅' 작업을 거친다. /더핑크퐁컴퍼니 제공
더핑크퐁컴퍼니의 차세대 IP '베베핀'의 라이팅 작업 전(왼쪽)과 작업 후 완성물(오른쪽). 제작의 마지막 단계인 이 과정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합성해 영상에 생동감을 주고 작품 전체의 색감을 조절한다. /더핑크퐁컴퍼니 제공

기획과 제작을 총괄한 박한솔 콘텐츠제작본부장은 “아기상어와 달리 사람형 캐릭터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아이가 동질감을 느끼고 이입할 수 있도록 월령에 맞는 행동과 움직임을 구현하려 했다”며 “단순 재미용이 아니라 교육 목적의 콘텐츠이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캐릭터 대사나 행동에 문화적인 오해가 없도록 신경썼다”고 말했다.

또 다른 키즈 애니메이션 제작사 SAMG엔터의 ‘효자 IP’는 ‘캐치! 티니핑’과 ‘미니특공대’다. SAMG는 콘텐츠 개발에만 그치지 않고 완구 등 기획상품(MD)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고 있다. 전체 매출 가운데 완구 매출 비중은 68%에 달한다. 통상 국내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MD를 직접 제작하기보다는 완구 제작사에 IP 라이선스를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2일 찾은 SAMG 제작 스튜디오는 2023년 하반기에 공개될 다음 시즌 ‘캐치! 티니핑’ 애니메이팅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바로 옆에선 지난 9월에 공개된 미니특공대 시즌5 ‘브이레인저스’ 완구 작업으로 분주했다. 완구 기획부터 변신 로봇 조립 설명서 제작까지 구성원들의 손을 거치고 있었다.

미니특공대는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속에서도 3년간 중국에서 1000여종의 상품이 출시됐고 1600만개에 달하는 상품을 팔아 1800억원을 벌어들였다.

SAMG엔터의 대표 IP '캐치! 티니핑' 봉제 인형. /이은영 기자
SAMG엔터가 지난 9월 선보인 미니특공대 시즌 5의 변신로봇 장난감의 조립설명서 작업 과정. /SAMG 제공

SAMG 관계자는 “완구 작업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오고 있다. IP 기획 단계에서 완구 기획도 함께 하고 있다”며 “‘캐치! 티니핑’의 경우 캐릭터 인형이 인기가 많은데, 봉제인형 시장이 쇠퇴해 매대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티니핑 인형 인기에 힘입어 매대를 다시 늘린 곳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SAMG는 중국과 유럽, 남미 시장을 넘어 애니메이션의 고장인 일본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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