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올라탄 K창업가]① “고급 韓 식자재로 美 여성 홀렸죠” 미국판 마켓컬리 김씨마켓 CEO
미국에서 직접 정미한 쌀부터 13만원짜리 죽염까지 판매
영업맨·광고 없이 뉴욕 유명 한식당 거래처로 뚫어
”북미·유럽에 아시안 고급 제품 판매하는 종합몰 될 것”
지금 미국 뉴욕에서 가장 핫한 한식당 아토믹스(ATOMIX).
이곳은 7월 전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식당 평가 리스트로 꼽히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 미국 1위에 오른 데 이어 10월 발표된 미쉐린가이드에서 별 2개를 받으며 2020년부터 3년 연속이란 기록을 세웠다.
이 식당은 16가지 음식으로 구성된 코스요리에 보리굴비, 청국장, 두부 등 외국인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본격적인 한국 요리를 내놓는다. 그중에서도 호평을 받는 음식 중 하나가 고슬고슬한 쌀밥이다.
미국 요리잡지 이터(EATER)는 “고소한 버터팝콘 향이 나면서 식감은 쫄깃하다”라고 묘사했다. 아토믹스는 ‘골든 퀸 3(Golden Queen III)’라는 쌀을 쓴다.
농업회사법인 시드피아의 조유현 박사가 만든 이 쌀을 아토믹스에 독점 공급하는 곳은 ‘김씨마켓’이란 이름의 미국 이커머스다. 고급 한국 식재료 전문몰을 지향하는 이 회사는 아토믹스를 포함해 뉴욕 유명 식당 상당수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아토믹스 두 창업자가 새로 만든 레스토랑 나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한국식 BBQ 레스토랑 꽃(COTE), 제주 누들 바, 현대자동차의 복합 문화공간 제네시스하우스 뉴욕 등이 김씨마켓에서 식재료를 사간다.
2019년 문 연 김씨마켓의 직원 수는 단 10명. 이 중 영업맨은 따로 없고 유료광고를 하거나 마케팅 비용을 집행한 적도 없다. 말 그대로 셰프들 사이 입소문으로 미국판 마켓컬리라는 별칭을 얻으며 조용히 성장 중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각) 뉴욕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마켓의 라이언킴 대표는 “12가지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한 한국산 고품질 식자재를 선별해 판다”며 “쌀은 한국에서 받아온 뒤 직접 정미(精米)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선 팔지 않는 98달러(13만원)짜리 최고급 소금도 가져온다”고 말했다.
향후에는 미국, 유럽 고객을 대상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프리미엄 제품을 판매하는 종합 이커머스로 사업모델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김 대표는 은행원으로 재직하다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일한 뒤 미국 상무부에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의 창업자다.
다음은 라이언킴과의 일문일답.
-어떤 제품을 판매하나.
“내부적으로 정한 12가지 요인을 충족한 제품을 입점시킨다. 생산자는 누군지, 이걸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제품에 들어가는 각종 원재료는 어디서 왜 왔는지, 판매자의 평판도 조회하고 제품 패키지와 주요 판매 채널, 해외 수출 경험 등 다양하게 따진다.”
-김씨마켓에서만 구매 가능한 독점 판매 품목이 있나.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예컨대 김씨마켓에서 판매하는 소금 중 죽염이 있는데 스테이크에 곁들여 먹으면 음식의 맛 자체가 달라진다. 쓴맛이 전혀 없고 끝맛이 달다. 가격이 98달러다. 최종 생산까지 9단계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원가가 비싸다.
이걸 미쉐린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뉴욕의 스타 셰프 장 조지가 가져갔다. 처음에 3세트를 달라고 했는데 물량이 없어서 2세트 밖에 못 보냈다. 희귀한 고급 식자재를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쌀은 우리가 직접 정미해서 판매한다. 일본에서 정미 기계를 사왔다. 한국 쌀 품종 300개 중에서 제일 좋은 걸 사와서 현미 상태로 보관하다가 고객 요청에 맞춰 정미해서 바로 보낸다. 마트와 달리 2~3㎏짜리 소포장 쌀도 판매한다.”
-한국의 쿠팡, 마켓컬리 같은 이커머스 모델을 지향하는지.
“김씨마켓의 사업모델은 B2B(기업 대상 판매)·B2C(소비자 대상 판매)·CPG(consumer packaged goods·자체 제작한 소비재 상품, 일종의 PB) 크게 세가지다. 아토믹스 같은 레스토랑이나 밀크스트릿 같은 현지 이커머스에 제품을 판매하거나 미국에 거주하는 소비자에게 물건을 판다. 떡을 외부 위탁 생산해서 팔기도 한다.”
-처음에 소비자를 어떻게 유입시켰는지 궁금하다.
“구글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검색 엔진 최적화)를 적극 활용했다. 사람들이 구글에서 한국 식재료와 관련한 키워드를 입력했을 때 김씨마켓 홈페이지가 상단에 나오도록 상품 상세 페이지를 제작하는 것이다. 한국 제품과 콘텐츠와 관련한 글을 쓰는 블로그도 운영해 김씨마켓으로 트래픽을 유도한다.
어느날 갑자기 한우를 사고싶다는 이메일과 전화가 회사로 쏟아져서 놀란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넷플릭스에서 한우 랩소디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돼 사람들의 관심이 확 늘어난 것이다. 우리가 관련 키워드를 홈페이지 여기저기에 심어놔서 검색을 했을 때 바로 노출이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씨마켓의 주요 소비자층은 누구인가.
“B2C(소비자 대상 판매) 매출 55%가 미국 현지인에게서 나온다. 연령·성별로 보면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2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의 여성이 많다. 지역별로는 뉴욕 맨해튼, 브룩클린, 코네티컷, 실리콘밸리 쪽에서 주문이 많다.”
-뉴욕 유명 식당에는 제품을 어떻게 납품하게 됐나.
“레스토랑에선 쌀이 중요하다. 그런데 좋은 식재료를 공급해주는 곳이 없었다. 한인마트 가서 식재료를 사는 게 셰프들로서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셰프들끼리 알음알음 김씨마켓을 추천하거나, 유명 셰프의 쿡북(cookbook·요리책)에 언급되거나 구글에서 검색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영업맨도 없고 광고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 직전에 회사를 창업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창업 초기에 LA에 창고를 열었다가 팬데믹이 터지면서 접었다. 그때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기회가 된 측면도 있다. 아마존도 상품을 배송하는 데 몇 주씩 걸릴 때 우리는 익일배송을 해서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모두가 재택근무하고 배송기사도 잘리거나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내가 직접 배송을 다녔다.”
-회사 인지도가 낮았던 초창기에는 입점업체를 설득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 입점업체가 달랑 2곳이었다. 신규 거래처를 뚫을 때마다 회사 설명을 한참 해야 했다.
거창의 국수회사 ‘거창한국수’는 워낙 인기가 많은데 소량 생산해 제품이 출시되면 10분 만에 매진이 된다. 처음에 사장님이 30㎏만 보내겠다고 해서 그걸 비행기로 받았다. 전혀 이윤이 안 남았다.
그렇게 몇번을 거래를 하다보니 신뢰가 쌓여 다음부터 조금씩 물량을 늘릴 수 있었다.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고 하면 아는 다른 생산자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현지 매거진에 소개되기도 하고 인지도가 좀 생겨서 먼저 입점 제안이 오기도 한다.”
-소비자들이 김씨마켓을 어떤 플랫폼으로 인식했으면 좋겠나.
“아시안계 미국인이 만든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회사가 되고 싶다. 지금은 한국 제품을 주력으로 하고 있지만 일본, 대만 제품도 테스트 판매를 해봤고 앞으로는 확대할 생각이다. 투자를 받아서 미국 다른 지역과 독일이나 네덜란드에 창고를 지을 생각이다.”
-미국에서 한식이 인기라고 하는데 주류 시장 편입도 가능할 거라 보나.
“일본 기꼬만 간장이 미국 주류 시장에 편입되기 위해 1960년대부터 노력을 했다. 기꼬만 간장은 유통 채널도 가지고 있다. 한국 식품은 미국 시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다만 한번 미국 소비자가 관심을 갖고 구매하기 시작하면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2006년 뉴저지 호보켄에 살면서 은행을 다녔는데 당시 주지사 사무실에 왔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처음 만났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대선 캠프에서 선거자금 모금도 하고 대리 토론도 하고 아시안 매체와 접촉하는 업무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미국 상무부에서 일하다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를 창업하고 스타트업에 몸담았다가 김씨마켓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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