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한류]② “농촌 마을 돌며 촌장께 신뢰 얻었죠”… 캄보디아 소액대출 1위 KB금융
김현종 프라삭마이크로파이낸스(이하 프라삭) 부대표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오늘만 해도 3~4시간을 달려 크라바지점이 있는 마을을 찾아 촌장을 만났다.
김 부대표와 직원들은 꾸이띠우(캄보디아 쌀국수)나 끄롤라인(대나무밥)을 함께 나눠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촌장은 지난 우기 동안 비가 너무 적게 와 강 수위가 낮아지는 바람에, 최근 농사가 어렵다고 한탄했다. 김 부대표는 촌장의 등을 어루만지며 그를 위로했다.
캄보디아는 촌 단위 농경 사회라 마을 사람들끼리의 연대가 끈끈하다. 직접 그들을 만나 친분을 쌓지 않으면 영업을 확장하기 어렵다. 김 부대표가 모든 마을을 돌아다니기로 결심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김 부대표가 찾아간 마을은 캄보디아 내 24개 주의 180여 개에 달한다.
처음에 주변에서는 직접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을 비효율적인 방법이라며 반대했다. 그럼에도 김 부대표는 하루 종일 “쑤어스데이, 영 모 삐 쁘라삭 엠에프아이(안녕하세요 저흰 프라삭마이크로파이낸스에서 왔습니다)”를 연습하며 마을을 찾았다.
프라삭은 캄보디아 현지 최대 소액대출금융기관(MDI·Microfinance Deposit-taking Institutio)이다. 2020년 4월 KB국민은행은 프라삭 지분 70%를 인수해 계열회사로 편입했다. MDI는 캄보디아와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빈곤층이 대출과 같은 금융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한다. 담보가 없어 대출금리가 다소 높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김 부대표는 “MDI는 초기 자금이 없는 고객들에게 소액으로 대출해주는 기관”이라며 “MDI 특성상 대부분 고객이 소상공인이어서 주변 지인을 통해 대출을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회상했다.
김 부대표는 영업을 위해 지방 출신 영업직원을 대폭 늘렸다. 그 지역 출신 영업직원이라야 동네를 잘 알 뿐 아니라 대부분 촌장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김 부대표는 “프라삭은 캄보디아 내 두 번째로 큰 185개 점포와 9500여명의 직원이 있다”며 “이 중 영업직원만 5500명인데, 영업직원은 자신의 출신 지역에서 지방영업을 한다”고 말했다.
영업직원은 수도 프놈펜에서 자신의 동네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한다. 동네 사람들은 그 동네 출신 영업직원의 방문을 반긴다. 영업직원은 꾸준히 자신의 마을을 방문하며 친분을 쌓기에, 자연스럽게 대출이 필요한 사람은 그 영업직원부터 찾는다.
캄보디아 Pum Thor Thum에서 건설자재 판매소를 운영하는 씨언 리(40·가명)씨는 프라삭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는 “코로나19가 끝나가면서 가게를 열거나 보수하는 고객들이 늘고 건설자재 수요가 급증해 급하게 대출받을 곳을 찾아야 했다”며 “프라삭은 다른 은행과 달리 직원이 해당 지역에 대해 잘 알고, 평소에도 꾸준히 내 가게에 방문해 사업 현황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프라삭은 2020년 1433억8500만원, 지난해 2085억60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높은 수익성 개선에 힘입어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0월에는 잔여 지분 30%마저 인수하며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현재 프라삭은 KB국민은행이 지난해 해외 사업에서 거둔 순이익 가운데 70%를 차지할 만큼 ‘효자 계열사’가 됐다. 프라삭은 캄보디아 내 소액대출 점유율이 44.6%로 1위를 차지하며, 상업은행을 포함한 금융사 전체로 따져도 점유율이 8.2%로 4위다.
지금은 효자 소리를 듣는 프라삭이지만, 인수 과정은 험난했다. 김 부대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괜찮겠어?’였다.
KB국민은행은이 프라삭 인수를 추진할 당시는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 공포에 휩싸였을 때였다. 캄보디아 역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국가비상사태법이 만장일치로 국회를 통과할 만큼 시기가 나빴다. 인수·합병(M&A)을 위해 현지에 부임한 김 부대표는 당시를 생각하면 아찔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김 부대표는 “캄보디아 시장을 노리던 KB금융 입장에서 프라삭은 매력적인 매물이라 인수를 결정했지만, 걱정스러운 주변 시선이 많았다”며 “외부적으로는 코로나19가 창궐했고, 내부적으로는 여러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미 9000명이 넘는 거대한 조직이었던 프라삭에는 고유한 기업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금융당국 역시 외국계 주주가 캄보디아 현지 시장과 법규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할 위험에 대해 경계했다. 김 부대표는 “캄보디아 직장인의 경우 한국과는 달리 다른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바로 이직한다”며 “조직생활부터 문화 차이까지 한국 기업 문화와는 여러 차이가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김 부대표는 회사 규정부터 손봤다. 김 부대표는 ‘프라삭은 KB 것이 아닌, 캄보디아 직원들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대표는 “누구나 열심히 하면 임원이 될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매번 심어주었다”며 “그리고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는 확실한 금전적 혜택과 기회를 제공했다.
프라삭은 우수직원 25명을 선발해 서울 KB본점을 견학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현지 직원도 일한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변화는 직원들에게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동기부여와 확실한 보상을 제공하니 프라삭은 직원들 사이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회사가 됐다.
현지 경영진과 감독기관을 존중한 전략도 유효했다. KB국민은행이 프라삭을 인수할 당시 프라삭의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주요 경영진과 여러 부서장은 모두 캄보디아 현지인이었다. KB국민은행은 인수 후에도 주요 경영진을 현지인으로 유지했다. 김 부대표는 “이들이 캄보디아 문화와 프라삭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프라삭을 인수한 KD국민은행처럼 KB국민카드도 캄보디아에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2018년 캄보디아에서 ‘the smallest(가장 크기가 작은)’ 은행이라고 소문난 토마토특수은행을 인수해 KD대한 특수은행(KDSB)을 출범했다. 특수은행은 여신 업무만 가능한 은행이다.
당시 이상인 KDSB 법인장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상품을 캄보디아에 판매하느냐였다. 이 법인장은 캄보디아에서 자동차 대출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의 깊게 봤다. 주변인들은 “자동차 시장 규모가 작은 캄보디아에서 자동차 대출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아 경고했다.
하지만 이 법인장의 생각은 달랐다. 자동차를 특히나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캄보디아에서 자동차 시장의 확장성이 리스크보다 더 커 보였다. 주로 부유층들이 자동차를 타는 만큼, 상위 고객(high class)을 대상으로 고품질(high quality) 대출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 법인장은 KDSB를 캄보디아 금융권의 애플과 스타벅스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the smallest’였던 KDSB는 고객 확보를 위해 프놈펜 내 모든 쇼룸에 영업직원을 파견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쇼핑몰 입구에서 자동차 전시회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KDSB 직원들은 쇼룸에서 딜러들과 계속해서 접촉하며 친분을 쌓았다. 때때론 바쁜 딜러를 대신해 영업직원이 고객 상담이나 자동차 구매를 도와주기도 했다. 딜러와 신뢰를 쌓으니, 자연스레 딜러는 자동차를 사려는 고객을 KDSB에 소개했다.
이 법인장은 “KDSB는 설립 당시부터 자동차 할부금융을 위한 전문 금융사로 모든 운영 전략과 조직 구조를 집중적으로 구성했다”며 “자동차 회사에 중요한 것은 차량판매 실적이기에 자동차 판매 실적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 생각해 딜러와의 신뢰를 쌓는 데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KDSB는 현재 캄보디아 내 특수은행 업계에서 1위다. 특수은행은 여신 업무만 할 수 있는 은행인데, KDSB는 자동차 대출 시장점유율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성장세는 매우 가팔랐다. 2018년 당시 직원 19명으로 시작했던 KDSB는 올 연말이면 직원 수가 400명으로 늘어난다. 52억1600만원이던 대출자산은 4000억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KDSB는 출범 4년 만에 상업은행 수준의 자본금과 프놈펜에 5개의 본지점을 운영하게 됐다.
국내 금융이 캄보디아에서 대출 사업을 하는 데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캄보디아는 미국 달러화 대출이 가능해 주변국에 비해 외환 리스크가 적다. 소상공인 대출 수요가 많은 데다 집단 대출이 주류를 이루면서 연체율이 0.5% 미만으로 낮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신 연평균 성장률 역시 2010년 이후 연 30.5%에 이른다. 반면 국가 신용도가 낮아 선진국보다 소액대출 이자율이 높은 측면이 있다. 안정적인 대출 사업을 위해서는 건전성 관리와 고객의 정확한 신용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KB금융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현장 중심 관리 체계를 강조했다. 김 부대표는 “프라삭은 160명가량 현장 심사역이 전국 점포를 다니면서 고객의 사업장과 담보 물건지를 방문해 신용평가와 대출심사를 하고 있다”며 “초기에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비치기도 했으나, 최근 코로나19와 물가상승 등 경제위기가 커지면서 신뢰를 바탕으로 흔들리지 않는 현장 중심 관리 체계가 재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KB금융은 정확한 고객 신용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현지 신용정보회사(CB)사와 함께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다. 김 부대표는 “캄보디아는 CB사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아직 고객의 다양한 신용 관련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없다”며 “지방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프라삭의 경우 해당 지역에 기반을 둔 영업직원이 고객의 사업 현황, 평판 등을 추가로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캄보디아의 성장가능성은 크다고 KB는 판단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올해 캄보디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5%에서 4.8%로 상향 조정돼 동남아 지역에서 베트남에 이어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까지 캄보디아 경제성장률이 6.9%로 아세안국가 중 가장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캄보디아 금융회사 대부분이 해외 금융회사가 차지하고 있어 외국계 은행에 대한 배타적인 시각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도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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