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전성기, 명과 암 [2022 결산]

정유진 기자 장아름 기자 2022. 12.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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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송강호 수상·범죄도시2 천만…그리고 생각해볼 문제는
박찬욱 감독(왼쪽)과 배우 송강호/뉴스1 ⓒ News1 DB

(서울=뉴스1) 정유진 장아름 기자 =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계는 유례없던 암흑기를 맞이했다. 2019년까지 호황을 누리던 한국 영화산업은 2020년 코로나19의 본격 확산 후 역대급으로 시장이 축소됐다. 2019년 2조5093억원을 기록했던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537억원, 2021년 1조239억원으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2020년 한국 영화시장 극장 매출액은 2019년 대비 73.3% 줄어든 5104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극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14.5%가 증가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 비해선 여전히 크게 적은 5845억원이었다.

2020년 2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까지 4관왕을 휩쓸어 세계 영화계 정상에서 수상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한국 영화계는 코로나19로 인해 시장 규모가 대폭 축소되는 등 예상 밖의 위기를 맞이했다. 비대면 시대에 접어들면서 극장가는 다중이 모인다는 공간의 특성으로 인해 타격을 피할 수밖에 없었고, 해가 거듭될수록 산업이 위축됐다.

극장 및 영화 관계자들은 이 같은 극장의 위기를 영화의 위기로 보고 우려를 토로하기도 했다. 영화 산업은 극장 매출이 새로운 영화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의 흥행이 다시 극장의 매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띠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극장의 실적 부진은 영화의 제작 및 배급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영화계는 2021년 12월 한국상영관협회와 극장사 등 영화 관련 단체들을 필두로 '영화업계 정부지원 호소 결의 대회'를 개최할 만큼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다행인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2022년 상반기부터 해제되면서 영화 시장이 조금씩 회복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올 상반기 극장 매출액은 4529억원으로, 2019년과 2020년 상반기 매출액보다 높은 수치를 달성했다. 특히 영화 '범죄도시2'가 오랜만에 1000만 영화에 등극하면서 5~6월 극장 매출액과 관객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 박찬욱·송강호 칸 수상…'기생충'이 끝은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한국 영화계의 대위기에도 해외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지난 5월 개최된 제75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송강호가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각각 받았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수상으로 제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올드보이), 제62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박쥐)에 이어 세 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특히 송강호는 국내 최초로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가 칸영화제에서 수상 영예를 안으면서, 한류는 또 한 번 대세의 흐름을 이어가게 됐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이정재의 '오징어 게임'으로 이룬 성공 속에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가 국제무대에서 한류 콘텐츠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로 재차 입증된 K무비의 저력으로 2020년대 한류가 주도할 콘텐츠 시장의 청사진을 그렸다.

두 사람의 수상의 의미에 대해 전찬일 평론가는 "한국영화가 사상 최초로 칸영화제에서 상을 두 개나 받았다, 이는 K무비가 이제까지 해외에서 받아온 ‘인정’도 넘어선 역사적 수상"이라며 "수상도 어렵지만 경쟁 부분에 이렇게 두 편이 후보로 오르는 것도 쉽지 않다, 이번 수상을 통해 한국 영화의 가능성은 한계가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평했다. 또한 202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보다 감독상 수상작인 '헤어질 결심'이 평단의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을 이유로 들며 "영화적 성취도가 차이가 나는 데다 박찬욱 감독에 송강호까지 둘이나 수상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2022년 칸영화제는 한국영화가 살린 셈"이라고 덧붙였다.

범죄도시2 포스터

◇ '범죄도시2' 코로나19 이후 첫 1000만…팬데믹 뚫은 웃음·액션의 힘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의 칸영화제 수상 낭보와 동시에 '범죄도시'가 개봉 초반부터 심상찮은 흥행세를 보여줬다. 지난 5월18일 개봉한 '범죄도시2'는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 분)와 금천서 강력반이 베트남 일대를 장악한 최강 빌런 강해상(손석구 분)을 잡기 위해 펼치는 통쾌한 범죄 소탕 작전을 담은 영화다. 지난 2017년 개봉해 약 68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을 거뒀던 '범죄도시'의 속편으로, 전편에 이어 마동석이 주연으로 나섰다.

'범죄도시2' 개봉 시기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극장 내 취식금지가 해제되며 코로나19로 억눌렸던 '보복소비' 심리가 폭발했던 시점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하던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극장가에 많은 관객들이 몰렸다. 이에 '범죄도시2'는 개봉 25일째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엔데믹 이후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고, 3편과 4편 제작 소식까지 연달아 전하며 후속작 제작 단계부터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범죄도시2' 흥행에는 거리두기 및 취식금지 해제 등 변화된 분위기도 상당 부분 영향을 끼쳤지만, 작품 자체가 소구한 장르와 캐릭터의 매력이 큰 흥행 요인이 됐다. 마동석이 연기한 마석도는 범죄자를 한 번에 때려잡는 '괴물 형사' 캐릭터로, 시그니처인 한방 액션으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주요 빌런들을 비롯한 범죄자들을 단숨에 제압해 날려 보내는 통쾌한 액션이 관객들을 열광하게 했고, 큰 덩치와 대비되는 귀여운 반전 매력이 웃음도 안겼다.

'범죄도시2'의 대박 흥행의 요인에 대해 전찬일 평론가는 "흥행 요인은 코로나19"라고 짚었다. 그는 "올해 여름 텐트폴 영화와 견줬을 때 영화적 완성도가 아쉬운데 그간 코로나19로 영화관에 가지 못했던 대중들이 이 작품으로 쏠렸다"고 전했다. 이어 "'탑건: 매버릭'과 '한산: 용의 출현'은 '범죄도시2'보다 잘 만든 대중영화이면서 영화적 성취도 큰 작품"이라며 "박찬욱, 송강호도 만족시키기 어렵다고 했던 한국 관객인데 '범죄도시2'가 이같은 영화보다 더 큰 흥행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19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양경미 평론가는 배우의 매력을 '범죄도시2'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양 평론가는 "코로나19와 관련한 거리두기가 풀릴 때 개봉해 시기적으로 좋았던 데다가 당시 주연 배우 중 한 명이었던 손석구가 TV 드라마에서 인기를 크게 얻고 있었던 때라 그의 매력이 관객들에게 소구된 점이 있었다"라며 "그러다 보니 N차 관람하는 관객들이 많았고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았다"고 분석했다.

외계+인 포스터

◇ 천만 없는 여름: 위기, 끝난 것은 아니다(1)

영화 '범죄도시2'의 천만 돌파와 박찬욱 감독, 송강호의 칸 영화제 수상이 한국 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기론'은 존재한다. 팬데믹 선언 후 영화관의 거리두기가 해제된 첫 성수기인 2022년 여름, CJ ENM과 롯데엔터테인먼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쇼박스 등 대형 배급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내놓았다. 특히 '타짜' '도둑들' 최동훈 감독의 기대작 '외계+인' 1부, 역대 박스오피스 1위인 영화 ‘명량’의 후속작 '한산: 용의 출현'(감독 김한민), '관상' '더킹'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 등이 올 여름 블록버스터 '빅4'로 여겨졌다. 먼저 축포를 쏘아올린 '범죄도시2' 덕분에 여름 시장에서 또 한 번의 천만 영화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호불호가 강하게 나뉘었던 ‘외계+인’ 1부는 불과 153만8518명(2022년 9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통합 전산망 기준)을 동원하는 데 그쳤으며 '비상선언'은 205만8760명, '헌트'는 434만8048명, '한산: 용의 출현'은 725만7575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700만명을 넘긴 ‘한산: 용의 출현’과 400만명을 돌파한 ‘헌트’가 흥행을 하긴 했지만, '명량' '베테랑' '괴물' '도둑들' '암살' '신과함께-인과 연' '택시운전사' '부산행' '해운대' 등 역대 천만 영화 상당수를 배출한 여름 시장임을 고려할 때는 아쉬운 성적이었다.

'범죄도시2'의 역대급 흥행과 대비되는 성수기 영화들의 기대보다 저조한 흥행 성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일각에서는 원인을 관객들의 달라진 티켓 소비 패턴에서 찾는다. 코로나19의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영화 티켓 가격이 상승하고 극장 영화의 대체재들은 늘어나고 있어 관객들의 극장 관람 영화 선택 기준이 더 좁아졌다는 것. 양경미 평론가는 "요즘엔 영화가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는 게 많다, OTT에 기존 작품들도 많이 나와 있고 최신 흥행작들도 한두 달이 지나면 금방 볼 수 있다, 거기다 티켓 가격까지 오르지 않았나"라며 "젊은 층 특히 10대나 20대에게는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30대 이후 세대들에게 그랬듯 특별한 행사로 여겨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패턴 변화 속에서는 '입소문'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조금이라도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보다는 보편적으로 '재밌다'고 평가되는 작품에 관객들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계속된다면 영화의 다양성에 위협이 될 수 있어 시장의 장기적 발전에는 리스크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양 평론가는 "기본적으로 성수기 '빅4'가 과거 나온 천만 영화들에 비해 이야기적으로 뛰어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재미가 없다는 애기가 나오면 예전에는 확인하려고 영화를 봤다, '왜 안 좋아? 괜찮을 것 같은데'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재미가 없다고 하면 거기에 시간과 비용을 더 들이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얼마든지 압축된 영상을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합리적으로 소비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은 그런 콘텐츠들을 보고 '재밌겠다'는 판단이 들고 나서야 극장에 가겠다는 결정을 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황동혁 감독/뉴스1 ⓒ News1 DB

◇ 배우·감독들의 OTT행: 위기, 끝난 것은 아니다(2)

최근 영화계 터줏대감들의 OTT 도전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수상한 그녀'와 '남한산성' 등으로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른 황동혁 감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공작'의 윤종빈 감독 역시 최근 넷플릭스 '수리남'으로 시리즈물에 도전해 호평 받았고, 영화 '차이나타운' '뺑반' 한준희 감독도 넷플릭스 시리즈 'D.P.'를 선보여 대박을 냈다. 배우 최민식은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카지노'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더불어 플랫폼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송강호도 최근 연기 인생 최초로 10부작 드라마 '삼식이 삼촌'에, 설경구도 드라마 '돌풍'에 출연을 결정했다.

전찬일 평론가는 OTT 산업과 영화 산업 간의 긴장 관계를 올해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전 평론가는 "OTT가 영화 산업에 이렇게 타격을 줄지 몰랐는데 부국제가 그걸 보여줬다, 영화제는 전통적인 영화들의 장이어야 하는데 화제가 됐던 건 OTT 드라마와 영화였다”며 “특정 영화 한편보다 OTT 드라마, 영화가 '핫'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일반 영화보다 이제 OTT 쪽 수요가 훨씬 많아졌다, 앞으로 극장에서는 극소수의 영화와 감독만 살아남을 것이다, 봉준호 박찬욱을 제외하고는 감독들이 흥행에 실패하면 그 흥행 기록이 남기 때문에 위상이 줄어들고 투자자를 휘청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경미 평론가의 생각도 비슷했다. 다만, 양 평론가는 "영화의 위기라고 본다"면서도 "영화든 OTT든 작품이 좋으면 된다, 영화여야만 하는 건 아니다, 소비의 형태가 OTT로 넘어가고 있으니 당연히 감독이나 배우들은 OTT로 넘어가서 작품을 찍을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보다 집에서 영상물을 보는 것으로 관람 문화가 계속 바뀌어갈 것"이라며 "영화관은 특별히 기술적이고 시각적으로 효과적인 작품을 보는 공간이 되어갈 것이고, 코로나19로 인해 그런 방향으로 더 빠르게 진전됐다"라고 밝혔다.

◇ 전성기 한국 영화, '웰 에이징' 하려면

내부적으로는 '위기론'이 늘 존재하지만 한국 영화는 긴 관점 및 글로벌 시각에서 본다면 지금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 영화와 감독, 배우들이 전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시대다.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영화 역사상 해외에서 이렇게 대접받는 것은 처음이다, 칸, 토론토 등 올해 내가 참석한 영화제에서 만난 해외 영화인들이 온통 K-무비 칭찬 일색이었다"라며 "앞으로 영진위에 최대 과제는 이 현상을 지속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호기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영화발전기금 확충이 절실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영화발전기금은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여러 종류의 진흥 사업에 쓰인다.

더불어 전문가들은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탄생한 작가주의 감독들인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등의 뒤를 잇는 새로운 세대의 감독이 등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 영화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이것이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 영화 시장의 경우 감독이 시나리오까지 써야하는 '작가주의적' 마인드가 팽배한데, 이것이 오히려 산업적 측면에서는 스토리의 다양한 발전을 막아 소재 고갈의 문제로 직결된다는 지적이다.

양경미 평론가는 "시나리오 작가 군을 조금 더 길러 작가에게 투자하면 스토리가 좋아지게 되고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영화의 질적 저변이 넓어질 것"이라며 "현 영화 시장의 경우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투자가 적기 때문에 좋은 작가 인력이 드라마에 더 많이 몰리게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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