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 英어촌, 해상풍력으로 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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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서 북쪽 해안으로 300㎞쯤 달려 가면 한때 유럽 최대 어항이었던 그림즈비 항구가 나온다. 지난달 10일 찾은 이곳에는 고기잡이배나 생선 창고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3층 건물 높이의 붉은 선박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길이 82m, 갑판 높이 7.3m 규모의 이 배는 덴마크 해상풍력기업 오스테드(Ørsted)의 발전기 보수 전용선. 이날 세계 최대 해상 풍력 발전 단지인 ‘혼시(Hornsea)’로 한 달에 두 번 있는 정기 점검을 가기 위해 정박 중이었다.
◇바닷바람으로 에너지·지역경제 ‘두 마리 토끼’
영국 동해안에 위치한 그림즈비는 유럽 대표 어종인 대구가 가장 많이 잡히는 부자 어촌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영국이 아이슬란드와 대구 조업권을 놓고 다툰 ‘대구 전쟁(Cod War)’에서 영국이 물러서며 조업량에 제한이 생겼고, 그림즈비는 이후 30여 년간 쇠락기에 접어들었다. 그나마 항구 물동량을 책임져주던 석탄·철강 산업까지 쇠퇴하면서 2010년대 초반 그림즈비가 있는 험버 지역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실업률이 높고 가난한 지역 중 하나가 돼 버렸다. 그랬던 이 지역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한 건 지난 2014년, 항구에서 88㎞ 떨어진 바다 위에 풍력 발전 단지가 들어오게 되면서다.
20여 년 전부터 영국 정부는 그림즈비처럼 주력 산업이 기울며 침체된 항구 도시를 거점으로 해상 풍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림즈비 이웃 항구 도시인 헐(Hull)에는 터빈과 블레이드 등 부품을 생산·조립해 풍력 발전기를 만드는 제조 공장을 유치했다. 그림즈비 항구는 조성된 발전소를 모니터링하고 각종 장비와 인력을 실어나르는 운영 기지로 낙점됐다. 이후 그림즈비엔 2000여 개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지난 8월 영국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그림즈비와 헐이 속한 험버 지역은 지난해 대비 고용률이 영국에서 가장 크게 늘었고, 비(非)경제활동률은 가장 많이 줄었다. 그림즈비에서 나고 자랐다는 루이스 톰슨 오스테드 광고담당자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버려진 생선 창고와 폐허가 된 수산시장이 즐비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영국 최대 해상 풍력 운영 기지가 됐다”고 했다. 오스테드는 800만파운드(약 128억원)의 복리후생 기금을 만들어 주민들 복지에 쓰고 있다.
◇입지 발굴부터 주민 협의까지 정부가 지원
영국 북해 연안은 연평균 초속 9m(상공 80m 기준)가 넘는 강한 바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불고, 수심이 얕아 발전기 설치 비용이 적게 들어 풍력 발전을 위한 최적 입지다. 영국은 이런 이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20여 년 전부터 해상 풍력 발전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정부가 에너지믹스(전원 구성)에 따른 해상 풍력 설치 목표를 세우고, 입지를 지정해 몇 년에 한 번씩 공모 입찰을 진행한다. 우리나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신도시 개발 부지를 발굴한 뒤 사업자를 공모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스코틀랜드 해양수산부(마린 스코틀랜드)의 드루 밀른 해양공간계획 담당자는 “바람의 세기나 방향 등이 풍력 발전에 적합하고 내륙 송전망 연결이 쉬운 지역 가운데 주요 어장이나 항로와 겹치지 않는 곳을 따져 ‘해상 풍력 입지 지도’를 만든다”고 했다. 해상 풍력 개발사와 어업 단체가 참여하는 법정 위원회를 두고, 인근 지역과 보상 협의도 정부가 중재한다.
그 결과 영국은 세계 해상 풍력 선도국으로 우뚝 섰다. 전 세계 해상 풍력 설비 용량(54.9GW)의 4분의 1인 13.6GW가 영국에 몰려 있다. 여기에서 영국 전체 전력 생산량의 약 13%가 만들어진다. 영국 바다 위 터빈이 지난해 생산한 36.6TWh의 전기는 영국 전체 가구의 3분의 1인 930만여 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규모다. 영국은 앞으로 해상 풍력 설치 속도를 끌어올려 2030년까지 지금의 4배인 50GW까지 확대하는 게 목표다. 이 계획대로 된다면 계산상으로는 바닷바람으로만 모든 영국 가정에서 쓰는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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