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소한 안전 문제도 인명이 희생돼야 챙기는 한국의 고질병
경기도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 터널 화재로 사망자 5명 등 4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트럭에서 일어난 불길이 방음 터널의 플라스틱 방음판에 옮겨붙으면서 희생이 커졌다고 한다. 800m에 이르는 터널이 순식간에 고온 가스실로 변한 것이다. 산이나 땅 밑을 뚫은 일반 터널과 달리 방음 터널은 인근 주민의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해 도로에 방음판 돔을 씌워 만든 시설이다. 따라서 터널 화재에 대비한 안전 시설 의무화 등 법 적용을 받지 않아 그동안 대형 사고의 위험성이 제기돼 왔다.
사고가 난 방음 터널의 방음판 자재로 사용된 투명 플라스틱(PMMA)은 강화 유리와 비슷한 투명도와 뛰어난 가공 능력, 특히 저렴한 가격 때문에 초기에 만들어진 방음 터널에 많이 사용됐다고 한다. 반면 화재 안전성은 강화 유리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도로교통연구원은 2018년 보고서에서 PMMA가 다른 재료에 비해 가장 빨리 불에 녹아 떨어지고 불이 전체로 확산되면 터널 온도가 급상승한다는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불덩어리가 비처럼 떨어져 내리면서 순식간에 불구덩이가 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같은 사고가 일어난 적이 이미 있다. 2020년 8월 경기도 광교신도시 하동IC 고가도로 방음 터널 안에서 차량 화재가 발생해 터널 50m가 전소됐다. 하지만 인명 피해가 없어 사회 문제가 되지 않자 사고 터널만 보수하고 대충 넘어갔다. 한 해 도로 예산을 8조원 쓰면서 방음판 비용을 아낀다고 전국 50여 개 방음 터널을 위험에 방치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에야 방음 시설의 화재 안전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고 한다. 전국 방음 터널 중 화재에 취약한 방음재를 사용한 곳이 몇 곳인지조차 몰랐다. 2012년 도로설계편람을 개정할 때는 있던 방음벽 화재 안전 규정도 삭제했다고 한다. 사고 터널 관리 책임은 민자고속도로 회사에 있지만 전문가 경고와 실제 사고에도 불구하고 법 규정을 정비하지 않은 국토부의 나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국토부는 30일 “화재 진압, 대피 곤란 교통 시설 1953곳에 대한 긴급 점검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세월호, 핼러윈 참사 등에서 드러난 대형 사고의 문제만이 아니다. 가연성 건물 외장재, 닫힌 비상구, 소방 시설 미비, 방음판 안전 기준 부재 등 사소한 안전 문제조차 한국에선 인명 피해가 일어난 뒤에야 손질한다.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라고 해도 심한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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