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연금이 지금 정치에 정신 팔고 있나

조선일보 2022. 12. 31.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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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이 지난 5일 취임 100일 기자 간담회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뉴스1

KT 이사회가 현 대표이사의 연임을 결정하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전 정부 기간 중에 선임됐다는 이유로 현 대표를 밀어내는 데 국민연금이 동원된 것이다.

국민연금이 기업에 개입할 명분은 경영이 잘못돼 적자가 나거나 주가가 떨어져 연금 수익에 손해가 발생했을 때다. 그런데 지난 3년 사이 KT 영업 이익은 41% 증가했고, 인공지능·데이터·클라우드 등의 신사업 다각화를 이뤘다. 콘텐츠 분야에도 진출했고, 무엇보다 KT의 시가 총액이 3년 새 90%나 불어났다. 투자 기업의 주식 가치가 올라가야 이익인 국민연금 입장에선 손해가 없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경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절차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KT 정관엔 기존 CEO가 연임할 경우엔 단독 후보로 추천할 수 있도록 규정돼있다. 2017년 당시 회장이 단독 후보로 추천돼 연임됐을 때도 국민연금은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정부다. 2019년 대한항공 회장을 억지로 물러나게 하고, 한전공대 설립안을 지지했다. 정권 코드에 맞춰 의결권을 휘두른 것이다.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면서 등장한 새 정부도 국민연금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KT처럼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 구조가 문제되는 것은 사실이다. 금융 지주회사 등에선 ‘사유화’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KT 이사회 물갈이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에 왜 국민연금이 나서나.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오로지 온 국민의 노후 자산 수익률 제고에 도움 되느냐의 투자 관점만으로 결정돼야 한다. 특히 지금은 국민에게 부담을 더 지울 국민연금 개혁이 논의되는 시기다. 국민연금 운영진은 투자 성과를 올리는 데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간부들이 정치에 정신을 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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