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문앞에 떨어져 있네요” 봉투 주고 사라진 50대
500만원과 “노숙인들에 써주세요” 편지
CCTV 보니 봉투 주인은 바로 그 사람
지난 29일 오전 6시 40분쯤 새벽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서울 중구 서울역파출소 앞. 귀마개를 쓰고 회색 잠바를 입은 한 남성이 파출소 문을 ‘똑똑’ 두드렸다. 50대쯤으로 보이는 그는 경찰관이 인기척을 느끼고 밖으로 나오자, “파출소 앞에 봉투가 하나 떨어져 있다”면서 ‘서울역파출소장님 귀하’라고 적힌 황토색 서류봉투를 건네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파출소 직원이 그에게 인적사항과 연락처 등을 2~3번 가량 물었지만 이 남성은 알려주길 한사코 거부하며 돌아갔다.
봉투 안에는 5만원권 100장과 흰색 A4용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종이에는 ‘서울역 파출소장님께. 강추위에 연일 수고 많으십니다. 이 돈은 서울역 노숙자분들을 위해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놀란 파출소 직원들이 CCTV를 확인해보니 돈이 든 봉투를 가져온 것은 바로 이 남성이었다. CCTV에는 그가 봉투를 들었다 바닥에 놓았다가 하면서 파출소 앞에서 한참 서성이는 모습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봉투를 바닥에 내려놨다가 다시 집어 들기도 하면서, 파출소 앞에 봉투를 놓고 그냥 가도 괜찮을까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파출소 측은 전했다.
서울역파출소에서 3년째 노숙인 전담 경찰관으로 일하고 있는 박아론 경위(39)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며칠 전에 우연히 마주친 ‘그 분’이 아닐까 혼자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역을 순찰하며 노숙인들을 살피던 박 경위에게 한 남성이 말을 걸어왔는데, 모자와 마스크를 쓴, 50대로 보이는 남성이 박 경위에게 다가와 “자신이 1년 동안 열심히 모은 돈이 있는데, 경찰이 이걸 어려운 분들을 위해 써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박 경위는 “서울역 노숙인들을 보살피는 우리 파출소라면 돈을 제대로 써줄 거라 믿고 맡기신 것 같다”고 했다.
경찰서나 경찰 등은 기부나 후원 목적이라고 해도 금품을 받는 게 금지돼 있다고 한다. 서울역파출소는 서울역에 있는 노숙인 지원 시설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 이 돈을 전달하기로 했다. 박 경위는 “좋은 마음으로 보내주신 기부금이 그 마음 그대로 서울역 노숙인분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다는 소식이 익명의 기부자에게 꼭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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