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언제나 뜨거웠던 펠레처럼

김태훈 논설위원 2022. 12. 31. 03: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펠레의 본명은 이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다. 발명왕 에디슨처럼 되라며 아버지가 지어줬다. 펠레는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다. 펠레라는 애칭도 아버지 아닌 남이 지어주었다는 이유로 처음엔 싫어했다. 1950년 월드컵이 브라질에서 열렸다. 결승전에서 브라질이 우루과이에 충격패 하자 라디오 중계를 듣던 아버지가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의 눈물을 그때 처음 봤다고 했다. 열 살 소년은 아버지를 위로했다. “울지 마세요. 제가 월드컵에서 우승할게요.”

/일러스트=박상훈

▶펠레의 기술은 지금 다시 봐도 놀랍다. 펠레는 온몸으로 드리블한다. 백힐 패스, 노룩 패스, 수비수 머리 위로 공을 차올려 넘긴 뒤 낙하 지점을 먼저 차지해 슛을 쏘는 ‘사포’를 그때 이미 선보였다. 173㎝ 작은 키로 1m 넘게 점프해 헤딩슛도 꽂았다. 상대 수비수는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과 맞선 느낌”이라고 했다. 혼자서 7명을 잇달아 제치고 골을 넣은 적도 있다. 펠레가 출전하는 경기장은 늘 열광한 관중이 쏜 공포탄 화약 연기로 자욱했다.

▶펠레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세계 최고 미드필더는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접니다”라고 했다. “그럼 최고 윙어는 누구냐?” 물으면 “그것도 접니다”라고 했다. 축구 잘하는 비결을 물으면 “상대보다 딱 0.5초 빠르면 된다”고 했다. 그런 그가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한 것이 맨발이었다. 단 한 번 맨발을 공개한 적이 있다. 발바닥은 물론이고 발가락 마디까지 굳은살이 박인 상처투성이 발이었다. 발톱은 거의 다 닳았다. 혹독한 연습의 흔적이었다.

▶펠레가 경기장에서 맞선 상대는 선수만이 아니었다. 그는 국민의 기대와도 싸워 이겨야 했다.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 그는 월드컵 3회 우승을 달성했다. 한 사람의 3회 우승은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대회 전 기자가 “우리가 우승하나요?”라 물으면 “신이 허락한다면요”라고 대답했다. 극성 팬들은 “우승한다고 해라. 우승하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펠레는 “우승으로 내가 얻는 최고의 상은 트로피가 아니라 안심”이라고 했다.

▶펠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축구 선수는 뜨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펠레가 별세했다. 그는 고관절 수술과 대장암으로 두어 해 전부터 휠체어 신세를 졌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펠레’ 편엔 옛 동료들을 만난 펠레가 “손기술을 보여준다”며 휠체어를 조종하는 장면이 나온다. 휠체어에서도 그는 가슴이 뜨거워 보였다. 새해 우리의 눈앞에 떠오르는 태양도 이렇게 뜨거웠으면 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