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전례없는 전쟁범죄 도운 이것

이지훈 기자 2022. 12. 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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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을 연구하는 수많은 역사가에겐 공통점이 있다.

저자는 그간 충분히 언급되지 않았던 관점으로 나치 독일과 히틀러를 분석한다.

나치는 독일군에게 고통을 줄여주고 정신을 각성시키는 효과가 있는 페르비틴을 배급했다.

언론인 출신인 저자는 지인으로부터 나치들이 약물에 절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껴 취재를 시작해 5년 동안 독일, 미국 기록물 보관소를 샅샅이 뒤져 이 책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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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노르만 올러 지음·박종대 옮김/393쪽·2만2000원·열린책들
나치 독일을 연구하는 수많은 역사가에겐 공통점이 있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의 악마적 면모를 해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간 충분히 언급되지 않았던 관점으로 나치 독일과 히틀러를 분석한다. 나치와 히틀러가 모르핀, 코카인 등 마약성 약물을 통치 도구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19세기 초 필로폰이라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이 주성분인 페르비틴이 출시됐다. 나치는 독일군에게 고통을 줄여주고 정신을 각성시키는 효과가 있는 페르비틴을 배급했다. 페르비틴을 복용한 독일군은 밤낮없이 진군했고 망설임 없이 적진으로 돌격했으며 지나는 곳은 가차 없이 밀어버렸다. 마약이 만든 전례 없는 잔혹한 군대였다.

역설적이게도 같은 시기 나치는 독일 국민에게 마약 복용을 금지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나치가 만들어낸 환상적 세계가 아닌 다른 비현실적인 체험은 허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흠결 없는 독재자로 군림해야 했던 히틀러는 욕망을 엄격히 절제하는 금욕주의자로 선전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히틀러는 마약 중독자였다. 전쟁 초기 동물성 호르몬제와 스테로이드를 투약받던 히틀러는 1944년 후반부턴 코카인, 모르핀 효과의 2배에 달하는 오이코달에 중독됐다고 한다.

저자는 아리아인의 순혈을 강조하며 대외적으로 마약 퇴치 운동을 펼쳤으나 내부에선 온갖 마약성 약물을 활용한 나치 독일의 위선을 보여준다. 언론인 출신인 저자는 지인으로부터 나치들이 약물에 절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껴 취재를 시작해 5년 동안 독일, 미국 기록물 보관소를 샅샅이 뒤져 이 책을 완성했다.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 한스 몸젠은 “제2차 세계대전에 책임이 있는 독일 지도부의 속살을 이렇게 가차 없이 폭로한 것은 위대한 업적”이라며 “이 책은 역사의 전체 그림을 바꿨다”고 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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