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청년 목수가 말하는 진짜 ‘노가다판’ 이야기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2022. 12. 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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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가라사대

노가다 가사라대

목수 송주홍의 책 ‘노가다 가라사대’를 읽게 된 것은 최근에 ‘노동 에세이’로 분류할 수 있는 에세이집에 대해서 좀 이해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노동은 분명 노동인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노동자’라는 단어로 이해하는 노동조합과는 좀 다른 범주의 노동에 관한 이야기다. 아파트를 만드는 사람들, ‘목수’로 대표되는 공정(工程)은 있지만 공장은 없는 세계, 그야말로 매일매일 어디로 출근할지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저자의 전작 ‘노가다 칸타빌레’를 먼저 읽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 책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었다. 농업과 마찬가지로 아파트 건설 분야에서도 고령화가 한참 진행 중인가 보다. “그래서 노가다판에 어린 친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책 앞부분의 고백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

영화 ‘터미널’(2004)에는 공항에서 오갈 데 없게 된 톰 행크스가 우연히 미장이 일을 하게 되고, 그 돈으로 휴고 보스 정장을 사 입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에선 “시간당 임금을 비교해보니 뉴욕 공항 국장보다 높은 임금”이라는 대사가 있다. 관급 공사에서는 건설 노동자들이 교사 수준 임금을 받게 한 적정 임금제라는 미국 특유의 제도 때문이다. 물론 미국 얘기다. 전국적으로 하루에 1.27명이 공사 현장에서 사망하는 한국엔 이런 제도가 없다. 정부는 무얼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어내려 갔다.

선임 목수 얘기를 하면서 “내 줄자로 치수 재서 내가 히로시(눈금 표시)한 것만 믿는다”는 구절을 볼 때는 요즘의 내 삶이 떠올라서 울컥하기도 했다. 자신이 결정한 것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인생관에 대한 얘기인데,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이 버티고 있으니까 한국의 아파트가 무너지지 않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반면 나는 내가 내린 선택들을 감당하기가 요즘 너무 어렵다.

책 구석구석엔 치질이 심해져 병원에 갔던 에피소드 등 블랙코미디와 리얼리티 사이에서 발생하는 유머가 심어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 지키고 싶은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뒤로 갈수록 삶의 의미를 찾게 된 어느 청춘의 감동적인 얘기가 있다. 소주 이미지로 대변되는 ‘건설 노가다’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고상한 와인 세계 건너편의 모습을 잠시 들여다볼 수 있다. 더 독한 술이 맛있어지거나 아니면 와인이 맛있어지거나, 어쨌든 영혼이 조금 더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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