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것과 농담과 글쓰기의 힘… 그렇게 또 하루를 견딘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2. 12. 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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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 김영민의 문장 속을거닐다]
조선후기 지식인 이덕무의 편지
그들의 ‘달콤한 연대’에 관하여

“나란 녀석이 단것을 밝히는 것은 마치 오랑우탄이 술을 밝히고, 긴팔원숭이가 과일을 밝히는 것과도 같소. 그래서 내 동지들은 단것을 보면 내 생각하고, 단것이 있으면 내게 줍디다. 박제가만큼은 그러지 않았소. 세 번이나 단것을 얻고서 나를 생각하지도 않고, 그 단것을 내게 주지도 않았소. 간혹 다른 사람이 내게 준 단것을 훔쳐 먹기까지 했소. 친구의 의리란 잘못이 있으면 깨우치는 것이오. 당신이 박제가를 심하게 질책하여주기 바라오(鄙人之於甘也, 如猩猩之於酒也, 蝯之於菓也. 凡吾同志, 見甘則思之, 有甘則貽之. 楚亭乃忍, 三度當甘, 不惟不思不貽, 有時而偷吃他人遣我之甘. 朋友之義有過則規, 願足下深責楚亭. 與李洛瑞九書).”

미국 화가 존 F. 프랜시스(1808~1886)가 신선한 딸기와 크림 등을 그린 ‘디저트 정물’(1855). /위키피디아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칼럼 기고뿐 아니라 여러 일을 하시는 것 같은데, 그 시간이 다 어디서 나세요? 내 대답은 한결같다. “또래 중년 남성들이 하는 많은 일을 아예 하지 않거나 조금만 합니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지도 않고, 운전도 하지 않고, 골프를 치지도 않고, 조기 축구회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고, 동창회에도 나가지 않고, 경조사도 최소한 참석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과연 저래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쩌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 술이라도 두어잔 마신 날에는, 집에 돌아와 지친 목소리로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한 달 치 사회성을 오늘 하루에 다 써버렸군. 이번 달에는 아무 약속도 잡지 말아야겠어.” 이런 식으로 일상을 살 수 있는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술 한잔 하고 가자”라고 권할 때, “술 대신 요플레 먹자”고 대꾸하면,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곁을 떠나간다. 누군가 “등산 가자”고 권할 때, “등산 대신 독립영화 보러가자”고 대꾸하면, 그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내 곁을 떠나간다. 한때나마 다들 한국소설, 독립영화, 만화를 즐기던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어느덧 사람들은 그것들 대신 등산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철인 삼종 경기에 취미를 붙인다.

이 고적한 삶에도 적극적인 네트워킹 분야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디저트를 매개로 한 만남이다. 달콤한 디저트를 앞에 놓고 유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선뜻 한 달 치 사회성을 소모할 용의가 있다. 나는 그러한 만남을 ‘달콤한 연대(sweet solidarity)’라고 부른다. 그 어떤 중앙의 컨트롤 타워도 없는 순수한 점조직. 이 달콤한 연대는 나날이 발전하여, 이제 나는 직접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들과도 교분을 쌓게 되었다. 설렘을 안고 디저트 가게에 찾아가면, 주인장이 반겨준다. “아이고, 중년 남성분이 단거 먹겠다고 혼자 멀리서 오는 경우는 드문데….” 그리고 국내외의 디저트 가게 정보를 교환한다.

나는 비교적 단순한 구운 과자류에서 무스를 사용한 꽤 정교한 케이크까지 다양한 디저트를 즐긴다. 그러나 그 수많은 양과자보다 더 좋아하는 디저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홍시다. 잘 익은 홍시를 한입 베어 물 때, 나는 천국에 다녀오곤 한다. 특별히 잘한 일도 없는데, 잠시 천국에 다녀온다. 그만큼 홍시를 좋아한다. 홍시는 내 애완 과일이다. 당신을 홍시만큼 좋아해, 라고 말하면 그것은 당신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말이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했던 조선 후기의 지식인 이덕무(李德懋)도 나만큼이나 감을 좋아했던 것 같다. 누가 감을 보내주면, 감 한 개 먹을 때마다 당신을 떠올리겠다던 이덕무, 서얼 출신 이덕무는 뜻이 통한다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교유했다. 그의 친구들이 나눈 각별한 우정은 편지글에 잘 드러나 있다. “박제가만큼은 그러지 않았소. 세 번이나 단것을 얻고서 나를 생각하지도 않고, 그 단것을 내개 주지도 않았소. 간혹 다른 사람이 내게 준 단것을 훔쳐 먹기까지 했소.” 이런 대목을 보면, 이덕무의 친구들은 지식을 나누는 배움의 연대일 뿐 아니라, 단것을 나누어 먹는 ‘달콤한 연대’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책 읽기에 몰두하면, 얼마나 많은 열량이 소모되는가. 게다가 이덕무는 오랑우탄이 술을 좋아하듯이, 단것을 좋아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박제가는 매정하게 단것을 독식했다. 무려 세번씩이나! 이에 이덕무는 박제가의 잘못을 정교하게 분석하는 것으로 복수한다. 첫째 잘못은 단것을 나누어 먹지 않은 것이다. 둘째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셋째는 뺏어 먹기까지 해 놓고 나누어주지 않은 것이다.

이런 어린애 같은 에피소드를 버젓이 편지에 썼을 뿐 아니라, 추후에 공식 문집에 포함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단, 글에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심정이 담겨야 한다는 이덕무 특유의 글쓰기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덕무의 친구들이 도시에 밀집해서 살았기 때문에 이런 빈번한 교유가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한양은 최신 외국 서적을 구하기 좋은 장소였고, 이덕무의 친구들은 새로 구한 서적을 통해 더 넓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축적했고, 실제로 청나라에 직접 다녀오기도 했다.

그들이 구해 읽은 책 중에는 짧은 잡지식을 모은 백과사전류도 포함되었다. 잡지식에 점점 더 노출된 지식인들은 예전보다 더 자주 짧은 일기와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 일기와 편지에는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고담준론(高談峻論)뿐 아니라 소소한 일상도 많이 담기기 시작한다. 그 전 시대 사람들이라고 일상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이 시대가 되면, 전에는 굳이 적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소소한 사안까지 일기나 편지에 좀 더 적극적으로 적는다.

그 시대 식자층은 대개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간, 즉 성인이 되기를 갈망했다. 속마음이야 잘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대다수가 지극한 자아 수양을 통해 완벽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부르짖던 시대였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누가 진짜 성인이 될 수 있겠는가. 성인이 되지 못해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낙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은 단것과 농담과 글쓰기의 힘을 빌려 또 하루를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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