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책꽂이] 방송인 유정아의 ‘시간의 깊이를 알려주는 책 5′
방송인으로 ‘열린 음악회’ ‘한낮의 음악실’ 등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맡았다. 클래식 에세이 ‘마주침’(문학동네)과 소통의 기술을 안내한 ‘당신의 말이 당신을 말한다’(쌤앤파커스) 등을 펴냈다. 최근엔 남성과 여성의 공존과 화해에 관한 산문집 ‘언젠가 너였던 나’(마음의숲)를 쓴 그가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책’ 5권을 추천했다.
얼마 전 이집트 여행에서 인류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그들의 것’이라는 느낌만을 받았던 숱하게 아름다운 유럽의 문화유산과 달리 이집트의 압도적인 유산 앞에서는 ‘인류’라는 우리 의식이 발동된 이유를, 나는 ‘시간’에서 찾았다. 유럽의 유산들보다 몇천년 앞선 인간 자취와 흔적의 시원(始原)을 마주하니 여기에선 ‘너’와 ‘나’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책 안에도 시간이 들어 있다. ‘시간’이라는 단어만큼 관련 서적을 찾는 게 쉬운 경우가 또 있을까.
이탈리아 출신으로 현재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학문 활동을 하는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인간의 시간 속에 있지 않은 우주와 인간이 편의로 정해놓은 시간의 개념을 이야기한다. 물리학자의 글이 한 편의 시와 같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세밑의 우리는 시간이 유유히 흐르기를 바라는가, 다른 개념의 시공간이 펼쳐지기를 고대하는가.
또 다른 기쁨은 벨기에 태생의 20세기 소설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18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2세기의 로마 5현제 중 한중간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되어 세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쓴 회상록을 읽을 때 폭발한다. 건너가는 것은 세월만이 아니다. 성(性), 고결과 세속, 평화와 전쟁... 나는 이번에 낸 산문집 ‘언젠가 너였던 나’에서 회상록의 구성과 태도를 공개 ’표절’한 글로 그에 대한 경외를 표했다.
카렌 암스트롱은 ‘탐욕이 경건한 의도와 아무 충돌 없이 뒤섞이는’ 역사 속 대부분의 국면들을 ‘축의 시대’와 ‘신의 전쟁’에서 충실하고도 냉철하게 정리했다. 참담하기 그지없는 시간들이지만, 이러한 역사 속으로의 여행을 여성 학자의 안내로 인도받아 떠나는 것이 한량 없이 기뻤다.
‘진리의 발견’은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여성들의 이면의 기록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간들의 에너지를 합하면 빅뱅에 버금갈 것이다.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는 시대와 국가와 이념 사이에 끼인 한 학자의 회고록이다. 곡절 끝에 오랜 세월 갇혀 있던 감옥의 시간에 그는 오히려 더욱 훌륭한 학자로 거듭났다. 92년 겨울 여의도 KBS문화센터에서 강의를 들으며, ‘예전에 정말 아랍과 우리가 교류했음에 틀림없어. 이렇게 깐수 선생이 철수처럼 생겼다니!’ 생각했었는데, 그는 실은 정수일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그 시간은 이집트 피라미드나 대홍수, 빙하 시대 등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시간이며, 카를로 로벨리에 의하면 ‘비교할 필요도 없는 시간’이자 고향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한 기나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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