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환은 이제 옛말… 결혼식장까지 접수한 ‘인생 네컷’ 대체 뭐길래?

남정미 기자 2022. 12. 3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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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20년전 ‘스티커 사진’의 귀환
즉석 포토 촬영기 인기 많네
결혼식장에 마련된 포토 부스에 선 신랑과 신부. 앞에 있는 기계를 통해 즉석에서 사진을 촬영하면 사진 세 컷과 간단한 문구가 함께 출력돼 나온다. /김나정씨 제공

요즘 MZ세대 결혼식엔 ‘이 기계’가 빠지지 않는다. 간단한 조명과 카메라, 거울이 설치된 즉석 사진 촬영 기계다. 기계 주변을 결혼식 특성에 맞게 하얀 배경과 꽃 장식 등으로 꾸며, 아예 ‘포토 부스’로 만들어 놓았다. 이를 통해 신랑·신부뿐 아니라 하객 누구나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찍은 사진은 과거 유행했던 ‘스티커 사진’처럼 즉석에서 바로 나온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즉석 사진기가 결혼식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인생 네 컷’ 등 보통 사진 네 컷이 실리는 기계와 달리 신랑·신부 이름, 날짜와 함께 사진 세 컷이 담겨 있어 ‘결혼식장의 인생 세 컷’이라고 불린다.

◇MZ들의 결혼식 방명록, 인생 세 컷

지난 11월 6일 결혼한 신부 김나정(32)씨도 결혼식장에 포토 부스를 만들었다. 김씨는 “보통 결혼식에선 하객분들께 해드릴 수 있는 게 음식 대접 정도인데, 포토 부스를 통해 사진이라는 또 하나의 선물을 드릴 수 있어 선택하게 됐다”며 “실제 많은 하객분이 포토 부스를 통해 사진을 남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고 한다. 설치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객들의 만족도도 크다. 최근 고등학교 동창 결혼식장에서 포토 부스를 통해 사진을 찍었다는 직장인 이모(35)씨는 “친구 결혼식에서 평소 자주 보기 어려운 동창생들을 만나 오랜만에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좋았다”며 “포토부스 인기에 다들 줄 서서 기다리기도 하고, 친구들 올 때마다 여러 번 찍기도 했다. 결혼식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대학원생 박모(29)씨도 “아무래도 결혼식장에 갈 땐 평소보다 좀 더 신경 써서 꾸미고 가지 않느냐”며 “평소엔 친구들과 결혼식 끝나고 따로 ‘인생 네 컷(즉석 사진 기계)’을 찍으러 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결혼식장에서 바로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 좋았다. 나도 결혼식장에 포토 부스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즉석 촬영 기계를 통해 사진을 촬영하면 사진 세 컷과 간단한 문구가 함께 출력돼 나온다. /김나정씨 제공

인화된 사진으로는 ‘포토 방명록’도 만들 수 있다. 한 번 촬영하면 사진 2장이 나오는데, 1장은 촬영자가 가지고, 나머지 1장은 간단한 축하 메시지와 함께 신랑·신부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신부 김나정씨는 “결혼식 당시에는 막상 정신이 없어서 하객들이 잘 있다 간 건지 걱정이 많았는데, 끝나고 포토 방명록을 보니 그날 왔던 분들의 밝은 표정과 따뜻한 메시지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더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우리 부부에게 그 무엇보다 의미 있는 선물이 됐다”고 했다.

◇일부 기업 복지혜택으로 제공하기도

포토 부스는 대개 신랑·신부가 직접 외부에서 기계를 대여 받아 설치한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 대여받는 데 대략 50만~60만원이 든다고 한다. 요즘엔 포토 부스 열풍이 불면서, 아예 기계를 자체적으로 구비하는 예식장도 있다. 부산 W 웨딩홀은 지난 4월부터 7개 지점에 즉석 사진 촬영 기계를 구입해 포토 부스를 설치했다. 이 웨딩홀 김기태 본부장은 “외부에서 기계를 대여받는 신랑·신부가 많아지면서 아예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예식장에 설치된 기계이니만큼 외부 대여보다 30~40%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고, 예식장 분위기와도 이질적이지 않아 예비 부부들의 만족도가 높다. 인기 지점의 경우 4쌍 중 1쌍이 선택한다”고 했다.

일부 기업은 아예 직원 복지 혜택으로 결혼식장에 포토 부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HD현대 건설기계 3사(현대제뉴인·현대두산인프라코어·현대건설기계)는 지난 10월부터 결혼을 하는 직원에게 화환과 포토 부스 중 한 가지를 복지 혜택으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 결혼한 직원 90% 이상이 화환 대신 포토 부스를 선택했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인생 네 컷’ 등 즉석 사진 촬영 기계의 인기에는 그 순간의 즐거운 감정을 사진으로 남기고, 이를 바로 출력해서 공유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고 본다”며 “요즘 젊은 세대를 디지털 세대라고는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찍어 사진을 공유하는 것과 출력된 사진을 서로 나눠서 손에 쥐는 건 또 다르다”고 했다. 이 교수는 “결혼식 역시 마찬가지”라며 “기존 결혼식에도 사진가가 있지만, 이 사진을 받으려면 최소 1~2주를 기다려야 한다. 결혼식의 감동을 그대로 담아 갖고 싶은 마음이 즉석 촬영 기계로 이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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