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불편한 진실] 문제는 ‘입시’가 아닌 ‘경쟁’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최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수능 폐지론자”라거나 “수능은 없어져야 마땅”하다는 등의 발언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얼핏 보면 전교조의 ‘수능 폐지’나 ‘수능 자격고사화’, 김누리 교수의 ‘대학입시 폐지’ 주장과 비슷해 보인다. 수능을 싫어하기로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는 것일까? 하지만 그의 인터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요한 개념이 하나 누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경쟁’이다.
한국의 교육경쟁은 왜 이렇게 치열한가? 고졸·대졸 임금격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한국의 대졸자 임금은 고졸자 임금보다 평균 40% 높은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격차인 59%보다 오히려 작은 편이다. 대학이 평준화된 독일이 60%, 프랑스가 57%, 핀란드가 47%로 한국보다 격차가 크다(OECD, Education at a Glance, 2022). ‘대학을 가지 않아도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야 입시지옥이 해소된다’는 식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얘기다.
고졸·대졸 임금격차보다 더 의미심장한 수치는 상위대학·하위대학 졸업자 간 임금격차이다. 한국의 4년제 대학을 5개 그룹으로 분류하면, 최상위 그룹 졸업자는 최하위 그룹 졸업자에 비해 취업 시 14.5% 높은 임금을 받고, 이 격차는 점차 벌어져 40~44세가 되면 46.5%가 된다. 고졸·대졸 임금격차 못지않은 차이가 출신대학 서열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이지영·고영선, ‘대학서열과 생애임금격차’, 2019).
이렇게 보면 상위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은 상당한 합리적 이유를 가진다. ‘보상의 격차’가 큰 만큼 ‘경쟁의 강도’가 높은 것이다. 1등에 100만원, 2등에 90만원, 3등에 80만원을 주는 시합과 1등에 100만원, 2등에 50만원, 3등에 20만원을 주는 시합을 비교해 보자. 당연히 후자가 더 치열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대입경쟁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단순한 금전적 보상이 아니다. 더욱 ‘좋은 교육’을 받게 해서 더욱 ‘높은 능력’을 갖춰주는 것에 가깝다. 즉 1·2·3등에 단순히 상금을 나눠주는 것이라기보다 1등은 태릉선수촌에 입촌시키고 2등은 구립훈련장에, 3등은 동네체육관에 등록시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대학별 재정투입의 격차이다. 서울대는 학생 1인당 연간 5300만원을 투입하고, 연세대는 3600만원, 성균관대는 2700만원, 중앙대는 1600만원을 투입한다(학생 1인당 교육비, 2022년 공시자료). 약간의 성적 차이로 인해 1년에 5300만원짜리 훈련을 받을 기회와 1600만원짜리 훈련을 받을 기회가 갈리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인해 대학에 입학할 때 나타났던 능력 차이는 대학을 졸업할 때 더욱 증폭되며, 이후 임금격차로 이어진다. 이는 블라인드 채용이 일으킬 수 있는 변화의 폭이 그리 크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교육의 질’을 돈으로 환산하는 나의 셈법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학 서열이 재정이 아니라 명성(후광 효과), 인맥(동문 네트워크), 지역(서울 선호) 등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강력한 반례가 존재한다. 1980년대 설립된 포항공대와 1990년대 설립된 한국예술종합학교다. 이들은 당시 신생 학교여서 명성도, 인맥도 미미했고 포항공대의 경우 비수도권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충분한 재정 투입에 힘입은 ‘질 높은 교육’을 인정받아 곧바로 최상위급 서열에 등극했다. 이러한 사례에 착안하면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아이디어도 허황된 것이 아니다.
2017~2019년에 벌어진 ‘대입 대논쟁’의 교훈은 무엇인가? 당시 학종파가 수능파(정시파)에 밀린 이유는 ‘경쟁’ 때문이다. 자기장이 강력할수록 자성체가 큰 힘을 받듯이, 엄청난 대학 간 격차로 인해 형성된 강력한 경쟁의 장(場)이 교육적 가치를 앞세워 도입된 정성평가 요소 및 비교과 영역을 즉시 타락시킨 것이다. 아울러 철인 5종 경기를 하던 아이들은 철인 10종 경기를 하게 되었다. ‘반칙’과 ‘부담’, 이것이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런데 교육계는 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계층상승 욕망, 학벌주의, 시험 이데올로기, 능력주의 등을 탓했다.
이런 면에서 당시 논쟁의 구도는 ‘진보 대 보수’가 아니라 ‘엘리트 대 대중’이었다. 진보 엘리트인 김상곤 전 장관은 경쟁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식은 있었다. 그런데 보수 엘리트인 이주호 장관은 여러 인터뷰에서 ‘경쟁’을 아예 거론하지 않는다. 특히 그의 대학정책은 격차를 더욱 키울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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