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분야 채용 늘겠죠? 선택 잘 했다” 학생들 신바람

신수민 2022. 12. 31. 01: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활기 찾은 울진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 르포
원마고 기계과 학생이 한 강판 제조업체에서 동력제어반 현장실습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원마고]
“원자력 분야 채용이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잘 선택한 거 같아요.” 지난 21일, 울진군 평해읍에 위치한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등학교(이하 원마고)에서 만난 이 학교 1학년 손연우(17)군은 우리나라의 27번째 원자력발전소인 신한울 1호기가 14일부터 가동을 시작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입학한 기계과 손군은 “지난 정부가 원자력 비중을 축소하겠다 했지만 원자력의 친환경성 때문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확신이 있었다”며 “부모님과 입학설명회를 찾아다니며 고심하다 (원마고에) 입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풀이 죽어 있던 원마고에 다시 활기가 넘치고 있다. 2013년 문을 연 이 학교는 ‘원자력 설비’ 산업군에 특화돼 있는 특수목적 고등학교다. 원자력을 비롯해 수력 등 에너지 발전산업에 특화된 엔지니어 등 기술자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다. 마이스터고 답게 특수용접 실습, 공작기계 활용, 송변전 실무 등 실습 위주로 교과가 짜여 있다. 3학년 땐 직접 배관을 만들고 그 안에 전선을 연결하는 등의 송변전 실무를 배우는데, 바로 현장에 나가도 익숙할 정도라는 게 산업계의 평가다. 이날 실습동에서 만난 3학년 김태영(19)군은 “자격증을 5개나 취득했다”며 “다른 마이스터고와 달리 원마고는 원자력 전공을 배울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윤 정부 “2030년까지 원전 30%이상 확대”

이 덕분에 취업 성과도 좋은 편이다. 지난해 취업률은 92.9%에 이른다. 대기업·공기업 취업률은 62.9%로 한수원·한전을 비롯해 한국철도공사, 한국수자원공사, 삼성전자, 포스코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3학년 황동훈(19)군은 “입학할 때 한수원을 꿈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여러 기업에 도전해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 교과 과정과 높은 취업률로 원마고는 원래 인기가 많았다. 2016년에는 입학 경쟁률이 2.65대 1에 달할 정도였다. 전국 각지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몰렸다. 하지만 문재인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기가 주춤했다. 입학 경쟁률은 하락세를 보이다 2021학년도엔 경쟁률이 미달을 기록했다. 이 학교 송만영 교장은 “중복지원 탓도 있었지만 정부가 원자력 발전 비중을 줄여가기로 하면서 인기가 식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원자력 생태계 복원에 나서면서 원마고를 비롯해 대학 원자력학과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30%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지난해 기준 27.4%). 내년 신한울 2호기 완공을 시작으로 2024년 새울 3호기(울주군), 2025년 새울 4호기 등 매년 원전 1기를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이 덕에 당장 원마고의 2023학년도 입학 경쟁률이 1.67대 1로 전년에 비해 쑥 올랐다. 이 학교 기계과 1학년 양다율(17)군은 “원자력 산업을 더 확대한다고 하니 기뻤다. 부모님도 잘 간 거 같다고 했다”고 전했다. 원마고 김종민 교무부장은 “2023학년도 경쟁률은 사실 최종 수치보다 훨씬 더 높았다. 더 많은 학생이 지원했지만 한 곳만 지원할 수 있는 마이스터고 특성 때문에 커트라인에 미달하는 학생에겐 다른 곳을 권장했다”고 귀띔했다. 합격 커트라인도 전년보다 10%가량 올랐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원마고뿐 아니라 대학 원자력학과 경쟁률도 치솟았다. 2023학년도 원자력 관련 학과 입시(수시) 경쟁률은 평균 9.4대 1로 전년(8.7대 1)보다 상승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는 같은 기간 4대 1에서 4.7대 1로, 한양대 원자력공학과는 18.9대 1에서 19.5대 1로 상승했다. 세종대 양자원자력공학과는 10.1대 1에서 14.7대 1로 치솟았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지난 정권 땐 원자력학과가 비전 없는 학과로 급추락 했지만 올해는 인기가 되살아났다”며 “원자력학과는 세계적 산업동향보다 한국의 특수 상황에 따라 극명하게 인기가 달라질 수 있는 정책 관련 학과”라고 설명했다.

학생을 모집하기 힘들었던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도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박사 과정 중인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대표는 “탈원전 정책으로 영남대 원자력학과 대학원은 생긴 지 1년 만에 통폐합 됐고, 지방에선 원자력 분야 석·박사 지원자가 한두 명 뿐인 곳이 많았다”며 “카이스트 대학원 학생들도 아예 비원자력계로 진출하기도 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전문가 “늘어날 원전 인력 수요 대비해야”

전기제어과 실습동의 자동제어시스템 운용실, 학생들이 PLC(프로그램 가능한 논리제어장치)를 이용해 작성한 코드를 시험해보기 위해 자동화설비 모듈을 조작하고 있다. 신수민 기자
전문가들은 원자력 생태계 복원이 본격화하고 새 원자력발전소가 잇따라 가동을 시작하면 원마고를 비롯해 원자력 분야 학과의 인기는 더 치솟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원전업체 3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문인력 부족(35.7%)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을 정도로 원전업계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6년 3만7232명이던 원자력 분야 인력은 2020년 3만5276명으로 2000명가량 줄었다. 탈원전 정책 영향으로 원전 생태계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원자력 종합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문재인 정부 5년간 61명의 석·박사 연구 인력이 자발적으로 떠났다. 이 가운데 56명은 박사급 인재다.

하지만 국내에 원자력발전소 자체가 늘고 있는 데다 정부가 ‘한국형 원자력’ 수출을 지원하면서 전문인력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해외에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수출 지원을 위한 전담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한다. 최영대 사실과과학네트워크 대표는 “한국은 지형적으로 유럽 등지에 비해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불리한 편”이라며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원자력 산업 확대가 불가피하다. 늘어날 인력 수요를 대비해 관련 전문인력 양성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경북 울진군 지역경제 훈풍, 인구 늘고 상권도 부활 조짐

「 얼어붙었던 경북 울진군의 지역경제에도 다시금 순풍이 불고 있다. 북면 부구리에서 주요소를 운영하는 이광민(37)씨는 “주변 상가들 보면 요새는 비자마자 바로 채워지고 있다.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었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진짜 문을 닫으려 했다. 겨우 버티다 신한울 1호기가 가동되는 걸 보고 기대를 가지게 됐다”라고 말했다. 21년간 죽변면에서 음식점을 운영한 정모(55)씨는 “아직까지 크게 손님이 는 건 아니지만 원전 산업이 다시 활기가 돌면 아무래도 인력이 많이 들어오니까 (손님이 늘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탈원전 이후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여기 주변 상인 대부분 (원전 가동을)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인구수는 이미 회복세를 보이는 모양새다. 신한울 원전이 위치한 울진군 북면 인구수를 보면 2015년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확정된 이후 증가세를 타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본격화한 2019년 6131명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올해 11월 6814명으로 다시 늘었다. 울진 산업구조가 원자력 위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이 포함되는 전기·가스 부문 비중이 36.8%, 제조업은 1.7%로 원자력 발전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월등히 높다.

게다가 다른 원전 지역에 비해 제조업 기반도 매우 취약한 상태다. 영광(한빛)(5.4%), 경주(월성)(42.7%), 울주(새울)(67%), 기장(고리)(26.7%)보다 울진(1.7%)은 현저히 낮은 편이다. 그만큼 원전 산업 수요를 동력으로 지역경제가 돌아가는 게 크다는 얘기다. 북면에서 나고 자란 김청하 북면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정권이 바뀌면서 원전 정책 기조가 변화할 조짐을 보이자 그때부터 지역 분위기가 180도 변했다. 앞으로 외부 인력유입이 늘고 하면 일자리 문제도 덩달아 해결될 것”이라며 “이제 스타트를 끊었다”고 말했다.

울진=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