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음벽 천장 불 상상 못한 ‘블랙 스완’…대피 못해 피해 컸다

김홍범.최서인 2022. 12. 31.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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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등 관계자들이 경기도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뉴시스]
“재난계의 블랙 스완(검은 백조).”

지난 29일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는 전례 없는 유형의 재난이다. 이에 대해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 교수는 “블랙 스완은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 일어날 난 일을 가리킨다”며 “설마 그런 곳에서 방음벽 천장이 급격하게 타들어 가는 상황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나”라고 말했다.

예측 불가능성은 그 자체로 피해를 키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화재로 숨진 전모(66)씨의 친구인 또 다른 전모(67)씨는 “운전기사였던 친구가 차를 운전해 드리는 사모님께 ‘터널 속에서 연기를 마시고 있다’고 전화를 했다더라. 왜 빨리 차를 버리고 나가지 못했는지 마음이 답답하다”고 밝혔다. 채 교수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고라, 현장에서는 궁금하기도 하고 집단 심리가 작용해 대피가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화재로 숨진 5명의 사망자가 발견된 차량도 모두 처음 불을 낸 트럭의 반대편 차로를 지나고 있었다는 점도 이런 진단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 교수는 “방음터널에는 방송으로 대피 신호를 주는 시설도 없다. 다급한 상황 속에서 사태를 파악하던 도중 변을 당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화재 후 사망자 쪽 차로(안양 방향)의 터널 차단기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피해가 컸다고 보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은 철제 뼈대 위에 아크릴 소재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 재질의 반투명 방음판을 덮었다. 저렴하고 성형이 용이하지만 쉽게 불에 타고 다량의 유독가스가 발생한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5명이 차 문을 열지도 못한 채 사망한 직접적 원인을 질식으로 보고 있다. 채 교수는 “유독가스는 반 모금만 마셔도 의식이 흐려지기 때문에 화재를 인지하는 즉시 차량을 버리고 대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피 요령도 밀폐형 방음터널에 안일한 안전 규정이 적용되고 있는 한 무용지물이란 지적도 있다. 국토교통부가 2012년 발간한 도로설계편람 속 ‘방음시설 설계기준’은 투과 손실, 흡음률, 가시광선 투과율 등에 대한 규정을 마련했을 뿐 화재 대비에 관한 내용은 담기지 않은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1999년 발간된 도로설계편람 초판에는 화재 방지 관련 규정이 포함됐지만 이후 개정 과정에서 삭제됐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 교수는 “방음터널의 소재를 강화유리 등 불연 소재로 바꾸지 않으면 똑같은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국토부는 30일 대책회의를 열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55개 방음터널과 지자체가 관리하는 방음터널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화재에 취약한 소재를 쓰고 있다면 방음터널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시공법을 바꾸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범·최서인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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