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계급·직업 ‘조선인 정체성’ 나타낸 모자 이야기

정진수 2022. 12. 3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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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넷플릭스 오리지널시리즈 '킹덤' 방영 이후 해외에서는 '갓' 열풍이 불었다.

해외 패션쇼 런웨이에서도 재해석된 '조선 모자'가 수차례 등장하기도 했다.

조선의 모자는 서양 모자와 다른 매력이 존재한다.

또 햇빛을 완전히 가리는, '명암'이 분명한 서양의 모자와 달리 조선의 모자는 성긴 틈으로 빛이 통과하며 아른한 색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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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의 나라 조선/이승우/주류성/2만8000원

2019년 넷플릭스 오리지널시리즈 ‘킹덤’ 방영 이후 해외에서는 ‘갓’ 열풍이 불었다. 주인공이 때와 장소에 맞춰 바꿔쓰는 모자의 ‘독특함’에 매료된 것이다. 해외 패션쇼 런웨이에서도 재해석된 ‘조선 모자’가 수차례 등장하기도 했다.

조선의 모자는 서양 모자와 다른 매력이 존재한다. 수많은 원과 직선이 만나 미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또 햇빛을 완전히 가리는, ‘명암’이 분명한 서양의 모자와 달리 조선의 모자는 성긴 틈으로 빛이 통과하며 아른한 색감을 드러낸다.
이승우/주류성/2만8000원
신간 ‘모자의 나라 조선’은 조선에 존재했던 수많은 모자의 역사와 용도를 훑는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는 관, 건, 입, 모라는 네 가지 형태가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이라는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만들어졌다. 자신의 지위와 신분에 맞는 관모(冠帽)를 써야 했고, 관모에 따라 대우도 달라졌다.

왕실에서는 왕의 면류관, 원유관, 익선관, 통천관, 죽전립 등의 관모는 기본이고, 궁중 의식용 관모로 진현관, 개책관 등이 따로 있었댜. 귀족 남성에게는 문관용, 무관용, 문·무관용의 공무용 관모와 함께 선비용, 중인용 관모가 따로 구분됐다. 서민은 패랭이나 갈모, 남바위 등을, 천민은 벙거지, 삿갓 등을, 특수계층은 고깔, 상모, 무당 관모 등을 썼다.

조선 선비에게 ‘의관정제(衣冠整齊)’는 선비가 지켜야 할 금도로, 식사 중이건, 왕 앞에서건 모자를 갖춰 썼다. 맨머리는 용납되지 않았다. 모자가 단순히 외출용 두식(頭飾)이었던 서양과의 큰 차이다. 모자가 의복의 장식품이나 장신구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신분과 계급, 직업, 나이, 성별을 상징하고 분별하는, 일종의 사회적 코드이자 한 사람을 규정하는 ‘정체성’이었던 셈이다.

조선이 ‘모자 왕국’이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문헌은 찾기 어렵다. 다만 갑작스러운 조선 모자의 종말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 ‘식민시대’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의 문화와 사상, 말과 글, 복식과 두식 같은 생활 습속까지 ‘문화적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다. 일본은 밝고 경쾌했던 조선의 모자를 대신해 대동아공영을 부르짖던 군국주의에 기반한, 검은색 일변도의 ‘학도 모자’를 들고 왔다. 이 모자는 소학교를 시작으로 어느 순간 대학생의 머리까지 점령했고, 오랜 역사의 조선 모자는 그렇게 35년의 짧은 식민 기간 사라져버렸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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