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에게 ‘깊은 위로’… 마지막에 남기고 간 것들
전세계 재해 현장서 죽음 처리 전문가 기록
유해·소지품 찾기는 유가족 위한 최선이자
죽은 자 ‘존엄’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
시스템 부재 사회, 유가족이 가정 먼저 혼란
“폐허된 건물·장례식장 직접 뒤져야” 지적
위험하고 고된 현장의 분투 생생하게 전달
재난의 이면과 위기 대처 자세 등 담아내
유류품 이야기/로버트 젠슨/김성훈 옮김/한빛비즈/1만9800원
“베이루트급으로 안 좋아.” 미군 ‘전사자 예우 담당국’ 예하의 부대인 육군 제54 병참중대 지휘관이던 로버트 젠슨은, 폭탄 테러가 발생한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에 도착하기 전에 워싱턴으로부터 전화로 이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젠슨 팀이 해야 할 일은 폭파된 건물과 인근에서 시신을 회수한 다음, 개인 소지품을 수거하는 것이었다. 젠슨 팀은 소방관들이 시신을 발견할 시간이 가까워질 때마다 들것과 발굴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뛰어가곤 했다.
젠슨 일행이 서 있던 곳은 지면에서 1m에서 1.5m 정도 떠 있었고, 지면 자체도 유리 파편이나 건물의 금속 뼈대로 덮여 있었다. 그들은 잔해가 흘러내려 아래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을 덮치는 일이 없도록 바닥에서 위쪽으로 길을 내며 작업했다. 위험하고, 느리고, 고된 작업이었다. 그들은 이런 작업을 통해 수많은 유해를 찾아냈다.
“한쪽에는 스니커즈 운동화, 한쪽에는 하이힐, 이렇게 양쪽에 다른 신발을 신고 있는 여성을 수습하기도 했다. 참 이상한 조합이었다. 이 여성은 폭탄이 터질 당시 분명 자리에 앉아서 출근용 신발을 직장용 신발로 갈아 신고 있었을 것이다.”
세계적 재난수습 기업 ‘케니언 인터내셔널’의 회장인 저자는 책에서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사건을 비롯해 숱한 재해 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하고 시신과 유품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경험과 이를 통해 얻은 사유를 풀어냈다. 2001년 9·11테러부터 2004년 남아시아 쓰나미,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2010년 아이티 대지진까지.
저자는 위기나 재난에 충분히 대비돼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응급의료원, 기업, 언론, 심지어 정부조차도. 대형 사건이나 재난, 참사에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유가족이 가장 먼저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된다고 지적한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 곳에 산다면, 사랑하는 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두발로 직접 뛰어야 한다. 때로는 폐허가 된 집이나 사무실의 잔해 혹은 공동 영안실 혹은 임시변통으로 마련된 장례식장을 직접 뒤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비극의 여파는 때론 수십 년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유가족의 비탄, 정신적 외상, 정신 질환, 법정 소송, 언론의 비난, 수입 감소…. 생존자들이 고개를 돌린다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사회 시스템이 이들을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이 시기가 얼마나 길고 힘들게 이어질지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때론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많은 것조차 간과되기도 한다. 관리가 불가능한 것을 관리해야 하고,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다.
저자는 희생자들의 시신과 그들의 마지막 소지품 찾기에 사력을 다하는 데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유해와 유류품을 찾아 돌려보내는 일이 유가족들을 위한 최선의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이름을 찾아주는 것을 빼면, 존엄성이야말로 죽은 자에게 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류품은 죽은 자와 산 자를 묶어주는 실체이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사망자나 실종자 신원을 확인해 유해와 유류품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분투와 함께, 대형 사고와 재난의 이면도 담겼다. 삶과 죽음의 의미,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다룬다. 상황에 압도당하지 않는 방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사람들을 과거의 삶에서 새로 바뀔 미래의 삶으로 안내하는 방법도 역시.
저자는 대형 사건사고와 재해, 참사 현장에서 유해를 발굴하고 유류품을 찾아낸 뒤 가족에게 돌려주는 자신들에 대해 ‘사자에 각주를 더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기자가 역사의 초고를 쓰는 사람이라면, 나는 역사의 페이지 바닥에 묻혀 있는 죽은 자를 찾아내고 예우를 갖추어 각주를 더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항상 가장 힘들었던 건 죽은 사람과의 대면이 아닌, 관료주의에 물든 정부 반응을 대면하는 것이었다고 저자는 토로한다. “내게 항상 가장 힘든 부분은 죽은 사람과의 대면이 아니다. 그래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관료주의에 물든 정부의 반응이 가장 힘들다.”
저자는 매일 죽음을 수습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고 고백한다. 죽음은 자기만의 시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유족은 상실이 아니라 상실에 대응하는 방식에 화가 난다는 사실을. 끔찍한 일은 빨리 털어버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교훈을 얻을 기회를 갖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진정한 재난 극복은 단편적 사실과 전체의 진실을 구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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