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혁신… 건축을 예술로 승화시킨 대가
‘건축계의 전설’ 프랑크 게리 조명
‘루이뷔통 메종 서울’도 디자인
주류 건축과 달리 끊임없이 도전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 구축
프랭크 게리/폴 골드버거/강경아 옮김/3만2000원
프랭크 게리. 당대 활약 중인 건축가를 줄 세우면 맨 앞에 설 만한 거장이다. 1989년 건축가에게 최고 영예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린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건립 이후 미국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체코 댄싱하우스, 캐나다 온타리오 아트갤러리 등을 통해 해체주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군림했다. 심미안이 남다를 루이뷔통 재단이 지은 미술관도 그의 작품이다. 한국인 며느리를 뒀다는 이 노장의 작품은 서울 청담동에서도 볼 수 있다. 2019년 11월 선보인 루이뷔통 메종 서울이 주인공이다.
1969년, 하루짜리 심포지엄을 위한 스튜디오를 개조하던 프랭크 게리는 빠듯한 예산에 맞춰 골판지를 사용한 의자를 만들어 냈다. 나무만큼 단단하면서도 유연성이 높은, 동시에 아름다운 종이 가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이지 에지(Easy Edges)’라 이름 붙은 이 판지 가구는 대박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게리는 자신이 건축가가 아닌 가구 디자이너로 기억되는 일을 염려해 손해를 감수하고 모든 사업을 철수해 버렸다.
큰 경제적 이익을 얻을 만한 기회 앞에서 번번이 등을 돌려 버리는 게리의 본능은 건축가로서의 자아를 지키려는 갈망에서 기인했다. 게리는 자신이 창의적인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로 소비되어 버리는 운명을 늘 두려워했다.
게리는 분명 브랜드였지만 건축가로서 작업을 이어 가길 원했다. 단순히 건물 설계를 해 나간다는 뜻이 아니라 이전처럼 창의적 작업을 계속하고, 자신의 유명한 작품을 공식처럼 활용해 여기저기 복사하려는 수많은 유혹에 저항한다는 의미였다. 반복하는 대신 완전히 새로운 건축 형태를 구상하는 용기로, 게리는 성공 가도 앞에서 등을 돌리며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건축계의 아웃사이더로 예술가 공동체 주변을 맴돌던 그는 늘 배우고자 하는 열망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게리는 직관적인 태도의 예술가들에게 흥미를 느꼈다. 그는 예술의 기술을 사용하여 건축적 목적을 수행하는 식으로, 주류 건축과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관을 완성해 나갔다. 그의 건축물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게리의 건축물에서 차츰 드러나기 시작한 가장 놀라운 점은 독특한 형태를 만드는 그의 재능이다. 자연스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쭐대지 않는 그런 형태 말이다…건축물의 독특함이 기분 나쁜 느낌보다 신기한 생기를 내뿜는다는 점이다.”
극적이고 재기발랄한 게리의 작품에는 그가 진지한 설계자가 아니며 그의 건물은 비이성적인 창작물이라는 비난과 편견이 따라다녔다. 그래서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으로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며 고군분투한 거장의 노력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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